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도살장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50
커트 보니것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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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 한 지는 꽤 되었는데 그래픽 노블도 함께 정리하고 싶어서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렇다고 작품을 읽으면서 느낀 모든 감정과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느냐 한다면 그건 아니고, 읽으면서 붙였던 포스트잇을 정리하여 기록하고자 한다.

 

기독교적 색채가 강하게 묻어 있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교인을 위한 책이냐 하면 그건 아니고, 서구 역사를 지배하던 신과 이성의 이름으로 자행되어 온 폭력을 온몸으로 목격한 한 개인의 실존주의적 기록인 셈이다. 주인공 빌리 필그림(Billy Pilgrim, William Pilgrim), 본디 예로부터 William 은 윌리엄, 빌헬름 등 서구 역사에서 강인한 의지를 가진 전사와 같은 정복자 왕들에게 많이 붙이던 이름이었다. 작품은 이름과 대비되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인물을 통해 이성을 근간으로 한 인류 문명을 초토화시킨 '세계 대전' 이라는 야만을 목격한 개인이 <강인한 의지> 를 가지고 이성 혹은 절대자라는 진리를 향한 <순례자(Pilgrim)> 의 길을 떠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던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프로파간다와 더불어 미래의 안위를 약속하며 현실의 희생을 요구하는 위정자들은 대의와 이상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국가의 자식들을 희생시켰고, 그것은 "유년의 끄트머리, 어린 숫총각들" 과 같은 소년 십자군들을 앞세운, 피와 눈물로 얼룩진 야만의 역사였다. 전쟁 후에도 제도권 교육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 어떤 구별되는 차이가 없으며, 이 세상에 '악당' 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을 주입하나 작품 속 인물은 현실과 그 말의 괴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전쟁은 끝났으나, 승전국과 패전국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겼고, "설사 전쟁이 빙하처럼 계속 오지는 않는다 해도, 평범하고 오래된 죽음은 계속 존재할 것" 이라는 트라우마를 남긴다. 생명을 주고 생명을 유지시켜 준 어머니와 같은 절대자에 대한 불신이 싹트고, <이제 우리는 어디서 왔고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가> 라는 실존적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전쟁 후 빌리 필그림은 <시간에서 풀려난다>. 작품에 따르면, 인간은 본디 호박에 갇힌 벌레처럼 순간의 사건을 위해 구조화된 시간 속에 갇힌 존재로, 그는 과거, 현재, 미래를 바꿀 수 없다. 시간에서 풀려난 빌리 필그림은 파편화, 그러나 고정된 시간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현재에서 미래로, 미래에서 과거로,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오간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 속 트라팔마도어인적 시간관과 반자의적 시간여행은 개인 빌리 필그림이 겪은 전쟁이라는 거대 담론적 폭력의 여파이자, 그 자체로 진행되고 있는 폭력과도 다름없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온전한 우리만의 시간 - 과거, 현재, 미래 - 을 가질 수 있는가. 우리는 포드와 디즈니로 상징되는 자본이 재현하는 방식으로 과거를 기억하고, 자본이 재현하는 방식으로 미래를 예측하며 과거의 고통을 망각한다. 20달러짜리 잎, 국채라는 꽃, 다이아라는 열매로 이루어진 돈나무는 그 매력적인 속성으로 인간을 꾀어내나, 그렇게 꾀어낸 인간을 자신의 뿌리 주변에서 서로 죽이게 만들고는 그들의 피를 거름 삼아 자란다. 재갈에 입이 찢겨 피가 흐르는, 발굽이 깨져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는 것이 고통인 타인의 아픔은 내 밥벌이가 아니라는 이유로 <끄집어내어서는 안 될> 어떤 것, <돌아보지 않아야 할> 무언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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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너무 짧고 뒤죽박죽이고 거슬리네요, 샘.

대학살에 관해서는 지적으로 할 수 있는 말이 없기 때문이지요.

