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이유의 장미 1~10(완결) 세트
이케다 리요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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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베르사유의 장미를 읽었다.

 

난 원래 장미를 좋아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장미가 더 좋아한다.

 

화려하지만 가시를 가지고 있고 끌어들이고 밀어내기도 하는 정말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꽃이 아닐 수 없다.

 

베르사유의 장미란 프랑스 혁명전후의 그야말로 베르사유를 상징하는 동시에 주인공들인 오스칼, 페르젠, 앙투와네트 왕비를 상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베르사유의 장미하면 페르젠과 앙투와네트보다는 오스칼과 앙드레를 생각하곤한다. 앙드레는 앞에선 많이 나오지도 않다가 흑기사때부터 머리카락을 자르더니 완전 빛을 발한다.

 

나역시도 오스칼과 앙드레 때문에 이책을 샀는데 정말 그들은 보면 볼수록 마음이 아프다.

 

이들의 사랑을 보고 있으면 내가 겪는 외로움이나 사랑따윈 아주 가볍고 유치하고 장난같다는 생각마저 드니까 말이다.

 

일생을 걸고 하나뿐인 사랑이라고, 목숨을 바치도록 사랑한다고...대체 그 사랑이라는 게 대체 뭔지, 뭔지, 뭔지!

 

내가 순수했을 무렵, 죽음에 관한 나의 환상이 있었다.

 

그건 나의 죽음에 관한 꿈이었다. 이왕 죽는 것이라면...누군가를 구하며 죽는 것이 좋겠다고 누군가를 위해서 죽는 편이 좋겠다고...그저 자연스럽게, 혹은 병들어 죽는 것보다 그 편이 명예롭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누구를 위해서 죽을 것인가조차 진지하게 생각했을 정도로 순수했다.

 

지금은 그것도 자신의 의협심이라든가 일종의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든다.

 

신분제가 있었던 그 세기...

프랑스 혁명 당시, 한달에도 수십번 단두대가 피를 뿜던 그 당시...

사랑조차도 편안히 할 수 없었던 그 당시...

 

그 당시를 생각하면... 힘들게 여겨졌던 나의 삶이 가볍게 느껴진다.

 

조금 진지해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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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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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말 할 땐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 양 관심을 기울여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사랑하는 가족들, 사랑하는 친구들이라고 말하면서 가끔씩 그들의 말소리를 내 생각에 취해 흘려들을 때가 있다. 그 모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기억하기엔 내 머리의 한계가 있다고 핑계댈만 하건만 사랑이라는 제목에 모두 변명이 되어 버릴 듯 하다...

죽음을 준비하는 모리를 보면서 이제 곧 죽을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소중한게 뭔지 깨닫게 될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자주 죽음을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의 너머와 과정을 생각한다. 내가 죽고 난 뒤, 내가 천국에 가는 것은 좋다. 그것은 평안의 극치고 행복의 극치일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평안한 가운데 준비하면서 이루어지길 기도한다. 죽음을 준비하는 기간이란 사실상...매우 고통스럽고 아플것이다. 하지만... 회개할 시간, 헤어짐을 준비하는 시간이 있다는 것은 확실히 축복일거라 생각한다.

내가 죽는 것까진 좋은데 내가 죽고난 후의 세상은 어떨까? 물론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일 테지만 난 단지 평안함만 누리면 되지만...사뭇 궁금하다.

내가 죽기전에는 뭘 해야할까...? 정말로 소중한 것들을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맡기고 사랑한다고 말하며 갈 수 있을까..?

내가 죽고 난 후에 사람들은 날 생각하며 또한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감정을 느낄까...?

