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부스 타킹턴 지음, 구원 옮김 / 코호북스(cohobooks)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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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얻은 긴긴 휴가를 밀린 독서와 독후감 쓰기로 누려보겠다고 다짐했다. 사실 밀린 독후감이 많지만, 그 다짐의 시작은 코호북스에서 보내주신 <앨리스 애덤스의 비밀스러운 삶> 에 관한 글을 쓰기로. 소개글에 워튼이 언급되어 있길래 군말 없이 신청했었는데 보내주셔서 감사했다.

 

미국 문학사에서 1920년대는 중요한 시기 중 하나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디스 워튼 등 내로라하는 문호들이 개성을 드러내던 시기였고, 그 속에서 이 작품의 작가인 부스 타킹턴 또한 소설로써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이름을 떨치던 시기였다고 한다.

 

작품은 앨리스 애덤스라는 인물의 부모를 그리면서부터 시작된다. 자본주의가 무르익기 시작한 시대를 살면서도 여전히 '현실' 에 적응하지 못한 채 옛 규범적 이야기들을 주절거리며 가족들과 갈등을 빚는 아버지, 자기가 아니면 딸이라도 눈에 보이는 화려한 현실의 변화를 좇아가며 살기를 바라지만 녹록지 못한 현실에 히스테리컬 하게 변해가고 있는 어머니, 누구보다 현실을 냉정하게 자각하는 듯 보이며 다소 무기력해 보이는 남동생, 그리고 주인공 앨리스 애덤스.

 

계층이 무엇인지, 자본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던 십 대 시절엔 누구보다 인기 있던 앨리스였으나, 성인이 되니 상황이 변해버린다. 얼굴만 예쁘면 되었던 시절과는 달리, '괜찮은' 배필을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배경> 이 필수적이었다. 사교계에 진출하기 위해, 더 나아가 결혼을 하기 위해 그녀에겐 뒷배가 되어줄 배경이 필요했지만, 그녀의 가족은 그러한 '배경' 이 될 수 없었다.

 

늘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만의 이상적 자아를 꿈꾸던 앨리스. 원하는 결혼 상대를 만난 이후 부유한 집안의 곱게 자란 아가씨인 척 거울 속 또 다른 자신을 연기하지만, 세상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꼭꼭 숨기고만 싶었던 보잘것없는 배경을 조롱하듯 까발린다.

 

표지는 앨리스가 간절히 모으던 꽃을 형상화한 것일까. 러셀에게 앨리스의 실체가 밝혀지던 순간이 참 슬펐는데, 한편으론 작품의 끝이 앨리스의 수치로 끝나는 게 아니어서 좋았다. 오히려 앨리스 자신을 감싸고 있던 몽상적 갈망이 깨지고 진짜 현실을 살아낼 수 있는 힘을 준 것 같아서.

 

어려운 작품은 아니지만 오늘날 평범하지만 더 나은 삶을 욕망하는 이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작품인 것 같다. 무엇보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앨리스들에게 사실 자본의 논리로 굴러가는 이 세계에서의 네 삶이 조롱당해 마땅한 삶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더 나은 삶을 욕망하며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자신을 좌절시킨 현실 속에서 성장하고야 마는 여성 서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

 

코호북스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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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정희진의 글쓰기 1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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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상이 너무 피곤하다 보니 그 여파로 병렬독서를 이것저것 찍먹하며 풍차 돌리기 수준으로 읽고 있는데 언제 다 완독 할지 모르겠다. 어쨌든 출퇴근하며 짬짬이 읽고 있는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이번 편의 부제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부터 나쁜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며,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 아닌 다른 존재를 타자화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끊임없이 의식하고 노력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해 준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었다. 문명 속 차별의식을 곱씹고, 그에 대항하는 나만의 언어를 갖기. 읽으면서 <재현> 의 문제에 관해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룬 텍스트들을 찾아 읽어야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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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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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에 이어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읽는 중인데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 가장 유익한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 나를 둘러싼 맥락이 정치적임을 늘 염두에 두기. 두고두고 필사하면서 곱씹어 볼 어구들이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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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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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읽었는데 기분이 좀 묘하다. 한겨레출판에서 가제본으로 전체 분량의 1/3 정도만 보내주셔서 뒷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프롤로그가 너무 묘했고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가 프롤로그와 맞닿아 있는 것 같기에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프롤로그. 작은 섬, 작은 새들이 작은 열매를 먹고 산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섬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나무가 있다. 따로 태어났으나 언제나 함께이길, 언젠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나의 꽃과 너의 꽃이 구분될 수 없을 만큼." 그러나 이는 나와 너의 삶이 고유해야 궁극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말인 듯하다. 모진 삶의 풍파 속에 나무는 그루터기만 남는다. 그리고 다시 성장할 날을 기다린다. 몸통은 잘려나갔지만 줄기는 단단하게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다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본장. 신복일과 장미수에게는 다섯 아이들이 있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름에서도 보이듯 일화와 월화는 해와 달 같은 아이들이다. 생명력이 넘치고 어디서든 빛난다. 그러나 일화와 월화가 사는 환경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화는 자신의 한계를 긋고 노력을 비웃는 이들에게 증명해 내기 위해 자기 삶을 갉아먹듯 불태운다. 월화는 자신의 뒤에서 펼쳐지는 밤의 무성한 소문을 증명하듯 화려한 빛을 내보인다. 두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서 빛을 내고 삶이 주는 열매를 취하고자 한다.

