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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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젊작 중에서 좋았던 두 편

 

 

방임된 세 사람의 유사가족적 연대와 모험 ㅣ 단편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이미상 저

 

카페에 세 여자가 있다. 그중 둘은 소설 쓰기의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한 여자가 자신의 소설에는 한방, 즉 에피파니epiphany 가 없다고 하나 실은 그 한방의 부재가 자신의 <선택> 으로 말미암은 거라 주장한다. 이에 듣고 있던 다른 여자는 그건 선택이 아닌 <능력> 부재의 결과라 반박한다. 두 사람이 선택의 문제냐, 능력의 유무냐의 문제에 관해 논할 때 세 번째 여자가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실천> 을 보여준다. 비록 의지에 비해 몸이 따라주지 않는 세 번째 여자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할 수 있는 바를 실천' 한다. 이런 세 사람의 이야기를 주인공 목경이 엿듣고 있다. 사실 엿듣기 위해 듣고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모의 상중喪中 인 목경은 세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고모와의 기억을 떠올린다.

 

가족으로부터 소외된 집안의 막내딸 고모와 양육의 책임을 던져버린 부모로 인해 방임된 목경과 무경. 세 사람의 관계는 고모가 집안에서 가출하여 목경과 무경의 집으로 오면서 시작된다. 어린 목경과 언니 무경은 꽤 다른 자매였다. 무경은 늘 책을 읽으며 ㅡ 어쩌면 현실도피와도 비슷한 모습을 보이며 ㅡ 지금은 경험할 수 없는 무수히 많은 이름과 세계 속에 매몰된다. 어린 목경은 부모 대신 자신과 함께 해주는 고모에 매몰되고 고모에 대해 언니 무경과도 공유하고 싶지 않은 독점적이고도 배타적인 소유욕을 느끼나, 세 사람의 모험 끝에서 고모의 선택은 무경이 된다.

 

액자식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별개의 무관한 두 이야기가 병렬된 것으로 보이나 사실 선택과 능력의 문제라는 측면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고 싶다 한들 할 수 없는 일

어린 목경은 발랄하나 경험의 부족으로 언니 무경의 세계와 고모를 둘러싼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고모를 독점하기 위해 고모의 관심을 끌기 위한 무엇이든 하려 하나, 애초에 고모의 내면을 알아차릴 경험 및 통찰이 부재했기에 고모의 선택을 받을 수 없었다.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

집안의 원치 않는 막내딸의 위치였던 고모는 어쩌면 살아오면서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그러나 할 수는 있는) 일들을 해오는 것에 체념하며 살아온 걸지도 모른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인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사냥을 떠나며 은밀한 내면을 보여주고자 하나 자신의 욕망이자 병기인 '츄츄' 를 잃어버리며 보이는 모습은 다시금 할 수는 있으나 하고 싶지 않은 일에 짓눌려 살았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이런 지점에서 고모가 하기 싫은 일을 무경이 정확히 짚어내어 대신해내며 작품 속에서, 고모의 시선 속에서 '융기' 한다. 이는 어쩌면 조카와의 관계 속에서 고모가 찾아낸 (목경은 몰랐을) 한방이자 에피파니가 아니었을까.

 

단편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속 세 사람 고모와 목경과 무경은 가족의 보살핌으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이다. 작품은 이들이 유사가족을 이루며 시작되는 이야기이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능과 선택의 문제라는 갈래 속에서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실천하는 액자 밖 이야기의 세 번째 여성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빈 괄호의 삶 ㅣ 단편 <제 꿈 꾸세요>, 김멜라 저

 

화자는 자살과 사고사의 중간쯤에서 애매하게 죽은 상태로 남겨질 시신과 공과금 고지서 등의 처리 문제로 생애 관계있던 사람들의 꿈속에 나타나고자 한다. 죽음의 원인에 관한 오해를 풀기 위해 사랑했던 이들의 꿈속에 나타나고자 한다. 친구, 연인, 엄마의 꿈속으로. 작품 속 망자는 길손이라는 이름으로, 길손의 길을 안내하는 자는 가이드라는 이름으로 지칭된다. 길손은 생애 걸어온 길을 너머 먼 길을 떠나는 나그네란 뜻으로 지어진 걸까. (그렇다면 꽤나 낭만적이다) 친구의 꿈속으로 갈까, 헤어진 연인의 꿈속으로 갈까, 엄마의 꿈속으로 갈까 고민하던 길손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완결하기보다는 미완결의 빈 괄호의 상태로 두기로 결심한다. 자신을 위해 그들의 꿈속으로 찾아가기보다는, 그들을 위한 꿈을 만들어 주고자 한다.

