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슬립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1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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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대, 레이먼드 챈들러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그의 작품은 처음 읽었다. 타임지 선정 100대 소설 중 하나, 하드보일드 탐정소설 장르의 대가 등 그와 그의 작품을 수식하는 표현들에 혹해 별생각 없이 전자책 구매를 했었다. 그런데.

 

마초 필립 말로의 눈에 투영된 작품 속 여성들의 모습은 언제나 대상화되어 있으며 어딘지 모르게 관계적 층위에서 그의 아래에 존재한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자신을 위기에 빠뜨릴 만큼 매혹적인 팜므 파탈femme fatale 인 비비안, 정신적으로 미숙하여 냉철하고 이성적인 자신의 정신적 안내가 필요한 카멘, 누군가의 부인, 이름도 없이 블론드라는 머리색으로만 지칭되는 여성 등. 난초를 '창녀' 냄새로 표현하는 등 군데군데 역한 포인트가 더러 있었는데, 공통점은 작품 속 남성 캐릭터들은 이성을 가지고 행동하는 반면, 여성 캐릭터들은 동기와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다 한들 그 양상이 마치 그리스 신화의 세이렌처럼 '중심' 인물을 위험에 빠뜨릴 행동 혹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위한 이기적인 동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여하튼, 읽는 내내 불편했다. (내가 놓친 이 작품의 '위대한' 특징들이 있을지라도) 계속해서 30년대 작품임을 되새기면서 읽어야 할 만큼. 눈에 그려질 듯 생생한 묘사가 특징인 소설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묘사에서 시대적 한계성을 띠는 미소지니misogyny 가 두드러지며, 그 묘사를 통해 인물의 전형화가 이루어진다. '탐정 이미지' 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 도 이 작가의 업적이라고 하니, 뭐, 그럴 만도.

 

사실 여기까지만 생각하고 말면 시간을 버린 셈이라 빡칠 것 같아서 <이해할 수 있는 불편함이 늘어간다는 것> 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더불어 1930년대와 2023년의 간극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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