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나의 기억에 좋게 남아있는 선생님은 별로 없다.초등학교 3학년때 칭찬을 잘 해주셨던 선생님이 기억이 나고 6학년때 답장으로 엽서를 보내주셨던 선생님은 기억이 나지만 4학년때와 5학년때는 맞았던 기억밖에 별로 남은 기억이 없고 유치원때조차 좋은 기억이 남아있지만은 않다. 유치원때 단체기합해가지고 PUSH UP자세를 해본사람은 흔치 않을 것 같다.ㅡㅡ; 암 잘못도 없는데하고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된 나는 그길로 집에 와버렸고 엄마는 감사하게도 내 말을 듣고 유치원을 옮겨주었다. 정말이지, 유치원생들이 그것도 난 5살정도였는데 단체기합의 의도가 뭔지나 안다고 생각하는가?

이 책에 나오는 고다니 선생님처럼 상처받으면서 괴로워하면서 일상생활과 남편과의 관계가 방해받을 정도까지 아이들을 이해하고 도우려는 선생님은 도무지 흔치 않을 것이다. 선생님들도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는 사람도 있는것은 같은데 그것도 주로 자기입장에서의 이해고 자기 입장에서의 도움이 많다. 이해란 무엇이고 도움이란 무엇인지 먼저 단어의 명확도를 높여야될듯 싶다.

파리를 좋아하고 키우는 데쓰조가 있다. 고다니 선생님은 파리는 병을 옮기니까 하면서 나름대로 도움을 준답시고 막으려한다. 그러나 오히려 데쓰조는 반항하고 위협하며 도망치고만다. 그러나 데쓰조의 입장에서 다시봤다. 그는 인간의 똥을 먹는 집파리는 키우지 않는다. 그리고 파리가 세균을 먹는것은 아니다. 몸에 뭍어있을뿐. 고다니선생님은 데쓰조가 파리박사가 되게끔 도와준다. 수많은 종류의 파리 이름을 가르치면서 글씨를 가르치고 파리그림을 그리게한다. 파리를 닦아줄 소독약을 갖다주고 여러 실험도 하게끔 도와준다. 데쓰조는 여전히 말하지 않았지만 좋은지 싫은지도 알수 없었지만 나중에는 '고다니선생님조아'라고 쓸수 있게 되었다. 작가가 지은 원제는 '토끼의 눈'이라고 하는데 난 그보다 선생님이 좋다는 이제목이 글로하여금 더 가슴에 와 닿았다. 공감할 수 없는 감정이라해도 말이다.

데쓰조의 이야기에 버금가는 이야기는 그의 할아버지인 바쿠의 이야기이다. 그는 일본의 한국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것은 일본인이 인정하는 진실인것 같아서 어쩐지 다행이었다. 이렇게 그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인정하는 사람도 있구나, 싶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그의 후회나 죄스러움을 통해 작가역시 한국땅에 용서를 비는 듯해 또한 다행이었다. 하이타니 겐지로는'손과 눈과 소리와'에서도 그런것처럼 한국땅에 관심이 많은것 같았다. 교육계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책만큼이나 다행이었다. 하지만 책과는 별개로 난 생각해야할 문제가 또 있다. 난...선생님이 좋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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