그런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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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
정근표 지음, 김병하 그림 / 삼진기획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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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린이들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말이 있다. 물론 그런사람도 있다. 많은 사람이 어린시절에 순수하고 착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것이 인간적으로 정상이 아닌것은 아니다. 성악설을 믿고있는 나로서는 더욱 그렇다.
아이들은 놀고 싶어하고 즐기고 싶어하고 아프지않고 싶어하고 자기가 젤 편하고 싶어하고 갖고 싶어한다. 젤 많은 사랑을 받고 싶어하며 젤 많은 관심을 갖고 싶어한다. 그것은 일반적이다. 착하게 보이는 아이든 그렇지 않은아이이든 말이다. 갖고 싶어하고 놀고싶어하고 그것을 솔직히 표현하고 표현된것, 어른들이 말한것을 그대로 믿는다. 순수하다. 맞는 말일거다. 그러나 착한것은...사실은 착한것일지 몰라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착하다는 말은 정말이지 너무나 많은 모습을 포함하고 있다. 때로는 선량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때로는 바보같은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주인공이 식이 아재를 내쫓아버린것은 분명 착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식이 아재가 냉방에 앓고 누웠다는 말을 듣고 얼른 뛰쳐나가 배달하며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순수함을 느낄수 있다. 착함과 순수함은 늘 그렇게 똑바르게 연결되지는 않는모양이다.

식이 아재는 경로당에 쌀과 연탄을 기부하고 자신을 밝히지는 않고자 했다. 주인공소년은 그것이 어리석게 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세상을 밝히는 작은 빛을 보았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어리석음은 착함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어린아이보다 때로는 어른이 그것을 어리석음이 아닌 착한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어린아이가 무조건 착하다고 순수하다는 것은 그렇지 못한 아이를 아쉽게 만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든다. 정말 어린이는 다 착하고 순수한걸까? 순수할지는 모른다. 순수하기때문에 너무나 솔직하게 너무나 모든것을 표현하여 피해주는것이 좋다고만은 할수 없지만. (뛰어난 지혜로 하는 일이 아닌한 선한의도로 행한일도 피해를 주게된다.-알베르 까뮈) 어른들은 호의와 선한일, 착한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겉모습일지도 모른다. 나는 실제로 어릴때는 갖은 욕쟁이에 말썽꾸러기에 싸가지도 없었던 사람이 나중에 놀라울 정도로 상냥하게(겉모습뿐일진 모르나...)된것을 보았다. 어린아이는 순수하다. 그러나 반드시 착하지는 않다. 착하다는 그것은 선입관이다. 그런 선입관으로 아이를 대하면 아이는 물론이고 나역시 상처받게 된다. 난 그렇게 생각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이나 그 친구들, 가족의 순수한 모습을 보았다. 때론 착한 모습도 보았다. 상처를 주고 받는 모습도 보았다. 신기하게도 못된 모습이고 때론 이래도 되는거냐, 버릇없네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인간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난 정보다는 사랑을 더 좋아한다. 오래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는...그런 사랑이 더 좋다. 정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사랑은 초인간적이다. 인간 그대로의 모습에 안주하는 것보다 나는 사랑을 갈구하고 싶다. 정때문에 산다라고 말하지 말고 그냥 사랑한다라고 말하자.

정의 모습도 좋지만 그보다 더 큰 사랑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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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녀 웅진 완역 세계명작 6
프랜시스 호즈슨 버넷 지음, 에델 프랭클린 베츠 그림, 손영미 옮김 / 웅진주니어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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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때 한번쯤 꿔보았을만한 꿈이다. 공주님이란 아주 품위있고 고상한데다가 상냥하고 예쁘고 레이스와 프릴로 장식된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은 숙녀이다. 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을것이다. 물론 내게도 어렸을적엔 그런 꿈이 있었다. 어린시절의 내게는 분홍색의 프릴이 달린 긴 잠옷이 있었는데 난 그 잠옷을 좋아했었다. 왜 좋아했는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ㅡㅡ; 드레스같은 옷을 사달라고 조른적도 있었다. 물론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마 결혼하게되어서 웨딩드레스라도 입지 않는이상 드레스를 입고자 하는 꿈은 실현되기 어려울것같다. 하지만 그 꿈을 꾸었던 것은 소공녀를 즐겨읽던 초등학교 3,4학년때적 얘기고 5,6학년 때와 중학교 때는 오히려 왕자가 되고싶었던것같다. 여자애들을 괴롭히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정의의 사도!!! 하긴 내몸하나 지키기에도 급급했지만 어쨌든 그런 꿈을 꾸었었다.

