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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 있는 곳
박혜진.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4월
평점 :
<한국스러운>것이 좋다. 예를 들면 <구멍가게>라는 단어 말이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 한국에 거주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미국에 거주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보낸 약 5-6년간의 기억이 (정말 어린 시절에는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내 기억 속에 하나의 필름처럼 남아있는데, 그중 <구멍가게>에 가서 사촌 언니 오빠와 다양한 불량식품을 먹었던 기억이 내 삶의 행복했던 기억중 하나로 남아있다.
복수동에 있던 우리 친할머니 친할아버지 댁 앞에는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우리 할머니와 친한 분의 가게였는데, 그곳에는 유독 불량식품이 많았다. 쫀드기부터 아폴로, 동전 사탕, 페인트 사탕 등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것들을 팔았고, 주인 할머니께서 우리 할머니와 친분이 있었던 탓에 외상으로도 많이 주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불량식품을 한 아름 안고 할머니 댁으로 돌아가 사촌들과 갖가지 대결을 했다. 누가누가 아폴로 깨끗하게 먹나, 누가누가 입술 안 파래지고 페인트 캔디 먹나, 등등. 그때는 무엇이 그렇게 재밌었는지, 승부욕에 불타 어떻게 해서든 이겨보겠다고 노력했던 나 자신이 생각나 글을 쓰면서 입가에 나도 모르게 미소를 띠고 있는 나를 본다.
이렇듯 <구멍가게>라는 단어는 듣기만 해도 애틋해지는 나의 유년시절의 한 일부분인데, 그 향수를 제대로 자극하는 책이 있다. 책과 함께의 <구멍가게 이야기>이다. 이 책은 마트와 편의점에는 없는, 우리의 추억과 마을의 이야기가 모여있는 곳들을 찾아가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몇십 년 동안 그곳을 찾는 단골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어 책으로 엮은 작품이다.
각 구멍가게가 가진 이야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추억여행에 푹 빠져 이 책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신기하다고 느꼈던 것은, 추억 여행은 오감이 다 자극된다는 것이다. 내가 직접 겪은 경험들이어서 그런지 그때 당시에 함께 했던 사람들, 나눴던 대화, 내 혀를 자극했던 식품들의 맛과 냄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실제로 책을 읽으면서 예전에는 자주 먹었지만 지금은 먹은 지 꽤 된 식품들 -- 꽈배기, 강냉이, 크라운 산도 -- 이 갑자기 그리워져 잠시 마트에 들린 엄마에게 전활 걸어 크라운 산도를 사다 달라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집 앞에 마트엔 산도를 팔지 않는다고 해서 못 먹은 해프닝도 있었다. 다음에 편의점이나 휴게소에 들르면 꼭 사 먹으리라.
이 책은 비단 각 구멍가게가 가진 이야기들만으로 이루어진 책이 아니다. 박혜진/심우장 저자는 그 현장 속을 샅샅이 들여다보기 위해 2년여에 걸쳐 구멍가게 백 이곳을 찾았고, 그 과정에서 마주한 사회문화적 맥락과 역사적인 변천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이야기들은 책 중간중간에 <쉼터>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그래서 <구멍가게>가 왜 <구멍가게>가 되었는지 이름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고, 구멍가게의 개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도 읽을 수 있었다.
내 기억 저편에 자리하고 있는 할머니 댁 앞에 있던 작은 구멍가게가 계속해서 떠오른다. 후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이사를 하시고 난 후에는 통 그쪽을 가보지 못했는데 지금 가보면 많이 바뀌었겠지. 대전에 간다면 추억여행 삼아 그곳을 찾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을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인사도 물론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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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구멍가게>와의 추억이 있으신 분들께 추천드리고 싶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에 귀 기울이는 일에 매길 수 없는 무한의 가치를 아시는 분들께는 더더욱. 읽다 보면 어린 시절에 자주 갔던 구멍가게가 생각이 나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은 안 비밀.
"손바닥만 한 구멍가게가 전부인 채 살아온 분들, 스스로 먼지 같이 보잘것없는 인생이라고 말하는 그분들에게 부족하나마 이 책이 한 자락 의미 있는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