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언어를 위해서 쓴다 - 융합과 횡단의 글쓰기 정희진의 글쓰기 5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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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에 이어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읽는 중인데 개인적으로는 시리즈 중 가장 유익한 것 같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내 존재와 위치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고, 나를 둘러싼 맥락이 정치적임을 늘 염두에 두기. 두고두고 필사하면서 곱씹어 볼 어구들이 많아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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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사람
최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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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전에 읽었는데 기분이 좀 묘하다. 한겨레출판에서 가제본으로 전체 분량의 1/3 정도만 보내주셔서 뒷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프롤로그가 너무 묘했고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가 프롤로그와 맞닿아 있는 것 같기에 생각을 좀 정리해보고자 한다.

 

프롤로그. 작은 섬, 작은 새들이 작은 열매를 먹고 산다. 섬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섬에는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두 나무가 있다. 따로 태어났으나 언제나 함께이길, 언젠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나의 꽃과 너의 꽃이 구분될 수 없을 만큼." 그러나 이는 나와 너의 삶이 고유해야 궁극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말인 듯하다. 모진 삶의 풍파 속에 나무는 그루터기만 남는다. 그리고 다시 성장할 날을 기다린다. 몸통은 잘려나갔지만 줄기는 단단하게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기에 다시 자랄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본장. 신복일과 장미수에게는 다섯 아이들이 있다.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 이름에서도 보이듯 일화와 월화는 해와 달 같은 아이들이다. 생명력이 넘치고 어디서든 빛난다. 그러나 일화와 월화가 사는 환경은 그들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일화는 자신의 한계를 긋고 노력을 비웃는 이들에게 증명해 내기 위해 자기 삶을 갉아먹듯 불태운다. 월화는 자신의 뒤에서 펼쳐지는 밤의 무성한 소문을 증명하듯 화려한 빛을 내보인다. 두 아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삶에서 빛을 내고 삶이 주는 열매를 취하고자 한다.

 

금화는 그런 일화와 월화의 동생이다. 언니들의 빛에 가린 것도 모자라 나이 차이 얼마 나지 않게 태어난 이란성쌍둥이 목화, 목수의 영향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한 채 산 듯하다. 금화는 언제나 목화, 목수와 함께 하고 싶어 하나, 목화와 목수는 '우리' 와 금화는 다르다고 선을 긋고 금화로서는 그 말이 내심 섭섭하다.

 

이야기는 그런 금화가 실종된 이후, '능력' 이 발현되어 고통받는 목화의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목화로 이어진 미수와 천자의 이야기. 금화가 사라진 후 목화는 언젠가부터 꿈을 꾸기 시작한다. 그 꿈속에선 무수히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그 속에서 자신은 '단 한 사람' 만을 살릴 수 있다. 단 한 사람을 살리자고 다른 많은 이들의 죽음을 눈 감아야 하다니,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지 목화는 이해할 수 없다. 이왕 살릴 거면 사라진 금화를 찾아 살려내고 싶다.

 

금화. 땅을 나타내는 듯한 이름이다. 땅, 대지, 흙. 금화가 사라지던 날, 금화가 거대한 나무에 깔리고, 목수가 금화를 구하려다 함께 깔리고, 목수가 구조된 현장에서 금화는 연기 같이 사라졌었다. 나는 어쩌면 목수의 삶이 금화의 죽음을 딛고, 그 토양 위에서 살아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은 나무와 꽃이, 다음 나무와 꽃의 거름이 되듯이. 목수의 이름을 바꿔 말하면 수목. 수목樹木 살아 있는 나무, 수목壽木 인간의 삶. 어쩌면 단 한 사람만 살릴 수밖에 없는 순간,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를 살리고, 금화는 죽음을 통해 흙으로 되돌아간 것이 아닐까.

 

누군가 금화가 아닌 목수의 삶을 살리기로 결정을 내림으로써 목수가 살아나고, 이후 목화도 함께 살아난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목수와 목화, 나무와 꽃은 한 몸에서 비롯되나 한 몸이 아니다. 나무는 흙을 자양분으로 꽃을 피워내지만, 꽃은 영원히 피어 있지 않다. "영원한 건 오늘뿐이고, 세상은 지금으로 가득" 할 뿐이다. 꽃은 현재를 살기 위해 투쟁해야만 하고, 그 꽃의 투쟁은 이름에서부터 장미가 떠오르는 엄마 장미수의 삶과 이어진다.

