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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부동산 1
이휴정 지음 / 신영미디어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이런 좋은 책을 읽고, 너무 쓰고 싶어서 쓰는 내 리뷰가, 그렇고 그런 리뷰가 되질 않길 작게 소망하며 글을 시작해본다.
한적한 동네의 유일한 부동산 하나. 그 안의 젊은 부동산 중개업자.
어린 것도 어른도 아닌 열아홉의 나이를 지닌, 아직은 교복속에 갇혀있는 여자 아닌 학생.
아닌듯 맞는듯 능글맞게 자신의 집 2층을 그녀에게 세 내어주고, 외로운 아이에게 감정을 알게 하고,
그를 의지하게 만들어 종내에는 두려움과 불안함까지 안겨줘버리는 말 잘하고 유들거리는 남자.
사람은 누구나 슬픔이라는 감정을 마음 속 가장 낮은 곳, 깊은 밑바닥안에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쨍하게 파란 하늘을 바라보면서 문득 눈물이 방울져 흐르기도 하고, 정신없는 코메디 프로그램을 보다가도 일순간 멍해진다.
그런 슬픔의 감정을 때때로 온몸 가득 느끼고, 어떤 때는 열심히 밀어내고, 때로는 웃음으로 조금은 감춰가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스물아홉의 위에겐 10년간 옅어지지도 않은 채 천형처럼 간직해 온 슬픔들이 있었고,
열아홉의 탄경에겐 누구나 쉽게 겪을 수 없는, 이미 지나가버려 되돌릴수는 없지만, 지울수도 없는 슬픔이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그 슬픔은 덮어둔 채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그러다 문득문득 되새겨지는 아릿한 슬픔이 때로는 불안으로 엄습해 온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뿐이다.
마치 우리의 끝이라는건 언제든 우리를 찾아올 수 있다는, 애매모호함이 아닌 확고한 불확실함으로 둘 사이의 감정 안에서 조심스레 오간다.
그리고 결국, 탄경은 위를 떠난다. 똑같은 어느 하루의 시작과 함께 훌쩍 떠나버린다.
이 글을 읽는 나는, 결국 둘의 사랑은 해피엔딩이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도 일말의 불안함이란 감정을 같이 담뿍 담아 읽어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나 역시도 탄경이 갖고 있던, 위가 갖고 있던 슬픔의 근원을 지나쳐온 사람이었고, 그렇게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탄경의 선택을 잘못되었다고 선뜻 이야기하지 못했다.
열아홉의 여자가 아닌 학생 탄경에게는 가장 어렵지만 가장 확실한 선택이었다 생각되었을 뿐이다.
두 권의 책 안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좋다와 미치겠다를 스무번쯤 입밖에 내어 말한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들.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 내가 좋아하는 설정. 내가 좋아하는 전개. 내가 좋아하는 갈등.
내가 좋아하는 결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고민들. 내가 좋아하는 첫사랑의 아픔. 내가 좋아하는 작가후기.
그 어느 작은부분들에서 조차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적 없는 꽉 찬 900여 페이지의 글을 읽으며,
도대체 이런 작가는 어떤 생각을 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궁금해지기까지 했다.
작가 후기를 보면 '이탄경으로서 위를 사랑하면서, 기쁘고 가슴 벅찼다.' 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이 이야기는 오롯이 탄경의 눈으로 바라본 이야기이며, 탄경이 알고 있는 위의 이야기이며,
탄경만이 알 수 밖에 없는 탄경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 많은 문장의 나열 사이에서 탄경이 모습이 때로는 나와 겹쳐보였고, 탄경의 이야기가 때론 내 것 같았으며,
탄경의 속 마음 또한 글을 쓴 사람의 감정일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인 것 같기도 했다.
결국 이야기는 탄경 혼자만의 이야기 일수도, 내 이야기 일수도, 작가의 이야기일 수도 있을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모두를 위한 글이기도 한 것 같았다.
화려하거나, 휘황찬란한 미사여구가 난무하지는 않지만, 마냥 우울하지만도 않고, 마냥 팔랑거리지만도 않은 문장들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읽었던 페이지를 체크하고, 내 마음에 쏙 드는 부분 여기저기에 밑줄을 그으면서,
이런 문장들을 생각하고 고스란히 글로 옮기는 작업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작가의 그 마음들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어졌다.
이런 좋은 문장들을 그냥 눈으로만 훑고 말기엔 미안할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서, 마음을 후벼 팔 정도로 나를 건드려 줘서,
내가 알지 못했던 내 감정의 이면들을 고스란히 끄집어내줘서, 그렇게라도 이해하고 느끼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았다.
고마운 만큼 나는 이 문장들을 다시 곱씹어 보며 소리내어 읽어봤다.
소리로 울려퍼지는 문장마저도 사랑스러운 이 이야기를 어떻게 놓아야하는지 한참 아쉬워하면서 말이다.
2권. P381.
누군가를 처음처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다.
위와 탄경처럼,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 자신만의 첫사랑을 그렇게 절실하게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이 글을 절실한 마음으로 읽었고, 읽는 내내 사랑했고, 덮고 나서도 두 사람이 그리워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