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한 미식가 - 나를 돌보고 남을 살리는 초식마녀 식탁 에세이
초식마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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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입맛이란 사적 영역임과 동시에 문화 현상이라고 한다. 음식을 통해 "소속감, 안정감, 즐거움" 등을 향유한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육식에 대한 비판적 관점은 간단하게 묵살되거나 별종 취급 되기 마련이다. 어떤 신념은 다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조롱의 대상이 된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비건은 아니어도 한국 사회가 채식주의자들에게 던지는 시선이 차가운 조롱에 가깝다는 걸 알고 있으리라. 그러나 한 순간의 소속감, 안정감, 즐거움을 위해 "한 해도 살지 못하는" 어린 생명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 합당한 지는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인 것 같다.

이 책 <비건한 미식가> 는 비건주의 실천을 위한 레시피책인 줄 알았는데, (물론 레시피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비건주의를 고수하며 살아가는 저자의 삶의 면면에 관한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같은 시즌에 나온 <돼지 복지> 책을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돼지는 '냄새 없는 돼지' 가 되기 위해 태어난 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때에 마취 없이 거세하고 생살이 뜯겨 나간다고 한다. 자본은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많은 고기를 제공하고자 일 년도 채 살지 못하는 생명들을 사육하기 위해 일 년 내내 공장을 돌린다. 태어난 지 5일도 채 되지 않은 송아지는 어미의 젖을 빼앗긴 채 고기가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살육은 식탁 위에서 말끔히 사라진다. 누군가 소를 가리켜 '인류의 영원한 식민지' 라 지칭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비단 소뿐만 아니라 인류의 육식 식단을 위해 희생되는 모든 생명들이 종차별주의의 희생양임을 깨닫는다.

한겨레출판 도서들은 내가 알지 못했거나 무의식적으로 외면하고 있던 세계를 인지할 수 있도록 가시화해 준다. 이번달은 축산업을 비롯한 동물복지와 관련된 도서들이 주를 이루었고, 무지함을 깨 보자는 생각에서 네 권을 다 신청했고 조금 빠듯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어쨌든 후회는 없다. 사실 주말에 근무를 하는 달이면 이주에 한 번 꼴로 닭을 시켰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근 열흘 간 참 고생 많았다는 스스로에 대한 다독임이랄까, 어떤 의식과도 같은 주문 행위지만 실상 먹고 난 뒤 잠깐의 포만감이 다일뿐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찰나의 유혹을 이기지 못한 순간들을 후회하고 있다. 이번달 독서를 통해 육식을 조금씩 줄여보자는 다짐을 해본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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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론 - 어떻게 마주 앉아 대화할 것인가
최재천 지음 / 김영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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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님의 신작인 교양 에세이. 토론을 넘어 숙론을 꿈꾸는 저자의 경험과 통찰이 담긴 이야기다. 공동체에게 주어진 문제를 합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공동체 차원의 숙론의 중요성을 반복하여 강조한다. 사실 저자의 유튜브, 강연 및 다른 저서들에서 이야기 됐던 바들이 겹쳐 있기에 그렇게, 막 새로운 건 없었는데 숙론이라는 어휘 자체가 흥미로워 유행을 타서라도 숙론 행위가 행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가볍게 읽기 좋은 인문 교양서를 원하는 분들께 추천하고, 문장이 깔끔하여 오며 가며 운전 중에 듣기도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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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국가의 배신 - 김학의 사건이 예고한 파국, 검찰정권은 공정과 상식을 어떻게 무너뜨리는가
이춘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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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에서 출간된 <검찰국가의 배신> 은 김학의 사건을 출발선으로 현 국가에서 작동하고 있는 검찰 시스템과 문제, 현 검찰 출신 대통령이 국가의 수장이 된 것의 이면 등을 저자의 저널리스트 정신으로 요목조목 짚어낸 글이다.

한때 김학의 사건이 언론 일면을 장식하던 때가 있었다. 성접대 의혹으로 혐의가 입증되어 유죄가 판결되는가 싶더니 검찰 측의 비호와 함께 어느 순간 무죄 판결이 나 있길래 어리둥절한 적이 있었다. 정치에 일가견이 없어서 잘 몰랐던 것일까 내내 의아했으나 최근 SNS에서의 소식들과 이 책을 읽으며 배경이 있었구나라고 끄덕였다.

총선이 있은 후 주위 많은 이들이 아쉬움을 토로했다. 민주정권이 약진하는가 싶더니 주춤하며 꺾이는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는 반응이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렇다 한들 검경을 비롯한 사법권력 및 정부에 관한 감시를 놓으면 안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감시와 비판적 시도에 밑바탕 및 근거가 되어줄 책이다. 더불어 저자의 전작인 <검찰국가의 탄생> 과 이어 읽으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하니포터, 한겨레출판으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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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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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은 이번달 초 내내 출퇴근하며 '읽은' 책이다. 사실 나는 출퇴근을 자가로 운전하며 오가는 날엔 오디오북을 듣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날엔 종이책/전자책을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전자의 방식으로 접한 책이고 눈으로 읽기 보단 귀로 들었으니 읽었다고 하는 게 맞을까 싶긴 하지만, 삼십여 분 남짓의 시간 동안 고요한 차 안에서 오디오북의 나긋한 음성이 깔리면 귀로, 입으로 그 목소리를 따라가며 어떤 생각에 잠기곤 했다. 이 책을 읽고 김혜순 시인과 허수경 시인의 시집을 잔뜩 담았다.


