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를 보여주마
니콜라이 프로베니우스 지음, 성귀수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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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속 에드거 앨런 포는 한평생 이해받지 못한 외로운 이였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어 마음 둘 곳 하나 없던 포는 순수한 아름다움이라는 차원에서 문학에 빠져들게 된다. 그는 꿈, 사랑, 죽음, 악 등 자신이 본 세계를 그대로 문학적으로 구현해 내고자 애쓰지만 보수적인 19세기 미국 사회는 그를 오해하고 무시한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인 그리스월드로 포의 작품에 매번 혹평을 제기해 포를 낙담하게 한다. 설상가상으로 포의 작품을 딴 모방 범죄까지 발생해 포의 위치는 점점 위태로워지기 시작한다.

 

그 범죄는 포의 집안에서 도망친 노예 레이놀즈가 저지른 것으로 레이놀즈는 포의 예술적 경지와 어두운 면모를 예찬하며 숭배한다. 그러나 읽을수록 아리송한 것은 새뮤얼 레이놀즈는 과연 에드거 앨런 포와 별개의 인물이 맞는가라는 것이다. 그는 에드거와 주종관계를 이루면서도 친구관계를 맺기도 하고, 동시에 당대 보수적 사회에서 그 누구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깊은 내면의 어떤 것을 이해해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도 하므로, 에드거의 또 다른 자아는 아닐까라는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레이놀즈의 존재는 작품을 에드거 앨런 포의 일대기를 묘사하는 듯하면서도 장르소설의 경계를 넘나들게 만든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조금 슬픈 작품이었다. 처음엔 좀 지루하긴 했으나 장이 넘어갈수록 이해받지 못하고 소통이 튕겨지는 상황, 인정욕구를 분출하는 상황 속에서 포가 고군분투하는 상황이 그려져 슬펐다. 포는 허영심이라 했으나 그 말조차 자조적으로 들려 슬펐다. 공포란 무엇인가. 어쩌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기를 도전하는 이에 대해 경멸을 내보이는 구시대적 관습, 소외된 이에 대한 환대 없는 무관심, 한 존재를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게 만드는 사회적 풍토일지도 모르겠다.

 

에드거 앨런 포는 공포를 유발하는 존재인 게 맞는가
혹, 그를 미치게 하는 사회가 공포인 것은 아닌가

 

발췌


[...]  문학과 현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살인과 그 살인의 묘사, 어느 것이 우선인가? 공포인가, 문장인가? 탈출구가 없다.

 

[...]  머지않아 저들은 당신의 세계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공포를 발견하면서부터 세상의 질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될 거예요.

 

[...]  진짜 에드거 앨런 포는 계속 살아가기에는 너무 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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