 

내가 읽은 김멜라 작가님의 <제 꿈 꾸세요> 는 홀로 외롭게 죽어간 이가 사랑하는 이들의 꿈속에서 그들의 환대와 마중, 웃으며 떠나는 이별을 바라는 이야기였다. 죽은 자의 이야기가 이토록 서정적이고 말랑할 수 있을까. 삶을 빈 괄호의 상태로 남겨두겠노라 말하는 화자의 다짐이 인상적인데, 어쩌면 '빈 괄호' 란 어떤 선결된 판단도 유보하고 주어진 삶이라는 가능성의 바다를 마음껏 유영해 보라는 작가님의 메시지가 응축된 표현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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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쓰는가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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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호의 왜 쓰는가에 관한 답이 궁금해 읽기 시작한 책. 자신을 이루는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에 관한 탐구로부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미국 사회, 그리고 그 사회를 재현하는 방식에 관한 치열하고도 부단한 고뇌와 성찰이 인상적인 책이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인물의 행동을 위한 조건 및 환경적 요인에 관해 근원의 근원을 파헤치듯 철저하게 분석해 갈까. 본인 스스로가 유대인인 그와 다른 유대인 독자들 간의 관계는 흡사 리처드 도킨스와 진화론을 부정하는 이들의 관계 같기도 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이토록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독파 팀에서 마련해 주신 정영수 작가님과의 줌 토크 영상도 보고 <미국을 노린 음모> 를 비롯하여 그의 저서 몇 권을 읽은 후, 다시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든다.

 

한 시대를 풍미한 대문호의 '왜 읽는가, 왜 쓰는가, 왜 사는가, 어떻게 살 것인가' 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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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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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사생아로 태어나 수녀원에 버려지다시피 한 주인공 마리 드 프랑스는 수녀원장이 되면서 세상에서 소외되고 버려진 여성들만을 위한 유토피아를 만들고자 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 울고, 그들을 위해 무기를 들며, 그들을 위해 환경을 개혁해 나가는 마리. 수녀들에게 그런 마리는 왕이자 교황이나 다름없는, 존재 자체로 혁명인 사람이었다. 마리는 수녀들의 현실적 고통에 직면하여 감당할 수 없는 괴로움에 휩싸일 때는 성서의 모든 문구를 여성형으로 바꾸곤 한다. 자신들이 이루어 낸 지상의 유토피아는 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수녀들을 위해서임을 되새긴다. 한 사람의 일대기를 다룬 이야기라 마리의 죽음으로 끝을 맺은 이야기였으나, 오히려 마리의 죽음을 반드시 보여주어야 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마리가 죽은 후에도 생애 내내 바랐던 유토피아적 이상이 수녀들의 삶 속에 구현되었다는 걸 볼 수 있었기에. 이브로부터 이어지는 유구한 여성의 역사 속에서 지금 나와 함께 현존하는 자매들을 위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자에 관한 이야기.

 

발췌

 

[...]  해를 거듭하면서 마리는 수녀원의 고해신부가 될 것이다. 고해를 들으면서, 그녀의 분노는 그들의 편에서 더욱 뜨겁게 타오를 것이다.

 

[...]  마리는 고해신부가 됨으로써 신과 더 가까워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그 때문에 실망한다. 이렇게 하면서 소명의 근원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랐기에. 하지만 위로가 되는 게 있다면, 각자의 비밀이 공유될 때마다 수녀원장에 대한 수녀들의 사랑이 점점 커가는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  그들의 슬픔이 마리를 너무 무겁게 내리눌러 잠을 이룰 수 없을 때, 마리는 종종 필사실로 내려가 라틴어로 된 미사전서와 시편을 여성형 단어들로 바꾼다. 여자들만 듣고 말할 글인데 안 될 게 뭐 있는가? 그녀는 그렇게 바꾸면서 혼자 웃는다. 남성형 단어에 줄을 그어버리고 여성형으로 대체하는 것은 사악하게 느껴진다. 재미있다.

 

[...]  이 공동체는 소중하고, 여기엔 심지어 가장 많이 미친 사람, 버려진 사람, 까다로운 사람을 위한 장소도 존재하고, 이 울타리 안에는 가장 사랑받지 못한 여인들에게 줄 수 있는 사랑도 충분하다. 기타의 삶은 얼마나 짧고 외로웠는가. 잔인한 세속의 세상에서 길을 잃고 고립되어 살았던 사람. 여기 자신을 사랑해준 자매들 없이 살아야 했다면, 그녀가 이 결함 많고 힘든 삶에 가져온 아름다움은 아주 적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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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 프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7
이디스 워튼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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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살아 있는 게 더 끔찍할지 모를 새하얀 스탁필드의 겨울은 이선 프롬의 발목을 족쇄처럼 옭아맨다. 가난한 집안은 그가 꿈꾸던 세상으로의 도약과 배움에 대한 갈망을 짓누르기에 충분했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아내로 이어지는 병간호로 인해 그의 삶은 말 그대로 죽느니만 못한 삶이 된다.