 

책의 소개글에 "나뭇잎 한 장만큼을 빌려 단 한 사람씩만 구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의 일" 이란 말이 있었다. 무수한 죽음 속에서 단 하나의 생명밖에 살릴 수 없는 인간의 유한성을 보여주면서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한 사람의 영웅성을 보여주는 듯하다. 더불어 단 한 사람의 손길과 눈길만 있어도, 그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지속되기에 충분함을, 그렇게 삶이라는 숲에서 초록 잎들이 무성하게 번져나갈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을 하며.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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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 Le Monde Diplomatique 2023.9 2023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브누아 브레빌 외 지음 / 르몽드디플로마티크(잡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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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는 먼 나라, 과거 일이 아니다. 이번 호는 일본해 표기의 세계화가 제국주의의 잔재임을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삶의 곳곳에 내면화되어 스며든 제국주의를 가시화하고 거리를 둘 것을 이야기한다. 

 

중남미의 옥수수와 강낭콩은 그곳이 삶의 터전인 이들에게 생계 수단이기도 하나 동시에 자본과 결합된 미 제국주의의 생물해적행위Biopiracy 의 상징물이다. 이런 와중에 제국주의 시대 황금기를 되찾기 위해 스페인 우파는 미국과 손을 잡고자 하는 아이러니. 

 

2차 대전 전범국의 일원이었던 오스트리아는 전쟁 이후 줄곧 중립국 위치를 고수해 왔으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계속해서 '입장 표명' 을 요구받고 있다. 능동적·참여적 중립국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던 오스트리아는, 이제 '중립국 오스트리아는 허상이다' 라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국가와 국민이 아닌 자본 그 자체를 위해 싸우는 용병들은 전쟁이 확산되고 참상을 키우는데 일조한다. 자본이 키운 괴물들, 그들은 과연 자신들의 '고용주' 가 사라진 상황에서 푸틴의 명을 따를 것인가? 

 

돈을 위해 전쟁을 불사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돈으로 자유를 사는 이들도 있다. 보석금은 가진 자들은 법의 그물망에서 쉽게 빠져나오게 만드는 반면, 없는 자들은 보석금 혹은 엄중한 형법이라는 마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는 유럽에게 공포를 가져다주었으나, 서구 열강의 얌체짓을 견뎌왔던 개발도상국들은 일종의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을 느끼는 심리)를 경험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 이민을 감행했던 이란인 이민자들. 미국도 이란도 아닌 경계에서 디아스포라를 경험한다. 그들은 자국의 가족들을 걱정하여 미국식 이름을 고수하면서도, 동시에 자국식 문화는 완전히 잊은 지 오래이다. 

 

서구 제국주의 침공 이전, 다소 유연하게 해석되던 이슬람 내 여성 및 동성애 관련 법규들은 서구 열강에 의해 보수화된다. 그들은 이슬람 세계에 여성 해방을 촉진시킨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젠더 체계에 이슬람 여성들을 편입시켰을 뿐이다. 젠더 체계는 이데올로기적·정치적 기반 위에서 작동하므로, 서구 사상에 근거한 유럽식 여성 해방은 필연적으로 이슬람 규범과의 대립을 낳아 민주주의를 지연시킬 뿐이다. 

 

강자의 폭압은 국가 간 제국주의 형태로만 발생하는가. 국가의 감시체제를 상징하는 CCTV는 정작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영상은 너무 많은 반면, 그 영상을 관리할 사람은 터무니없이 적기 때문이다. '폭동' 이 일어나면 정치인들은 으레 폭동 연루자들을 '타자' 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억압을 가한다. 기록이 없으면 그들에 대한 경찰범죄는 폭동 진압으로써 당연해진다. 그러나 기록은 공유를 통한 연대로써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런 복잡다단한 갈등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 인간은 환상을 노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런 세계 속에서 약자에 손을 뻗는다고 세상이 변하긴 할까. 물론 동물과 같은 이 세계 소수자를 구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진 않는다. 그러나 내가 손을 뻗으면 그의 삶이 온전히 바뀔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내 인생 또한 바뀔 수 있다. 

 

새벽 내내 읽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9월호. 이번 호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가 현대까지 어떤 영향을 끼쳐왔는가라는 주제로 관통하여 설명하고자 하는 듯하다.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늘 그렇듯 미처 알지 못했던 사안들과 국내에선 접해보지 못할 관점들을 접하는 게 즐겁고, 각 이슈를 선별하기 위한 고민 과정이 궁금하다.

 

르몽드코리아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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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또 내일 또 내일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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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가 출간도 전에 자신 있게 서평단 모집을 한 이유를 알겠다. 영화화된다는 것도,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 치유가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도 알겠다. 가볍고 술술 익히는 문체이나 매 구간마다 멈칫하게 만드는 구간이 있었고 삼십 년에 가까운 세월을 풀어나가면서도 인물의 내면을 점층적으로 파고들게끔 만드는 신기한 작품.


