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넙치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63
귄터 그라스 지음, 김재혁 옮김 / 민음사 / 2002년 5월
평점 :
신에 의해 생명은 가장 고귀한 가치가 되었다. 그런데 왜 국가는 조선소노동자들에게 발포를 했는가? 돌넙치의 딱딱한 등살과 가지런하지못한 입술, 붉게 충혈된 눈은 남자들의 가치를 옹호하고 있다. 진행되는 재판과정 속에서 넘치님의 모습은 투명해지고 점차 여성편력으로 입장을 표명한다.남자들 (오늘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의 치유되지 못한 병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고통은 끝이 없다. 하루 내일 모레 나흘 여흘 진통제투여를 요청한다. 미처 약복용시 신체의 허용량을 계산하지 못한 넙치는 결국 남자들을 죽게 만든다. (남자들은 그렇게 자신들은 자멸시켰다.)
남자들의 단오한 결단력은 그에 따라 예상되는 갖가지의 부작용을 낳았다. (하지만 여성들은 생명을 잉태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국가는 왜 남자들에게 살인을 허용했는가? 경제적, 정치적, 육체적, 정신적인 지구에 대한 파괴행위는 극에 달했다. 세상은 남자에 의한 진통제로 안락사를 맞이 해야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다.
태양의 수명이 긴 이유는 딱 한가지뿐이다. 다른 인류의 등장과 새로움의 시작을 암시한다. 넙치가 사라진 지금 (여성쪽으로 가긴했지만) 우리는 발트해 연안을 옛날 비가와 아우아가 살던 시절의 것으로 돌려놓아야한다. 그 때쯤이면 넙치는 우리에게 말을 걸것이다. "생명은 남자와 여자를 연결하는 가장 원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이며 그 둘 사이의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해결책이자 세계의 위대한 식량자원이 될것이다." 라고 말이다.
넙치의 등줄기를 따라 시대를 거슬러가면서 독일, 폴란드의 역사와 정치적 풍자, 숨겨진 진실들이 마구 마구 넙치의 입속에서 아니 일제빌(한명의 일제빌, 아님 9명의 요리사들)의 몸속에서 잉태되었다. 오스카와 마리아, 얀은 기다란 식탁에 서로 마주 앉아 그들이 직접 발트해 연안에서 가지고온 청어와 연어(소금에 절인)훈제, 소의 내장간요리와 송로버섯요리를 뼈속깊이 맛보고 있다. 곧이어 발트해 연안에서 뛰쳐나와 내 품안에 따뜻한 온기를 가져다줄, 그리고 간절한 진실을 일깨워 줄 넙치를 아련히 생각하면서.
중세 흑사병은 수많은 소시민들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한참 뒤 조류독감(흑사병의 원형인)은 인간을 가만놔두지 않았다. 이에 비해 고위층의 인사들은 너무 웃다가, 혹은 너무 먹다가 목에 뼈가 걸려 숨막혀 죽었다. 죽음에 있어서 왜 넙치는 그들에게 수치스럽고 거북한 죽음을 강요했는가?
남자들은 넙치의 충고를 넘어서는 이외의 것들을 너무도 많이 해왔다. 아프리카 열대밀림의 개간으로 에이즈를, 초식동물에게 육식동물의 살껍질은 주어 광우병을, 거만한 남자요리사의 사향고양이 등 야생동물 식용으로 사스를, 열악한 대량사육 환경으로 조류독감 등을 만들어 버렸다.
바이러스에 항생제를 투여하는 어리석은 남자들은(역사를 스스로 만들던 남자들) 왜 위의 것들을 불필요하게 끌고 다녀야 했을까?
여성법정에 선 넙치는 오직 인류의 평화만 외쳤댔다. 수단이 어찌됐건 목적은 뚜렸했다. 하지만 수단선택의 신중함을 그는 잠시 잊어버렸다. 아니 남자들은 그 겸허함과 인내를 묵살했다. 오로지 단순한 선택에 매료되어 그들은 스스로의 고택골을 만들고 그 곳에서 사장되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의 실수는 용서 받지 못한다. 다만 잊혀질 뿐이다. 그 다음, 또 그 다음의 누군가는 이 오류를 바로 뒤집어야 한다. 넙치에게 배우는 짧디짤막한 충고는 각자 듣는 이의 가슴속에 깊숙히 새겨넣어야 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넙치가 되어선 안된다. 그리고 인류가 진리를 깨닫기에 앞서 그 과정의 순수함을 눈여겨 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