 

이선은 어머니의 병간호를 맡던 사촌 지나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떠날 기미를 보이자 스탁필드에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휩싸여 지나에게 결혼을 제안했다. 충동적인 제안은 평생을 그를 옥죌 족쇄가 된다. 사랑 없는 결혼. 이선은 이내 곧 지나에게 냉담해지고 지나는 병치레를 하며 '투덜'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러한 숨 막히는 현실은 이선으로 하여금 맷과의 새로운 삶과 자유를 꿈꾸게 한다.

 

그러나 이는 자기 욕심으로 지나의 발목을 잡아 스탁필드에 가둬두고 짐짝 취급하는 이선에 대한 불만과 원망의 투덜댐이나 다름없었다. 꺼져가는 자신을 향한 눈빛이 조카 매티를 향해 반짝이는 걸 보며 지나는 어떤 심정을 느꼈을까. 맷이 지나의 그릇을 깨고 이선이 맷의 행동을 변호해 주는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신음하는 이에 대한 동정심 때문에 모든 걸 뒤로 하고 스탁필드에 남기로 결심했던 지나의 마음이 곧 그 그릇과도 다름없어 보였기에. 스탁필드의 사람들은 이선 프롬이 스탁필드에서 '너무 많은 겨울' 을 난 거 같다며 그의 선조로부터 이어지는 운명을 동정하나 나로서는 청교도적 사회상 속 가난과 은근한 가부장적 환경에 짓눌린 탓에 하고 싶은 말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해 속병이 난 지나가 가엾기 짝이 없었다.

 

가난과 운명에 짓눌려 이상을 좇지 못한 한 남자의 기구한 삶에 관한 이야기라고들 하나, 그에 의해 발목이 끊어진 또 다른 삶에 더 눈길이 갔던 이야기. 운명은 가혹했고, 그들은 결코 그 집을 벗어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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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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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무엇인가. 한 인간의 내면의 울림을 외재화하는 수단이기도 하면서 세상과 개인을 매개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소설 <언어의 무게> 주인공 레이랜드는 번역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그는 평생을 문학 작품과의 분투 속에서 언어와 사고의 관계, 더 나아가 언어와 삶과의 연관에 관해 아주 기민하게 반응하는 사람이다.

 

권위적인 아버지의 영향 아래 문학과 언어는 그의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고 더 나아가 생계 수단이 되었다. 지적이고 진보적인 출판사 딸 리비아와 사랑에 빠진 그는 리비아가 활짝 열어준 세상에서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둘러싸여 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출판사를 물려받은 아내 리비아는 카리스마 있고 연대 의식이 투철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리비아와 레이랜드 슬하의 딸과 아들 또한 각각 의사와 법조인인 엘리트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속한 엘리트 집단의 언어를 통한 특권의식화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이는 주인공 레이랜드에게 오진을 내리고도 사과하지 않는 의사의 오만함, 안락사 문제를 둘러싼 작가의 중심 생각으로까지 이어진다.

 

작품은 단어의 음성학적 차이에 따른 다른 느낌 표현의 차원을 넘어, 언어가 한 사람의 영혼을 넘어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으로까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다루고 있다. 특히 러시아라는 제국의 압제 하에서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인물의 사연과 그가 모국어를 잃지 않기 위해 애썼던 부분이 굉장히 뭉클했다. 더불어 앞서 언급한 안락사 문제를 굉장히 심도 있게 다루는데 죽기 직전 명시적으로 의사를 표현하지 않은 이의 죽음을 조력한 자에게 '처벌을 내린다' 라는 게 합당한가에 관해 작가가 굉장히 회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레이랜드는 오진으로 인해 아내가 물려준 출판사를 잃었지만, 이는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자신을 알아야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거나 마찬가지였다. 이렇듯 언어와 삶의 관계를 통찰한 주인공이 이제 스스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한 창작 행위를 하게 되었다는 건 의미심장한 일임에 분명하다.

 

인간과 세계를 매개하는 수단으로서의 언어가 한 사람에게는 목적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생애 소중한 인연과 기억을 놓지 않겠다는 투쟁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언어를 잃지 않으려 애쓰는 레이랜드의 모습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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