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과 아이가 함께 보는 그림책
아민 그레더 지음, 김경연 옮김 / 보림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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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섬이 있습니다. 아주 높은 장벽으로 둘러 쌓여있어 섬으로 보이지 않는 섬이지요. 이 섬 안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섬 밖의 사람들은 그 섬 안의 세상을 알 수 없습니다. 아픈 사람들은 없는지, 누군가가 굶주리고 있지는 않은지, 행복한지 아닌지. 다만 간혹가다 성에서 쏘아 올린 화살에 새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그리고 장벽이 아직 견고한 것을 보고 누군가가 살고 있구나 하고 생각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누가 이 섬 안에 사람들을 가둬 놓았을까요?


 어느 날, 낯선 사람 한 명이 바다에 떠밀려 이 섬으로 왔습니다. 그 이방인은 옷도 신발도 없었고 심지어 머리카락도 없습니다. 그는 누구일까요? 사람들은 두려워졌습니다. 하지만 다시 바다로 보내면 그 사람은 죽을 게 뻔했습니다. 섬사람들은 자비를 베풀어 그를 염소 우리에 머무를 수 있도록 해주었지요. 하지만 그는 가끔 우리를 나왔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두려워하며 흥분한 몸짓으로 그를 다시 염소 우리로 몰아넣었습니다. 사람들은 낮이나 밤이나 그를 생각했습니다. 아마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의 몸집은 더 커졌고, 무기를 들고 있었을 것이며, 이빨은 크고 날카로워졌을 것입니다. 머리에 뿔도 있었겠지요. 하지만 그 이방인은 여전히 벌거벗고 왜소한 사람이지요. 사람들은 그가 아이들을 잡아먹을까, 마을 사람들을 죽일까, 이 섬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사람들은 그를 바다로 내쫓았고, 다시는 그 이방인이 섬에 올 수 없도록 크고 견고한 장벽을 세웠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장벽은 섬사람들 스스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 낯선 이는 무서운 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는 섬사람들보다 체격도 작고 위협할 만한 도구조차 없었지요. 그저 사람들이 하라는 대로 끌려다녔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섬사람들을 두려움에 빠지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 스스로 지어 입힌 편견이라는 이름의 옷이었습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땐 섬사람들의 행동에 비웃음을 날렸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엔 그들을 비웃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수많은 편견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이슬람인들이 세상의 평화를 위협하는 테러범이라 생각하고, 동남아시아인들은 더럽고 못사는 사람들이라 무시하지요. 비단 외국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위의 수많은 사람에게도 편견이라는 이름의 옷을 입히지요. 여성이라는 옷, 남성이라는 옷, 뚱뚱하다는 옷, 종교라는 옷, 좌파라는 옷, 미혼모라는 옷, 어느 대학교 학생이라는 옷, 중졸이라는 옷, 노동자라는 옷, 노인이라는 옷, 아이라는 옷.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입은 옷을 보고 그들을 이해했다 생각하며, 더 이해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표지 속 장벽은 여전히 견고합니다. 이방인을 몰아내고 더는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이 섬사람들은 과연 평화를 되찾았을까요? 행복해졌는지, 아닌지 잘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그들은 평생 장벽이 보여주는 조그마한 평수의 하늘만을 볼 수 있다는 것이요. 편견이 높아져 갈 때마다, 볼 수 있는 세상은 점점 더 작아지겠죠. 그들이 이방인을 내쫓았지만, 오히려 그들이 이 세상에서 내쫓긴 것으로 보이는 이유일 것입니다.

 



독일창착|보림|2009.08.14|40쪽

그림 (아민 그레더) ★

글 (아민 그레더)

이 책을 통해 처음, 보림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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