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과 신자유주의 - 새로운 정치 질서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Philos 시리즈 28
게리 거스틀 지음, 홍기빈 옮김 / arte(아르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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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리 거스틀의 <뉴딜과 신자유주의> 는 1920년대 이후 미국의 뉴딜New Deal정책을 야기한 사회변화상과 더불어 뉴딜정책이 일으킨 변화와 정치질서, 스태그플래이션stagflation 이후 뉴딜정책의 침체와 신자유주의의 부상, 더불어 추락했으나 그럼에도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신자유주의의 흔적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 다닐 때 주워들은 것도 있고 여러 언론과 매체에서 신자유주의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한 꼭지씩 읽어온 게 있기에 마냥 생소한 건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이렇게 시대 흐름에 따라 역사 맥락에 맞춰 총체적으로 정리해 준 걸 읽는 경험은 처음인지라 꽤 흥미롭게 읽었다. 1920년대 초반의 뉴딜정책부터 다루긴 하지만 저자는 20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의 핵심 인물, 정책 및 사건 등을 다루며 신자유주의라는 하나의 질서를 다면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책이다.

예전에 연설 수업을 들은 적이 있었다. 21세기 현시점에서 영미권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연설문에 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이 장벽을 허무시오(Tear Down This Wall)' 연설이었다. 배우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은 딕션도 어찌나 훌륭하시던지 어학 공부 소재로 제격이었다는 기억. 어쨌든, 당시 레이건 대통령은 당대 러시아 대통령이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를 향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변화와 포용을 환영한다. [...] 당신이 평화를 바란다면, 소련과 동유럽권의 번영과 자유화를 바란다면, 이곳에 와서 문을 여시오! 장벽을 허무시오! (Open this gate! Tear down this wall!)"

이 책을 읽음과 함께 지금 와서 다시 생각을 해보면, 누구를 위한 변화와 포용인가, 누구를 위한 번영과 자유화인가를 되묻게 된다. 물론 지난 미 대선 당시 민주당 경선 대회에서 "I knew Ronald Regan. I worked for Ronald Regan. You're no Ronald Regan! (난 로널드 레이건을 알고 그를 위해 일했어요. (트럼프) 당신은 로널드 레이건이 아닙니다!)" 라는 말과 함께 트럼프를 저격하고 레이건과 선을 그으며, 레이건 시절을 낭만화하던 공화당원도 보긴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건 시절로부터 비롯되어 트럼프 시절에서 변주되어 재현되는 자유와 탈규제의 흐름이 결코 국내적 차원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을, 국제적 차원에서는 개발도상국을 비롯한 빈국을 위한 것은 아니었음을 주지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세계화의 흐름과 함께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질서는 전 세계를 탈규제, 사유화, 자유시장 원칙의 유행에 편승하게 했다. 이에 따라 각 사회는 재정적 불안정을 비롯한 사회적 불평등에 고통 겪음은 물론이고, 사회 안전망의 해체로 사회적 약자들을 죽음의 문턱까지 몰아붙임을 당연시하게 된다.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정점을 찍고 해체되는가 싶던 이러한 질서는, 트럼프의 부상과 함께 다시 한번 그 존재를 사회 속에 자리매김한다. 트럼프의 시대마저 끝난 오늘날의 세계는 뉴딜 질서나 신자유주의 질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묻힌 채 복잡다단하게 엉켜 새로운 정체성을 지닌 질서로 나타나지 않겠는가.

좀 더 읽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 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혹은 영미권의 역사, 세계 경제사, 혹은 국제정치학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일독해 보셔도 좋을 법한 책이다.

아르테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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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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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보영 시인의 신간을 읽었다. 작가가 미국 아이오와 대학교 국제창작프로그램(IWP) 에 참여하며 기록한 단상들을 엮은 일기 형식의 산문집이다. 사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의 SNS를 읽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삶도 있구나, 싶어서 흥미롭게 읽어 내려갔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화두는 엑소포닉exophonic, 즉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글을 쓰는 이들. 엑소포닉들이 모인 프로그램에서 한국어라는 단일 언어만을 구사하는 작가가 새로운 세상에 마음을 열고 자신 또한 엑소포닉으로의 길을 한 걸음 내딛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일기 속에는 다양한 엑소포닉들이 나온다. 그들은 자의로 혹은 타의로 모국을 떠나 타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도 있고, 한국에서 주류 한국인으로 한국어만을 구사하는 작가와 같은 경우도 있다.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이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기도 불협화음을 이루기도 하지만, 작품은 분명한 건 서로에 대한 마음을 여는 순간부터 상대에 대한 이해가 시작된다는 걸 짚는다.