원래 모두가 죽었어야 하는 거고, 어떤 말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거고,

다시는 어떤 것도 바라지 않아야 하는 거지요.

원래 대학살 뒤에는 모든 것이 아주 고요해야 하는 거고,

실제로도 늘 그렇습니다. 새만 빼면.

그런데 새는 뭐라고 할까요?

대학살에 관해서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지지배배뱃? 같은 것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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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반전운동의 상징과도 같았던 작품은 작품 밖 이들에게 말을 건다. 들어보라 ㅡ 우리가 모른 척 묵시해 온 아픔은 정말로 끄집어내어서는 안 될, 돌아보지 않아야 할 그 무엇인 게 맞는가.

 

작품은 어쩌면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산다는 이유로 그 어떤 비판의식도 없이 과거의 아픔에 눈감는 이들을 목격한 "기어이 돌아본" 한 소금 기둥의 회고, 시간에서 풀려난 그 모든 것들을 애도하는 한 인간의 눈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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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문해력은 요약이 전부입니다
변옥경.장정윤.이선일 지음 / 가나출판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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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부를 할 때든 책을 읽을 때든 요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잘하고도 싶다. 독서와 공부에는 끝이 없다고 하니 평생의 숙제랄까. 사실 이건 갓 대학에 입학했을 때 아주 큰코다친 경험이 있어서 그런 거기도 한데, 1학년 1학기 서양사 강의를 잊을 수가 없다. 교과서는 없는데 '배운 부분에서 시험을 내겠다' 고 하시던 교수님. 강의 계획서에는 알아서 찾아 읽으라는 듯 나열된 수많은 참고문헌들. 시험지는 앞뒤 깨끗한 여백의 B4 용지 더미. 칠판에 "십자군 전쟁의 발생 배경과 영향, 전쟁의 의의에 대해 논하시오." 라고 적으시곤 "종이 여기 둘 테니 원하는 만큼 가져가세요." 이라고 하시던 말씀. 

 

그때 나는 현실 부정과 더불어 인생 내 인생 최고의 회의를 경험했던 것 같다. 왜 대학에서의 시험은 객관식은커녕 단답형 주관식도 없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내가 고등학교 내내 배웠던 건 뭘 위한 거였지? 결과는 예상대로 처참했고 시험이 끝나고 첫 수업, 쉬는 시간에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제가 1학년인데 제 답안지의 어떤 부분이 문제가 있었는지 여쭈어 봐도 될까요?" 다행히 화를 내시기는커녕 친절하게 보완해야 할 점을 짚어주셨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여전히 내 머릿속엔 물음표가 가득했지만. 참고문헌에 적힌 것들은 기본적으로 다 읽어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했고, 그렇게 1학년 1학기를 백지 B4 용지의 트라우마와 함께 마무리했다. 

 

이후 만난 교수님들은 자꾸만 시험을 '페이퍼로 대체' 하고 기말고사는 한 학기 동안 배운 작가들 중 한 사람을 골라서 세 작품 이상에 관한 글을 쓰기를 원하셨다. 분석이 어려우면 관련 논문 스무 편 이상을 요약해 오라 하셨다. 요약하면 '읽어는 보겠다' 하셨으니,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후자를 택했다. 초록에 이미 요약이 되어 있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표절하면 안 된다는데 어떻게 써야 하지? 그 누구도 나에게 가르쳐준 바 없는 것을 요구받은 것에 속이 상했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A4지에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받아쓰며 정리 아닌 정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끊임없는 요약과 패러프레이징의 연속. 과제 하나, 시험 하나당 대여섯 번의 요약 과정을 거치면 내 이름 석자를 적어낼 수 있는 페이퍼를 만들 수 있었다. 

 

깨달았던 것은, 비단 시험을 치르기 위해서만이 아니더라도 무언가에 관해 나만의 견해를 표하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이해와 더불어 < 패러프레이징, 요약, 암기 > 의 과정이 필수라는 것이었다. 4년의 대학 생활은 보고 배운 것에 대해 그것들을 숙달하는 연속이었다. 수업 시간은 그것을 끄집어내서 표현하고 타인의 의견과 비교하고 누군가에게 평가를 받는 과정의 연속이었으니까.

