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 개정판
이도우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된 골동품을 파는 가게의 한 남자와
파꽃을 그리는 한 여자가
남포등이 켜지는 이유가 되는 또 다른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 한다.

왜 남포등이 켜지는 건지,
파꽃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는지...
그래서 그 곳은 비오는 날만 입구가 열린다는, 그러니 이제 곧 닫힐것이라는 짧은 이야기에
난 또 가슴이 시리게 그녀를 보내주고, 그 문을 닫는 남자의 기억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결국 이뤄지지 않은 사랑과 사람을 기억하는 두 사람의 이야기일 뿐인데
이렇게 짧은 이야기 안에서도 감정의 동요가 느껴진다.



새로 개정된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말미에 들어가는 단편의 이야기.
내용 역시 큰 기복없이 단조롭지만, 역시 이도우님의 글은 내 마음을 흔드는 한 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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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의 찬미
손승휘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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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때로 사랑은, 비극 그대로의 현실이 더 아름답다. 그랬으면 어땠을까.. 라는 가설따윈 필요하지 않다. 현해탄 바다에 수장되어 버린 그들의 영원이 되어 버린 사랑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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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만 있어줘
조창인 지음 / 밝은세상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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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공감하기 힘들었던 해나의 마음 덕에, 나는 이 책을 어떤 눈으로 읽어야 할지, 갈피를 끝까지 찾지 못한 채 안타까운 마음으로 읽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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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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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P. 142

 

방으로 되돌아가는 세실리아의 마음속에는 짜증이나 당혹스러움보다는 체념이 더 컸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너무 생생하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는 인상들, 자기 의심, 의지와 관계없이 너무나 명료하게 보이는 시각적 인상들, 익숙한 것을 낯설어 보이게 하는 섬뜩한 차이들. 이 모든 것들을 사실 그녀가 하루 종일 보고 느껴온 것들의 연정이거나 변주에 지나지 않았다. 이런 느낌에 대해선 깊이 생각하지 않는게 좋아. 게다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고 지금도 알고 있으니까. 그녀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하는 옷은 딱 한 벌뿐이었고, 이제 그것을 입을 작정이었다. 분홍색 드레스를 벗어 검은색 드레스 위에 던져놓은 그녀는 오만한 걸음으로 옷더미 옆을 지나 옷장 문을 열고 졸업 시험이 끝난 기념으로 산, 등이 파인 짙은 녹색 이브닝드레스를 꺼냈다. 다리부터 넣어 드레스를 올려 입으니 실크의 서늘함이 느껴졌고, 마치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기품이 풍기는 여성이 된 것 같았다. 전신거울에 드러난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운 인어 같았다.

P. 189

 

그는 현관 벨이 손을 얹었다. 아직도 그냥 돌아가버리고 싶은 유혹이 그를 뒤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안전한 자신의 서재에서 그녀에게 사과의 편지를 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겁한 놈! 지금 그의 집게손가락 밑에는 도자기로 만든 차가운 감촉의 현관 벨이 있었다. 마음속에서 또다시 논쟁이 시작되기 전에 그는 벨을 눌러버렸다. 그러고는 문에서 한 걸음 물러섰다. 마치 자살하기 위해 방금 약을 삼켜버린 사람처럼 느껴졌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었다. 얼마 후 안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홀을 걸어오는 스타카토의 여자 구두 소리.

 

 

한 구절, 한 문장. 음미하면서 읽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문장들을 왜 내가 지금서 읽었을까 잠깐의 후회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서술, 구절의 나열들을 본 순간 왠지 모를 희열도 느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은 바로 이런거야! 하고 말이다

내가 읽었던 다른 소설들에서도 이런 구절을 찾아본 적이 있었는지 까지 생각해 보았다.

오감을 아우르는 많은 문장들을 읽으며, 내 머리속에선 자연스럽게 영상이 흘러다녔다.

영상미 가득한 문장을 온 몸으로 느끼며, 시각과 청각, 촉각 모두를 만족시키는 문장들로 전개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의식의 흐름 기법 이라는 문학적 서술 용어를 이해하려 하기 보다는,

현재의 브리오니, 세실리아, 로비의 지금 이 순간을 같이 바라보며 문장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언매큐언의 [속죄]를 읽었다.

사실 난 이 책을 읽은 목적이 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 [어톤먼트]를 보기 위해서 읽기 시작했다.

약 이틀간 난 이 책을 붙잡고 돌아다녔다.

아이 센터에 갔었고, 극장에 갔었고, 마트에 갔었고, 차 안에서, 유치원 앞에서, 아이가 수영하는 동안..

그리고 밤 11시가 넘은 이 시각. 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며 한숨과 눈물을 같이 내 뱉어본다.

 

atonement 보상, 속죄, 죗값.

 

속죄(贖罪) 지은 지를 물건이나 다른 공로 따위로 비겨 없앰.

 

 

이 소설 한 권으로 브리오니의 속죄는 완성이 되었던 걸까.

아니, 브리오니에게 속죄를 요구할 권리가 우리에겐 있는 걸까.

열세살의 어린 브리오니가 보고 느끼고 생각한대로 이야기한 참혹한 결과를 그녀에게 보상받길 바라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철없던 시절, 순간의 행동으로 인한 죄책감으로 일생을 살아온 그녀를 이대로 용서해야 할 것인지,

책장을 덮고 난 이후로도 한참을 생각했지만..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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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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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이들의 童貞도 없고 同情도 없는 세상 을 위하여!!