사실 책만 읽고서 작가가 아이오와에서 겪은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처음 아이오와에 발 디딜 때와 달리 점점 아이오와에 매료되어 "돌아가기 싫어" 를 이야기하는 작가의 변화를 통해 IWP 프로그램이 얼마나 매력적인 프로그램인지 가늠이 된다. 통통 튀는 문체로 일상을 다른 각도로 보는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유쾌하게 읽으시리라 생각된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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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 빛과 물질의 탐구가 마침내 도달한 세계
그레고리 J. 그버 지음, 김희봉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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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J. 그버의 <보이지 않는> 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음' 에 관한 매력적인 여정을 안내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관한 개념 설명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보이지 않음을 구현해내고자 하는 과학자들의 노력, 그에 따른 연구의 발전, 더불어 이것이 사회 전반에 끼치는 영향에 관해 소개한다.

'보이지 않음' 에 대한 인간 호기심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저자는 플라톤의 <국가> 를 통해 그 열망이 고대로부터 이어져 오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그버는 '보이지 않음' 이라는 현상을 이룩하기 위한 초기 과학괴 광학의 발전 과정 또한 소개해준다. 더불어 이것이 의학에 영향을 미쳐 엑스선과 같은 보이지 않는 전자기파들이 어떻게 인간 신체 구조를 드러내 이전보다 더 정확한 의료 행위를 가능하게 해 주었는가를 이야기해 준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루어내기 위해 몰두한 '보이지 않음' 은 과학 분야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이는 SF 작가들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과학과 문학은 상보적 영향을 주고받으며 인간 상상력을 증폭시킬 무한한 가능성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감시, 사생활과 개인의 자율성 문제 등 보이지 않음이 유발할 수 있는 윤리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짚으며 이에 대한 인류 공동의 책임감 있는 혁신과 윤리적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고대 미신에서부터 최신 과학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음을 이루어내기 위한 인류의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함께 하며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왔던 투명망토의 존재가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다면 무엇을 할까라는 질문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다만 더 많은 실험과 상상의 끝이 누군가의 피해를 담보로 하는 미래가 아니길 바라본다.

을유문화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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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점심
장은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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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의 유산 후 느려지고 게을러진 아내를 두고, 지난날의 아내를 그리워하는 남편. 팍팍한 서울살이에 여기저기 치이다가도 어느 날의 피아노 연주에 다시 한번 삶의 의지를 다 잡아볼까 생각하는 남자. 가을을 담은 고요한 눈을 마음에 담았다 그 마음 주고받을 새 없이 이별하게 된 남자. 봄이 와도 행복하지 않다더니 가족을 떠나고서야 봄을 알게 되었다는 아버지.

작품 내내 그려지는, 먼지 같이 부유하는, 혹은 끈적하게 눌어붙은 인물들. 동시에 그이들을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관망하는 듯한 인물들. 그들 면면에서 보이는 무심함, 이기심, 그로 인해 주변인들이 느끼는 심적 폭력은 어떻게 이해해야 좋을까. 온전히 이해할 순 없는 삶들이나 그럼에도 함께 가벼운 점심을 나누며 축복을 빌어주고 싶은 사람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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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피로한가 - 제로섬게임과 피로감수성
김정희 외 지음 / 르몽드코리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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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를 비롯한 저자의 문제제기들을 꾸준히 접했는데 이것은 또 무슨 인연일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피로사회’ 의 모습을 띠게 되었는가를 말하던 작품. 현대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일원으로서 어렵지만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가며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우리는 왜 피로한가> 는 그때 그 시절 피로사회가 한국 사회에 던졌던 화두였던 ‘피로사회’ 라는 개념 위에 2024년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우리를 돌아보는 글이다. 특히 MZ 세대에게 친숙한 K입시와 K팝을 중심으로 현 시대를 톺아보는 글은 이 사회가 지속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자기 계발” 이란 주술을 걸며 끊임없이 개인들을 압박한 결과로 이루어져 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극한의 성공모델인 K입시와 K팝. 책은 스스로를 죽음과도 같은 경쟁으로 내모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걸까, 더불어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를 되묻는 듯하다.


주말이 되어도 고단하기만 하고 주 4일제를 입버릇처럼 중얼거리는 매일. 우리는 대체 왜 피로한가.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책은 성과 지향적인 신자유주의와 소비자본주의의 결합을 지적하고, 그러한 결합이 내가 좋아하는 ‘좋아요’ 들을 이용해 내 눈과 귀를, 끝내는 죽도록 즐기다 못해 숨통까지 틀어막을 수 있음을 지적한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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