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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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에 관한 책이라고 일컫어지는 <하얀 성>. 상반된 문화에서 자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놀랄 만큼 외양이 같다는 흥미로운 지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질문은 "나는 왜 나인가" 인데, 작품을 읽으며 스스로 답을 내려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러다 질문의 방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나인가" 가 아닌 "나라는 존재는 어떻게 혹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나를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건 무엇이 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꾸면 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질문을 바꾸니 작품 속 인물들이 보여주는 · 말하는 것으로부터 내 나름의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

나는 이 질문에 '기억' 이라고 답하고 싶다.

 

작품 속 호자라는 인물은 끊임없이 '나' 의 기억을 갈구한다. 처음에는 다른 세상에서 내가 배우고 접해 온 학문과 생활양식에 관해 궁금해하는 걸 보고 무언가를 끊임없이 탐구하고 자신이 아는 바를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지위에 있는 자가 가진 습성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장이 넘어갈수록 보이는 그의 집착과 갈구는 결국 나라는 인물의 <기억>, 그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신이 갈망하는 세계에서 온 '또 다른 나' 의 <정체성> 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기억은 실존, 즉 현실 경험을 토대로 구성된다. 자신의 기억을 호자에게 '가르치며' 내심 호자와 호자의 세계에 대해 차별성 및 우월성을 느끼던 나는 호자가 사는 세계에 동화되게 된다. 끈질기게, 집착적으로 나의 기억을 '뽑아낸' 호자는 그 기억을 토대로 내가 되고, 호자의 삶을 살던 나는 호자가 된다.

 

흥미로웠던 점은 호자가 기억을 캐묻는 중에도 타자가 감추고 싶었던 기억에 관해 혹독하리만치 집요하게 캐물었다는 것이다. 이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행하다" 라는 '안나 카레니나' 속 구절처럼 불행을 겪거나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던 저마다의 순간과 배경이 다르니 그 순간의 기저에 깔린 얽힌 실타래와 같은 모호한 감정의 근원을 알고 싶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덮으며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어떤 기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기억은 어떤 실존 경험에서 비롯된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이 이어졌다. 그러나 결국 함께 해준 사람들이 기억 속 행복의 모자이크를 만들어 주었다는 생각이 미쳤고, 삶의 기억, 즉 나라는 존재를 이루는 곁에 있는 사람들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며 더 많은 것을 읽고 접하자는 결론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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