불운의 사고로 엄마를 잃고 다리에 평생의 고통을 짊어지게 된 샘. 아픈 언니로 인해 방임되다시피 자라온 세이디. 외롭고 몸도 마음도 아픈 두 아이는 게임을 통해 친구가 된다. 게임을 통해 육백여 시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아이들은 게임이 그 어떤 것보다 내밀한 행위임을 깨닫는다. 함께 게임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내고 상대로 인해 다치더라도 감내하겠다는 신뢰와 사랑을 기반으로 한 행위임을 깨닫는다.


비록 한 순간의 오해와 무신경이 두 사람을 오랜 세월 갈라놓긴 했지만 그럼에도 두 사람은 영원한 친구. 다시 만난 아이들은 이제 게임을 함께 플레이하는 것을 넘어 함께 게임을,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고자 한다. 그들이 겪어온 삶과 아픔이 녹아든 세계. 샘과 세이디는 어떻게 하면 게임 속 인물의 여정을 더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고민하곤 했고, 어쩌면 그것은 자신들이 창조한 세계 속 인물들이 그들 자신임과 동시에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나 아닌 다른 이의 삶이 순탄했으면 하는 바람은 세상을 전혀 다른 시각으로 보게끔 만드는 매직 아이와 같은 기술이 동반되어야 했다.


인생이라는 게임은 불공정한 게임과 같다. 그 어떤 이도 동전의 양면과 같은, 삶의 불확실성을 예측할 수 없으나, 더불어 그 어떤 이도 NPC가 아니다. 불공정한 게임 판에서 숱한 인종차별적 모욕과 눈물을 견디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샘의 애나 리. 평생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경계를 오가며 외롭게 살다 간 마크스의 애나 리. 왜 그들에겐 부당한 삶을 '견뎌냄' 이 당연했을까, 아니 왜 그들에게만 당연하다 주입됐을까. 그럼에도 그들이 그 불공정함을 견딜 수 있었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밤낮으로 열심히 일했던 동현과 봉자의 삶에서 비롯된 애나 리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혹 애나 리(들)의 희생 위에서야 비로소 샘과 마크스가 삶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던 건 아닐까.


게임을 디자인한다는 것은 결국 그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을 그려보는 것. 어쩌면 한 사람이 직면할 세계 자체를 탐구하는 일이었다. 게이머가 직면할 숱한 찬탄과 반박의 대립을 설계하는 과정 속에서 게임을 디자인하는 샘과 세이디도 성장하게 된다.


서두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로 시작하는데,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의 삶을 살아가며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선 타인에게 손 뻗고 손 내밀줄 알아야 한다는 말을 한다. 그러려면 어쩌면 모든 구성원이 죽지 않고, 모두를 충분히 먹이고, 그렇다고 너무 빨리 가지 않고, 장애인도 이민자도 포용하는 사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작품은 주류의 시선에선 비가시화되어 '눈에 힘을 뺐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매직아이와 같은 삶을 두고 환한 미소를 보일 수 있는 사회를 구현하고자 애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하다.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요, 우리는 모두 무대 위에서 우쭐대고 안달하는 불쌍한 연극배우에 불과하나, 그래도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그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우리 앞에 놓인 무한한 날들을 개척해 나가며, 그 과정 속에서 발생하는 버거운 짐은 어느 누가 혼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가지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되새기며.


문학동네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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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 내 몸이 한 권의 책을 통과할 때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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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처럼 읽기>. 페미니즘의 도전을 비롯 여러 여성주의 도서 및 칼럼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정희진이라는 이름. 그런 정희진 선생님은 어떤 책을 어떤 시각으로 읽는지 궁금했다. 강의를 듣듯 각 잡고 공부하며 읽을 요량으로 이 책을 선택했고 예상대로 전자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은 형광펜칠 범벅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얼마나 깊게 사유해버릇 해야 이 정도 깊이의 독후감을 다량으로 써낼 수 있는 걸까? 속칭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적 시각으로 경계 밖에서 제도의 중심을 향해 겨누는 글들은 독서는 저항과 불복종의 시작이라는 말과 함께 네가 읽는 것이 너를 말한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사유의 도구가 될 법한 수많은 명언들은 한 번에 소화시키기는 힘들 듯하다. 물론 이후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읽을 생각이지만. 개인적으로 사회과학 서적들을 읽는 빈도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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