 

금화는 그런 일화와 월화의 동생이다. 언니들의 빛에 가린 것도 모자라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게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목화, 목수의 영향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산 듯하다. 금화는 언제나 목화, 목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나, 목화와 목수는 '우리' 와 금화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금화로서는 그 말이 내심 섭섭하다.

 

이야기는 그런 금화가 실종된 이후, '능력' 이 발현되어 고통받는 목화의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목화로 이어진 미수와 천자의 이야기. 금화가 사라진 후 목화는 언젠가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속에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그 속에서 자신은 '단 한 사람' 만을 살릴 수 있다. 단 한 사람을 살리자고 다른 많은 이들의 죽음을 눈 감아야 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목화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왕 살릴 거면 사라진 금화를 찾아 살려내고 싶다.

 

금화. 땅을 나타내는 듯한 이름이다. 땅, 대지, 흙. 금화가 사라지던 날, 금화가 거대한 나무에 깔리고, 목수가 금화를 구하려다 함께 깔리고, 목수가 구조된 현장에서 금화는 연기 같이 사라졌었다. 나는 어쩌면 목수의 삶이 금화의 죽음을 딛고, 그 토양 위에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나무와 꽃이, 다음 나무와 꽃의 거름이 되듯이. 목수의 이름을 바꿔 말하면 수목. 수목樹木 살아 있는 나무, 수목壽木 인간의 삶. 어쩌면 단 한 사람만 살릴 수밖에 없는 순간,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를 살리고, 금화는 죽음을 통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의 삶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목수가 살아나고, 이후 목화도 함께 살아난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목수와 목화, 나무와 꽃은 한 몸에서 비롯되나 한 몸이 아니다. 나무는 흙을 자양분으로 꽃을 피워내지만, 꽃은 영원히 피어 있지 않다. "영원한 건 오늘뿐이고, 세상은 지금으로 가득" 할 뿐이다. 꽃은 현재를 살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고, 그 꽃의 투쟁은 이름에서부터 장미가 떠오르는 엄마 장미수의 삶과 이어진다.

 

책의 소개글에 "나뭇잎 한 장만큼을 빌려 단 한 사람씩만 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일" 이란 말이 있었다. 무수한 죽음 속에서 단 하나의 생명밖에 살릴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의 영웅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불어 단 한 사람의 손길과 눈길만 있어도,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지속되기에 충분함을, 그렇게 삶이라는 숲에서 초록 잎들이 무성하게 번져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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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9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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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는 먼 나라, 과거 일이 아니다. 이번 호는 일본해 표기의 세계화가 제국주의의 잔재임을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어 스며든 제국주의를 가시화하고 거리를 둘 것을 이야기한다. 

 

중남미의 옥수수와 강낭콩은 그곳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 생계 수단이기도 하나 동시에 자본과 결합된 미 제국주의의 생물해적행위Biopiracy 의 상징물이다. 이런 와중에 제국주의 시대 황금기를 되찾기 위해 스페인 우파는 미국과 손을 잡고자 하는 아이러니. 

 

2차 대전 전범국의 일원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전쟁 이후 줄곧 중립국 위치를 고수해 왔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해서 '입장 표명' 을 요구받고 있다. 능동적·참여적 중립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오스트리아는, 이제 '중립국 오스트리아는 허상이다'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본 그 자체를 위해 싸우는 용병들은 전쟁이 확산되고 참상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자본이 키운 괴물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고용주' 가 사라진 상황에서 푸틴의 명을 따를 것인가? 

 

돈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 자유를 사는 이들도 있다. 보석금은 가진 자들은 법의 그물망에서 쉽게 빠져나오게 만드는 반면, 없는 자들은 보석금 혹은 엄중한 형법이라는 마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유럽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었으나, 서구 열강의 얌체짓을 견뎌왔던 개발도상국들은 일종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이민을 감행했던 이란인 이민자들. 미국도 이란도 아닌 경계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한다. 그들은 자국의 가족들을 걱정하여 미국식 이름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자국식 문화는 완전히 잊은 지 오래이다. 

 

서구 제국주의 침공 이전, 다소 유연하게 해석되던 이슬람 내 여성 및 동성애 관련 법규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보수화된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에 여성 해방을 촉진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젠더 체계에 이슬람 여성들을 편입시켰을 뿐이다. 젠더 체계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므로, 서구 사상에 근거한 유럽식 여성 해방은 필연적으로 이슬람 규범과의 대립을 낳아 민주주의를 지연시킬 뿐이다. 

 

강자의 폭압은 국가 간 제국주의 형태로만 발생하는가. 국가의 감시체제를 상징하는 CCTV는 정작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상은 너무 많은 반면, 그 영상을 관리할 사람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폭동' 이 일어나면 정치인들은 으레 폭동 연루자들을 '타자' 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억압을 가한다. 기록이 없으면 그들에 대한 경찰범죄는 폭동 진압으로써 당연해진다. 그러나 기록은 공유를 통한 연대로써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복잡다단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인간은 환상을 노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세계 속에서 약자에 손을 뻗는다고 세상이 변하긴 할까. 물론 동물과 같은 이 세계 소수자를 구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으면 그의 삶이 온전히 바뀔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내 인생 또한 바뀔 수 있다. 

 

새벽 내내 읽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 이번 호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현대까지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가라는 주제로 관통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듯하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그렇듯 미처 알지 못했던 사안들과 국내에선 접해보지 못할 관점들을 접하는 게 즐겁고, 각 이슈를 선별하기 위한 고민 과정이 궁금하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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