 

호기심에 시작했다 웃으면서 큭큭대고, 돌연 심각해 졌다가 코끝이 찡해지고,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짓다 다시 웃음으로 빵 터지니 이야기가 끝나버렸다!

 

 

수능을 갓 치룬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준호는 동정 없는 세상을 꿈꾼다.

이미 동정 없는 세상을 맞이한 친구들은 준호에게 이야기한다.

 

자식, 궁금하냐? 직접 해봐!

 

하지만, 공부 잘하는 서영이라는 번듯한 여자친구도 있는 준호는 오늘도 외치고 있을 뿐이다.

 

한 번 하자!

 

 

 

주제가 너무나도 확실한 한 가지만을 위해 달려가는 준호.

청소년도 아닌 그렇다고 아직 어른도 아닌 19살과 20살의 경계에 서 있는 남자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수능이 끝나 더 이상 공부에 대한 의지도 목적도 없고, 시간이 많이 남아도는 이 아이가 하루종일 생각하고 관심 기울일 수 있는 성性이라는 주제에 대해 참 재미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야하지 않다. 눈살이 찌푸려지지도 않는다. 귀엽게 발칙하지만 마냥 재기발랄하지는 않게 준호가 꿈꾸는 동정 없는 세상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난, 그 당위성에 대해 자연스레 설득당한다.

우스개 소리로 사춘기의 남자 아이들의 뇌 구조를 그려놓은 어떤 그림이 떠올랐다. 생각의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던 성에 대한 호기심과 성숙하지 않은 욕망. 하지만 역시, 스무살이 몇 일 안남은 준호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긴 하지만, 그 뿌리는 하나 아닐까?

프로이드의 리비도가 아닌, 준호의 리비도 이야기라 명명하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준호의 가족인 외삼촌 명호씨와 엄마 숙경씨의 이야기들은 준호를 조금 더 어른의 카테고리로 속할 수 있게 끔 도와준다.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어른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가 참 닮고 싶은 둘이기도 했다.

 

 

 

P.133~134 : 경숙씨

 

네가 한 제일 큰 효도가 뭔지 알아?

네가 태어나서 20년 동안 내 옆에 있었다는 거야.

너를 가진 후에 내가 하고 싶었던 유일한 것은 너를 낳는 거였고, 네가 태어난 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너를 예쁘게 키우는 거였거든. 너를 대학생 만들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네가 대학에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할 생각은 없어. 너는 세상에 나와서 여태까지 별탈 없이 건강하게 자라 주었으니 이미 네 할 도리는 다한거야. 대학 따위가 뭐 대단한 거라고 거기 가지 않는다고 뭐라고 하겟니. 나도 대학에 가지 않았는데, 네가 언제 대졸 엄마 아니라고 불평한 적 있었어? 나도 마찬가지야. 네가 대학생 아들 아니라고 뭐라 하지 않을 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해.

P. 138 : 명호씨

뭐든지 하고 싶었던 그때에 해야 되는 거야. 시간이 지나면 왜 하고 싶었는지 잊어버리게 되거든. 뭔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때 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왜 하고 싶었는지에 대해서조차 잊어버리게 되거든. 자꾸 그러다보면 결국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져버려. 우물이라는 것은 퍼내면 퍼낼수록 새로운 물이 나오지만 퍼내지 않는다면 결국 물이 마르게 되잖니. 그런 것처럼 욕구란 것도 채워주면 채워줄수록 새로운 욕구가 샘솟지만 포기하다보면 나중에는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게 되어버리는 거야. 그러니 너도 쉽지야 않겠지만 하고 싶은 것을 자꾸 만들어서 해봐.

 

이러한 어른들 사이에서 준호는 좀 더 어른의 문으로 한발짝 다가간다.

한 번 하고싶은 마음은 여전하고, 대학에 가야할지 기술을 배워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미래가 조금은 막막한 스무살이 되어야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은 후 달라지는 준호의 미래들이 난 기대되었다. 준호가 느꼈던 두려움, 불안함, 하지만 어른이 되어간다는 기대감, 모두 그 즈음의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상태지만 이제는 제대로 된 어른으로 성장해 가야 하는 준호와 같은 친구들을 위한 응원의 문장들이 그 시절 나에게도 필요했었던 것이 기억났다. 하지만 이미 나는 그 시절을 지나 버렸으므로, 이제는 늦지 않게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어른들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해 봤다. 이제 몇 년 후면 우리 아들도 10대에 진입하게 될 것이며, 머지않아 열아홉살과 스무살의 경계에서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그 고민의 순간 나는 근사하고 멋진 어른까지는 못될테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보낸 어른의 모습으로 아이의 고민을 위로해줄 수 있는 말 한마디를 건네주고 싶다. 경숙씨와 명호씨 처럼 말이다.

 

 

P. 130 : 준호

해가 바뀌면 나는 스무 살이 될 것이다. 어쩌면 대학생이 될지도 모르지만 거리의 백수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 재수생이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여하간 스무살이 될 것이다. 스무 살이 되면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운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것이며 여자친구와 섹스를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스무 살이 되고 싶지 않다. 내가 하고 싶은 무언가를 찾는 것이 두렵다. 아무 것도 없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섹스를 하는 것도 사실은 조금 두렵다.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물이 되는 그 자체가 두렵다. 스물이 되어봤자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대로, 언제까지나 열아홉일 수는 없을까.

 

 

그래서 준호가 한 번 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한 번 하자! 만을 외치고 있을까?

시작하는 대사와 마지막 대사가 같았던 준호는 동정 없는 세상을 맞이할 수 있을까?

 

어떻게 되었냐고? 다 알면서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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