 

수많은 책을 탐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의 책을 여러 번 읽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속독을 위해선 천천히 정독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는 아이러니. 나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 아니기에 수많은 참고문헌들 중 내게 읽기 쉬웠던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뇌로 읽는 게 아닌 눈알만 굴리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불안감. 그 불안감 때문에 손을 계속 움직였고 입을 계속 열었다. "교수님 이 구절에 대해 저는 이렇게 이해했는데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해도 되는 건가요?," "이렇게 써도 논리가 괜찮나요?" 끝없이 질문을 했고 그 과정 속에서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게 생각보다 재밌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어차피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없고, 모르는 거에 겁먹을 거 없다는 상반된 두 말을 염두에 두며. 

 

책을 읽는 내내 이걸 그때의 내가 읽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혼자 지나온 시간들이 씁쓸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지문 요약을 계속 시키고 있기에 나름의 확신도 얻었던 것 같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게 맞네, 라는. 여담인데 에디톨로지에서 배운 카드 요약을 적용하면 더 시너지가 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개인적으로는 실질적으로 요약을 놀이처럼 익힐 수 있는 여러 교수법을 설명해 주신 것이 좋았다. 쉬운 언어로 쓰인 실용적 요약 실천서를 알게 된 것이 기쁘다. 

 

가나문화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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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라이프
가이 대븐포트 지음, 박상미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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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는 정물을 둘러싼 사유에 관한 작가 가이 대븐포트의 에세이를 엮은 작품이다. 을유문화사에서 감사하게도 읽어볼 기회를 주셔서 읽게 되었다.


정물의 역사는 인류사와 함께 시작된다. "문명과 공생" 해온 정물은 밀의 경작과 와인의 숙성을 통해 자연이 하사하는 풍요로움을 예찬하는 방법이었고, "먹을 수 있는 적절한 음식, 이를 먹는 적절한 방법이 모든 정물화 속에 내재해" 있었다. 정물은 수확한 곡식을 음식으로 준비하고 조리하며 다른 이들과 나누어 먹기 위한 이 모든 식사 예절을 기록하는 방법이었으며, 야생에서 문명으로 발을 디딘 인간은 정물과 함께 하는 숙고의 시간 속에서 삶의 다층적 해석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인류사와 함께 발전해 온 정물은 종교전쟁 이후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번영을 맞게 된다. 중세 말 농업의 황폐화로 인한 기근, 극심한 가난, 흑사병, 종교전쟁으로 일컫어지는 30년 전쟁은 자애롭고 평화로운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로 상징되는 중세의 전성기를 끝낸다. 종교 전쟁 이전, 주로 실내 장식으로 쓰이던 정물화는 전후 사실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세속적 삶의 무용함과 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한다는 염세주의적 실재를 재현하는 상징물로 기능하게 된다. 더불어 가톨릭의 우상숭배를 격파하고자 하는 칼뱅파 귀족들의 후원에 따라 번성하였으나, 칼뱅주의적 감화는 화가들로 하여금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허무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표현하게 만든다. 즉 죽음과 지옥에 대한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교회의 프로파간다로서의 정물은 스페인을 몰아내고 전성기를 맞이했던 네덜란드에서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이다. 빛나는 여름 과일 광주리, 대지의 풍요로움, 정물을 놓을 공간 등은 귀족 개인으로서의 부를 상징하는 과시이지 않았을까.


