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모험 중 - 생리와 성에 관한 진짜 솔직한 이야기
이도이아 이리베르테기 지음, 성초림 옮김, 손경이 감수 / 키다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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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우리는 지금 모험 중

생리와 성에 관한 진짜 솔직한 이야기❤️


나의 첫 생리는 언제였더라. 기억을 떠올려보면 2002년 카드대란이 우리 집 기둥을 강타했을 때 내 책상과 침대 안방 가구들에 빨간 딱지가 붙은 날. 나는 첫 생리를 시작했다.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국가 위기의 순간에 나는 내 인생 첫 눅눅하게 충혈된 부도를 경험한 것이다. 굉장히 불쾌하게 멍든 나의 첫 치욕, 나의 첫 여성성 생리. 지금 생각하면 고작 14살, 집 안에는 아무도 없고 불 꺼진 거실에는 오로지 화장실에서 세어 나온 주황빛만 감돌 뿐 고요하다 못해 적막한 현실을 뚫고 나는 대충 휴지로 봉합한 다리 사이를 따뜻한 물로 달래고 기저귀 족쇄를 채워 누워있었다. 생리통이 고역이었는데 자궁은 이제 태어난 신생아처럼 자꾸 어미인 나를 긁어대고 위는 밥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지옥이 따로 없는 매미소리는 들을 수 없었던 다 죽어가는 아파트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지금 모험 중> 이 책은 이제 막 생리를 시작한 두 여자 친구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하염없이 끝도 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INFP인 나와는 달리 텔마과 클로에는 솔직하고, 당당하고 유능하고 유쾌했다. 심지어 그들을 에워싸는 주변인들마저! 아이들에게 2차 성징이라는 우주의 문이 열리는 순간, 그들 주변에 괜찮은 어른 한 둘은 있어줘야 한다. 어른이 꼭 현자는 아닐지라도 경험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니까 적어도 그때의 '나'처럼 외롭고 배고픈 '처음'은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서 유쾌하지 않으니. 


<우리는 지금 모험 중> 부모 표 성교육 교재로 탁월한 책이다. 무엇보다 재밌다. 읽는 내내 텔마과 클로에는 내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14살 그때의 나를 어루만져 주고 위로하며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가령 

내가 생리 이야기를 하자마자 클로에가 제일 처음 한 말은 이거야.

『당장 울음 그쳐, 시스터』

『별일 아니잖아, 난 또 누구랑 싸웠나, 집에서 혼났나 걱정했잖아. 생리를 시작한 거라면, 그건 뭐 어쩔 수 없잖아 가자.』 p9


엄마, 아빠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과 친구가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거든. 그러니까 어렵지 않게 교과서적이지 않게 간단명료하게 생리를 하게 된 것을 '괜찮아'라고 말해준다. 이렇게 쿨하고 친절할 수가.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나는 지점에서는 [의사 선생님의 한마디]라는 코너로, 생리통에 가장 많이 처방되는 소염 진통제에 대한 정보, 다른 10대 아이들의 생리 경험, 생리통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목차를 보면 1월부터 12월까지 한 달에 한 번 겪는 생리 때마다 새로운 테마가 시작되는데 첫 생리부터 성생활, 결국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끝맺는다. 내 몸의 안팎으로 생리나 친구 남자친구와의 관계, 성 문제로 시끄럽고 어지럽더라도 네 모습을 잃지 말고, 천천히 스스로 준비되어 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 매 순간을 즐기라는 꿀팁. 나도 늘 아이에게 말하지만 그렇다. "서두를 것 없어."


87페이지에 얇은 두께에 아이 스스로 꺼내기 힘든 이야기, 친구와도 나누기 어려운 이야기를 스스럼  없이 다가가 먼저 꺼내준다. 말이 많지도 않고 잘 들어주는 듯하면서도 핵심을 간파해 필요한 정보들을 알차다. <우리는 지금 모험 중> 미약한 어른이 된 나 역시 늘 모험 중이다. 이제 아이와 함께 떠나는 몸에 대한 모험, 탄생에 대한 여정, 그리고 가족과 사랑에 대한 에필로그를 천천히 그려내볼 생각이다. 멈추지 않을 모험을 꿈꾸며. 그게 언제냐고? 우리 아이가 조용히 다가와 "엄마, 엄마 첫 생리는 어땠어?" 또는 "엄마, 여자는 생리를 한다는데 생리가 뭐야?"라고 물어본 그 어느 날. 

별일 아니잖아, 난 또 누구랑 싸웠나, 집에서 혼났나 걱정했잖아. 생리를 시작한 거라면, 그건 뭐 어쩔 수 없잖아 가자.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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