이 책은 재밌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그간 드라마 보면서 남겼던 감상을 다시 정돈된 글로 정리를 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특정 시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는 게 의미가 꽤 큰 것 같아서. 더불어 더 많은 작품들을 접한 뒤에 저자의 (아마 다른) 산문을 다시 접해보는 게 좋으리란 생각도. 여담인데 요르고스 란티모스 굉장히 싫어하는 것 같아서 너무 웃겼다. 정갈한 언어로 사정없이 패는데 읽으면서 납득이 가서 더 웃겼어.



발췌


[...]  ‘예술은 현실의 재현’이라는 유서 깊은 논의에서 ‘재현’이란 현상의 복사가 아니라 본질의 장악이다. 남길 것과 지울 것을 선택하는 지성이 필요한 일이다. 또 독자에게 고통을 전이시켜야 한다. 세상이 고통스럽다고, 고통스럽게 말해야 한다. 그것 없이는 인지의 충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의 장악’의 부산물이자 ‘인지의 충격’의 유발자로서의 고통, 그것은 옳다. 대상의 속성이 ‘선택인가 조건인가’의 문제도 중요하다. [...] 그 존재가 스스로 선택한 바 없는 자신의 ‘조건’은 웃음거리가 될 수 없다.


[...]  ‘성명’은 출생과 동시에 ‘나’를 얽어매는 그 많은 이데올로기적 요구를, ‘병명’은 그 요구를 거절한 주체들을 분류하고 통제하는 폭력적 기준을 상징할 것이다. [...] 질병에 ‘나’를 꽂겠다는 것은 사회가 부여한 성명/병명을 반납하고 주체적인 성명/병명을 쟁취하겠다는 것이다.


[...]  흔히 인문학은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라고들 하는데, 윌리스에 따르면 그것은 곧 '어떻게' 생각하는가와 '무엇을' 생각하는가에 대해 '선택'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방법이란 곧 선택하는 방법이라는 것. 어떤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이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른 생각을 의식적으로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상 생각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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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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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함과 동시에 단편집들이라 하여 조금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얼얼하다. 개별 단편이라 생각했던 작품들은 한 편의 거대한 연작처럼 이어져 어떤 경계들에 관해 곱씹게 만들고, 오랜만에 페미니즘적 상상력에 푹 잠기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노년의 삶을 상상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지금 여기와의 관계를 되짚고, 그 경계를 문지른다. 기억은 향수나 후회를 불러오고, 때론 기억하는 주체를 고독 속에 잠기게도 만든다. 주체는 그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가상의 연인을 만들기도 한다. 과거와 현실, 현실과 픽션. 존재를 위치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시공간적으로 그 어떤 곳이라도 좋을 테다.


한 존재의 존재 좌표가 설정되면 존재를 둘러싼 관계가 뒤따른다. 작품 속 주체들은 대개 가부장 사회 속 사회적 노년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이다. '사회적' 노년이라고 굳이 붙인 이유는 "나이 든 여성" 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려 드는 남성 캐릭터들에게 반기를 드는 그녀들의 저항에 동조하기 위함이다. 등장인물들은 남성 반동인물antagonist 들의 타자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항하며 사회적 규범에 반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 회복을 도모하려 한다. 그 과정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것일 수도, 죄인을 향한 복수를 위한 것일 수도, 어쩌면 도덕적 가치판단을 선뜻 내리기 힘든 다른 어떤 사고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루수스 나투라(Lusus Natura)>, 즉 괴물. 작품 속에는 어떤 질병에 걸려 사회 내에서 괴물로 취급되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정말 괴물인가? 그렇다면 누가 그녀를 괴물로 규정했는가? 괴물과 질병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 정의는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가? 작품의 말미가 그리 통쾌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끝내 전시물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주인공을 보며 기분이 몹시도 뒤숭숭했다.


여러 작품 중에 제목이 된 작품은 <스톤 매트리스(Stone Mattress)> 인데 왜 이 작품이 표제가 되었을까 의아했으나 차례대로 읽다 보니 장편으로 치면 서사적 정점인 클라이맥스가 찍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작품이라 그런 거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주인공 버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옥죄며 자기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든 강간범을 돌로 찍어 죽인다. 작품은 주인공의 복수와 함께 지켜보는 이에게 임파워링을 부여하지만, 한편으론 강간 피해자임에도 사회 전체를 뒷배로 둔 가해자에게 사적 복수를 행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음을 서늘하게 제시한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스톤 매트리스는 지층에 의해 형성된 화석 조각.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버나들' 에게 가부장들이 가한 폭압의 결정체가 되려 그들 머리에 꽂히니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금가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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