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발해가 살아 숨 쉬고 있네? - 현지에서 본 신세대 교사의 중국 동북공정 비판
박은선 지음 / 아이필드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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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수업, 대학생을 상대로 수업하신 분인 만큼 어린학생들에게는 다소 지루했던 수업.
그러나 교수님은 정말 열심히 강의를 해주셨다. 현재 동북3성(요녕성, 길림성, 흑룡강성)이라 부르는
이 땅에 인류가 살기 시작한 흔적부터 곳곳에 널려있는 발해유적에 대한 개괄적 설명을 마치고

질문시간이 되었다.


~ "교수님께서 발해랑 고구려랑 다르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우리 환인이랑 집안에 갔을 때 집터에

온돌흔적 있는 거 봤거든요, 근데 발해유적지인 상경성에도 온돌흔적 있잖아요.

그런거 보면 발해가 고구려 계승한 거 맞지 않아요?

"아. 그건 썩 후의 일이니까.?"

"네에?"

"상경성 만들어진 게 발해가 건국한지 상당히 오래 후의 일이에요.

발해 건국지 성산자산성에는 온돌흔적이 없어요. 그러니까 발해가 발전해 나가고 천도하고 이러면서

나중에 고구려문화를 받아들였을 거라는 주장이 있어요."

"다른 북방민족도 온돌문화가 있었나요?"


"그건 고구려의 독특한 문화 맞습니다. 말갈도 또 옥저도 온돌문화가 없어요.

발해시기 온돌은 고구려보다 한층 위에요~"


~~

"TV에서 봤는데요. 발해가 일본에게 보낸 문서 같은데서 天孫인가 그렇게 자기들을 표현했대요.

그래서 자주국가라고 볼 수 있다고 TV에서 그랬어요. 그런데 중국은 발해가 당나라에

조공을 바쳤기 때문에 중국의 속국인가 부속국가인가 뭐 그런다던데, 이건 어떻게 봐야돼요?"

"예전에 조공체제, 그러나까 책봉때문에  발해가 당나라 지방정권이다.

이렇게 중국학자들이 말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것만 가지고 문제를 설명할 수 없다. 이렇게 말해요." 

"그럼 발해가 왜 당나라 부속국가인데요?"

"중국학자들이 고조선이라든가 고구려, 발해 이런 나라들을 왜 중국역사라고 보느냐 이건

중국과 한국의 역사적 전제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국학자들은 국경형성, 그러니까 지금의 전 중국영토 안의 역사는 몽땅 중국역사다. 이렇게 봐요.

한국과 달라요."

~~~

1950년대에서 60년대 때는 주은래총리도 그렇게 말했고,

중국교과서에도 "고구려역사는 조선역사다"이렇게 말했어요.

고조선이라든가 고구려, 발해도 몽땅 다 조선역사로 인정했어요.

그러다 90년대 중반부터 이렇게 변한 거예요. 이건 한 개의 동향이고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뭐 학술적인 문제는 이미 벗어난 거 같아요.

가만히보면 역사 문제가 지금은 정치 색채를 띠는 것 같아요."~~~

 [책중에서- 발해답사를 정리하며]

 

미국에 있는 일본, 중국, 한국 3국의 역사학회 숫자가 우리의 현실을 말해준다고 했던 기억에 씁쓸하다.

중국과 일본의 학회 숫자는 200여개 이상, 우리는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
고구려, 발해의 역사..,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가슴이 답답하다.
뿌리가 흔들리면 나무는 뽑힌다.
2007년 9월 동북공정 - 발해가 마무리 된다고 한다.
발해유적도 중국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어찌 되는 것인지
개인적으로 역사바르게 알기를 실천하는 것이 나로선 최선이겠지..

 

흔적이란 그런 것

애정없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 그 흔적에 얽혀있는 수많은 모습들일 것이다.

선인들의 숨결이 배어 있어도

무심하고 애정없는 후인들이 무시하면 숨결은 이내 사라져버린다.

맘 변한 연인의 등 뒤에서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나만은 다르다고 했잖아."
이렇게 암만 외쳐봐도 상대방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후세인들이 선인들의 흔적을 외면하면 그들은 한마디 속삭이지도 못하고
우리의 등만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애정과 안타까움을 가득담아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었던 그때 그사람 얼굴이 떠오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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