내가 꿈꾸던 공주님은 옛날 기사이야기에 주로 나오는 공주님이었지만 세어러는 그런 공주는 아니었다. 하지만 공주의 전통을 잇고 있는 공주였다. 진짜공주가 아니면서 공주노릇을 한다는 것은 그녀 자신이 한말처럼 쉬운일이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진정 공주다웠다. 강한 자존심과 약자에대한 동정, 갖은 모욕을 당해도 모욕을 준사람처럼 천해지지는 않겠다는 그 고상함은 역시 대단했다. 문득 이 나이에 공주꿈을 꾸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ㅡㅡ;; 하지만 비록 어리지 않다고 해도 고상한 품위를 갖고자하는 20대에게 누가 뭐라고 할 것인가.ㅡㅡ*

냉철하게 생각했을때 그렇게 떠받들려 살았던 세어러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라났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그렇게 떠받들려살다가 추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은것은 또 놀라운 일이다. 세어러의 천성속에 중심을 꿰뚫는 공주정신이 없고서야 이루어지지 못했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공주정신은 어떻게 심을 수 있을까? 품위와 고상함을 상냥함과 자존감을 어떻게 하면 욕하기를 즐겨하고 장난질에 물든 수많은 왕자, 공주 지망생들에게 심어줄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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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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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에 좋게 남아있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초등학교 3학년때 칭찬을 잘 해주셨던 선생님이 기억이 나고 6학년때 답장으로 엽서를 보내주셨던 선생님은 기억이 나지만 4학년때와 5학년때는 맞았던 기억밖에 별로 남은 기억이 없고 유치원때조차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만은 않다. 유치원때 단체기합해가지고 PUSH UP자세를 해본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ㅡㅡ; 암 잘못도 없는데하고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된 나는 그길로 집에 와버렸고 엄마는 감사하게도 내 말을 듣고 유치원을 옮겨주었다. 정말이지, 유치원생들이 그것도 난 5살정도였는데 단체기합의 의도가 뭔지나 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에 나오는 고다니 선생님처럼 상처받으면서 괴로워하면서 일상생활과 남편과의 관계가 방해받을 정도까지 아이들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선생님은 도무지 흔치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는 사람도 있는것은 같은데 그것도 주로 자기입장에서의 이해고 자기 입장에서의 도움이 많다. 이해란 무엇이고 도움이란 무엇인지 먼저 단어의 명확도를 높여야될듯 싶다.

파리를 좋아하고 키우는 데쓰조가 있다.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는 병을 옮기니까 하면서 나름대로 도움을 준답시고 막으려한다. 그러나 오히려 데쓰조는 반항하고 위협하며 도망치고만다. 그러나 데쓰조의 입장에서 다시봤다. 그는 인간의 똥을 먹는 집파리는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파리가 세균을 먹는것은 아니다. 몸에 뭍어있을뿐. 고다니선생님은 데쓰조가 파리박사가 되게끔 도와준다. 수많은 종류의 파리 이름을 가르치면서 글씨를 가르치고 파리그림을 그리게한다. 파리를 닦아줄 소독약을 갖다주고 여러 실험도 하게끔 도와준다. 데쓰조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지만 좋은지 싫은지도 알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고다니선생님조아'라고 쓸수 있게 되었다. 작가가 지은 원제는 '토끼의 눈'이라고 하는데 난 그보다 선생님이 좋다는 이제목이 글로하여금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라해도 말이다.

데쓰조의 이야기에 버금가는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인 바쿠의 이야기이다. 그는 일본의 한국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일본인이 인정하는 진실인것 같아서 어쩐지 다행이었다. 이렇게 그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의 후회나 죄스러움을 통해 작가역시 한국땅에 용서를 비는 듯해 또한 다행이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손과 눈과 소리와'에서도 그런것처럼 한국땅에 관심이 많은것 같았다. 교육계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책만큼이나 다행이었다. 하지만 책과는 별개로 난 생각해야할 문제가 또 있다. 난...선생님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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