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지 않는 기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59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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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의식과 의지만으로 '존재' 하는 아질울포는 비인간적일 만큼 순백의 색으로 빛나는 갑옷 속 기사이다. 존재하나 실존하지 않는 그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기록들로 증명하고 확인할 수 있는" 작위와 칭호에 집착하는 자이다. 아질울포의 하인 구르둘루는 실존하나 존재에 관한 자각이 없는 자이다. 그의 이름은 구르둘루이면서 구르둘루가 아니기도 한데, 이는 "어떤 이름이든 그에게 달라붙어 있지 않고 흘러가" 버리기에 어떻게 부르든 그에게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존재하나 실존하지 않는 기사와 실존하나 존재하지 않는 하인 사이에, 생명 넘치게 살아 움직이는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랭보, 브라다만테, 소프로니아, 트라스만드이다. 특히 아버지의 명예를 울부짖으며 기사단에 뛰어든 랭보는 완벽한 기사 자질을 가진 아질울포를 동경하면서도 브라다만테의 사랑을 받는 아질울포를 질투한다. 브라다만테는 아질울포를, 랭보는 브라다만테를 사랑한다.

 

내 이름은 바로 이 여행의 끝에 있소.

 

존재하나 실존하지 않는 아질울포에게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이름> 과 <작위> 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트라스만드의 주장으로 한 순간에 존재의 위기를 겪게 된 아질울포는 자신의 이름과 작위를 지키기 위해 소프로니아를 찾아 나선다.

 

작품의 제목이 <존재하지 않는 기사> 라 아질울포가 주인공인 것 같으나 사실상 랭보와 브라다만테가 주인공이 아닌가 싶다. 관념으로만 이루어진 아질울포와 육체로만 이루어진 구르둘루 사이, 실존과 비실존 사이, 삶과 죽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인생의 희로애락을 경험하며, 사랑을 위해 기꺼이 현재의 자신을 내던지는 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망자여,

난 당신의 평화보다는 나의 불안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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