본디 소박한 예술인 정물화는 화가가 아이디어나 색채, 의견들을 실험해 보기 유용한, 사색하기 좋은 형태의 장르였다고 한다. 18세기에 이르면 이러한 '헛되고 헛된' 상징물의 연속에서 벗어나 화가 개인의 취향이나 감상을 위해 정물화가 그려지게 된다. 이제 화가들은 개인으로서의 자기 삶에서 특별한 의미, 더 나아가 삶과 사물의 본질을 포착해 재현해내고자 한다. 살아생전 반 고흐는 194점의 정물화를 그렸다는데, 이는 삶이라는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무수한 변주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분투가 아니었을까. "전쟁이 끝나고 죽음의 캠프에 관한 끔찍한 일들이 폭로되었을 때, 피카소는 홀로코스트에 대해 어떤 반응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상하게도 그는 그 응답의 장르로 정물을 택했다." 그는 정물과 함께 하는 숙고의 시간을 통해 인류사 과거의 유산을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는 곧 모더니즘의 정신이기도 했다.


현대의 정물은 인용, 패러디, 문화적 목록을 포함하는 콜라주 등의 다양한 형태로 보여진다고 한다. 예술은 현실의 복제일 뿐인가, 현실 저 너머의 실재를 재현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그 모든 것들의 상호복합적 작용의 결과물인가. 우리는 Still Life (스틸 라이프) 로 일컫어지는 정물을 사색과 응시의 대상에 불과한 것으로 보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어쩌면 정물이 "진실을 보는 방법이 한 가지만이 아니라는 것" 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다양한 변주를 통해 계속해서 <낯선 말> 을 건네는 그 무언가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을유문화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에 대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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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탄생 - 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 우리가 사는 세계
조현준 지음 / 소소의책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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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감히 알려고 하라' (사페레 아우데, Sapere Aude) 를 표어로 건 근대는 종교보다는 과학을, 내세보다는 현세를 신봉하는 계몽주의 철학을 근간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주장한다. 내세의 구원이 아닌 현세의 풍요를 원하는 이들은 분업과 교환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기계와 도래한 산업혁명은 농민을 대도시의 노동자로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대도시와 함께 태어난 근대적 개인, 그리고 그런 개인을 둘러싼 근대적 시공간의 재편성에 대한 포괄적인 개론서와 같은 책.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과 <피로사회> 를 비롯한 한병철의 신자유주의 비판서들을 읽기 전에 예열 과정으로 읽기 좋을 것 같다. 본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학생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기에 쉬운 언어로 다양한 예시를 들며 쓰였다는 것도 장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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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 우리가 보는 것들
피터 멘델선드 지음, 김진원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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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읽기 행위에 대한 메타적 작품으로 독서 활동과 관련된 저자의 생물학적, 사회·문화적 고찰이 담겨 있다. 번역본은 전자책이 없어서 그냥 킨들로 읽었다. 그림이 많아서 중고등학생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고, <독서> 행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꼭 한 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기에 추천.

 

독서 행위를 구분해 보자면, 독서 후, 독서 중, 독서 전 행위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읽은 것을 완전히 이해해 표현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독후 행위란 읽고 난 '잔상' 에 대한 행위나 다름없다. 잔상과 잔상의 <간극> 을 채우며 책에 대한 이해를 높여 나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지점에서 다시금 책을 읽고 요약하고 에세이를 쓰고 다른 이들과 의견을 교류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깨달았다. 잔상의 파편성으로 인해 불가피하게도 우리는 책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기에, 퍼즐을 맞추듯 다른 사람이 남긴 잔상의 파편이 필요하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반드시 예측하며 읽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예측이라는 행위는 현실의 경험과 무관하게 선험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읽기 행위는 <객관적> 일 수 있는가. 인간은 눈으로 읽은 것을 곧바로 "본다" 고 생각하나, 사실 보기 행위는 뇌라는 여과 체계를 거쳐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무언가를 떠올리며 그것을 둘러싼 맥락과 구조를 벗겨낸 채 진공 상태의 독립적인 무언가로 인식하는 것은 허상에 가깝다. 뇌는 생물학적 실체이면서도 사회적 구성물로, 개인이 살고 있는 문화적 구조를 재현해 내는 방식으로 읽은 텍스트를 여과하여 처리할 수밖에 없다. 결국 독서란 한 개인이 살아온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키는 행위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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