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톤 매트리스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양미래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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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거릿 애트우드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함과 동시에 단편집들이라 하여 조금 수월하게 읽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얼얼하다. 개별 단편이라 생각했던 작품들은 한 편의 거대한 연작처럼 이어져 어떤 경계들에 관해 곱씹게 만들고, 오랜만에 페미니즘적 상상력에 푹 잠기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노년의 삶을 상상하는 계기가 된 작품이었다.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될까.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면서도 끊임없이 과거를 반추하며 지금 여기와의 관계를 되짚고, 그 경계를 문지른다. 기억은 향수나 후회를 불러오고, 때론 기억하는 주체를 고독 속에 잠기게도 만든다. 주체는 그 고독 속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가상의 연인을 만들기도 한다. 과거와 현실, 현실과 픽션. 존재를 위치시킬 수 있는 곳이라면 시공간적으로 그 어떤 곳이라도 좋을 테다.


한 존재의 존재 좌표가 설정되면 존재를 둘러싼 관계가 뒤따른다. 작품 속 주체들은 대개 가부장 사회 속 사회적 노년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이다. '사회적' 노년이라고 굳이 붙인 이유는 "나이 든 여성" 이라고 꼬리표를 붙이려 드는 남성 캐릭터들에게 반기를 드는 그녀들의 저항에 동조하기 위함이다. 등장인물들은 남성 반동인물antagonist 들의 타자화 속에서도 끊임없이 저항하며 사회적 규범에 반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자기 회복을 도모하려 한다. 그 과정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생존을 위한 것일 수도, 죄인을 향한 복수를 위한 것일 수도, 어쩌면 도덕적 가치판단을 선뜻 내리기 힘든 다른 어떤 사고의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루수스 나투라(Lusus Natura)>, 즉 괴물. 작품 속에는 어떤 질병에 걸려 사회 내에서 괴물로 취급되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녀는 정말 괴물인가? 그렇다면 누가 그녀를 괴물로 규정했는가? 괴물과 질병의 정의는 무엇인가? 그 정의는 어떤 기준에 따른 것인가? 작품의 말미가 그리 통쾌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끝내 전시물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른다며 두려워하는 주인공을 보며 기분이 몹시도 뒤숭숭했다.


여러 작품 중에 제목이 된 작품은 <스톤 매트리스(Stone Mattress)> 인데 왜 이 작품이 표제가 되었을까 의아했으나 차례대로 읽다 보니 장편으로 치면 서사적 정점인 클라이맥스가 찍히는 거나 마찬가지인 작품이라 그런 거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주인공 버나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옥죄며 자기 존재마저 의심하게 만든 강간범을 돌로 찍어 죽인다. 작품은 주인공의 복수와 함께 지켜보는 이에게 임파워링을 부여하지만, 한편으론 강간 피해자임에도 사회 전체를 뒷배로 둔 가해자에게 사적 복수를 행하기까지 지난한 과정이 있었음을 서늘하게 제시한다. 수천 년에 걸쳐 형성된 스톤 매트리스는 지층에 의해 형성된 화석 조각. 수백, 수천 년에 걸쳐 수많은 '버나들' 에게 가부장들이 가한 폭압의 결정체가 되려 그들 머리에 꽂히니 어찌 통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황금가지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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