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한 그릇 뚝딱 - 쌀이 만든 우리 역사와 문화 상상의집 지식마당 19
남상욱 지음, 민들레 그림 / 상상의집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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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한 그릇 뚝딱>

- 쌀이 만든 우리 역사와 문화 -

상상의집

 

 

 

 

 

"밥 먹었니?"

"나중에 밥 같이 먹자!"

"밥 잘 챙겨 먹어."

 

이렇듯 우리가 흔히 하는 인사말엔

늘 밥이 빠지질 않아요.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인사속에,

그 중 밥을 챙긴다는 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 쌀이 주는 의미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알아보는

<역사 한 그릇 뚝딱>

함께 읽어 보면 그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답니다.

 

 

 

 

고조선부터 일제때까지

그 속의 쌀밥에 담긴 역사를 알아보고,

, , , 누룽지 등 쌀로 빚은 문화를 알아 볼 수 있도록

내용이 알차게 꾸려져 있어요.

 

 

 

 

<역사 한 그릇 뚝딱>은 한 눈에 쉽게 볼 수 있는 연도표를 주제와 함께 제시하고,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는 형식의 이야기로 맛 보기,

근거를 뒷받침해주는 설명 형식의 냠냠, 역사 읽기,

놓칠 수 없는 깨알 팁인 한 숟가락 더!

이렇게 크게 4단계로 구성되어 있어요.

 

 

◆ 쌀밥에 담긴 역사 ◆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이 때부터 농사를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이야기인

단군 신화!

단군 신화를 실제에 가깝게 구성해보니

벼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청동기와 농경 문화를 바탕으로 건국된 고조선 후기에는

철기도 보급되어 농사 기술이 더욱 발달했죠.

고조선의 멸망이 좀 더 늦었다면

농기술이 더욱 발달했을텐데 아쉽다는 콩군.

 

 

 

 

한 숟가락 더!

- 가장 오래된 볍씨를 찾았다 -

한 숟가락 더! 부분에선

1991년에 경기도 고양에서 발견된,

5천 년 전의 재배 볍씨로 밝혀진

가와지 볍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신석기 시대부터 이미 벼농사가 시작되었다니

우리가 먹는 쌀밥은 참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네요.

 

 

 

 

고조선 이후 생긴 부족 국가 시대에는

철기가 발전함에 따라 농업 생산력이 높아졌어요.

농업 생산력을 더 늘리기 위해 지도자들은

저수지를 만들고, 땅을 개간하는 등의 노력을 했죠.

풍년을 바라며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홍수나 가뭄이 오면 왕을 쫓아내거나 제물로 바치기도 했답니다.

왕의 힘이 강해진 삼국 시대에는

왕에게 책임을 묻지는 않았지만요.

 

농업 중심의 삼국시대!

백제벽골제 등의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고요,

고구려세금을 낮추고 농사 지을 땅도 주며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였어요.

신라는 지중왕 때 소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우경법을 처음 시작했답니다.

 

 

 

이런 삼국이 농사를 더욱 잘 짓기 위해 필요한

한강 유역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기도 했어요.

가뭄에도 물 대기 쉽고,

강을 이용해 다른 지역으로 나가기도 편하며,

무엇보다 강 지역은 땅이 기름져 농작물을 키우는 데 유리하거든요.

 

그리고 삼국 시대 누구나 필요했던

화폐가 등장한 고려 시대까지 화폐의 역할을 했어요.

이로 인해 등장한 조세제도는 삼국 시대를 지나

고려 시대를 거쳐 조선 시대까지 계속되었답니다.

 

단지 허기를 달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화폐와 세금의 역할까지 하던 쌀은 참 소중한 것이었네요.

 

 

고려 초기 2년에 걸쳐 곡식을 돌려 짓는 윤작법

고려 후기의 거름을 주는 시비법, 모내기법(이앙법)으로

농업 생산력이 더 높아졌답니다.

 

 

 

 

콩군이 조선 시대의 가장 자랑스러운 왕으로 꼽는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직접 농사를 짓는 '친경' 제도를 좋아했어요.

세종대왕 때는 농업 생산력이 크게 늘어나

백성들의 살림이 넉넉해졌어요.

올바른 농사 방법을 백성들에게 알릴 수 있게 책도 만들고,

장영실을 비롯한 학자들에게 과학 기구들을 만들게 한 세종대왕 덕분이에요.

'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말처럼 조선 시대 경제이 바탕은 농업이었거든요.

 

그리고 조선 후기에 널리 쓰이기 시작한 모내기법

저수지 같은 수리 시설 이모작이 가능해졌어요.

또한 밭농사도 발전했답니다.

 

 

 

 

농업 중심이던 우리나라가 주권을 빼앗겼을 때,

일본의 '토지 조사 사업'으로 땅과 쌀도 빼앗겨

농민들은 늘 배고픔에 시달렸어요.

게다가 '산미 증식 계획'으로 농민의 대부분이 소작농이 되었고,

수확량의 80% 가까이 소작료로 떼어 가기 일쑤였죠.

이렇게 당할 수 만은 없었던 농민들은

권리를 찾기 위해 단체를 만들고 소작 쟁의를 벌였어요.

이 소작 쟁의는 점차 독립운동의 성격을 띄며 발전했답니다.

 

한편, 조선 총독부의 수탈과 일본인 지주의 괴롭힘에 지친 농민들은

한반도를 떠나 중국의 만주로 향했어요.

만주의 간도 지역은 날씨가 춥고 땅이 척박해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지만

우리 조상들은 그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어요.

포기하지 않고 땅을 일구고 물길을 뚫어 논을 만들어 쌀농사에 성공했어요.

간도에서 시작된 쌀농사는 만주 전역으로 뻗어 나갔죠.

이런 '농업 혁명'을 이뤄낸 것은 아무래도 쌀의 힘을 믿은 덕분이 아닐까요?

 

 

◆ 쌀로 빚은 문화 ◆

 

쌀은 주로 밥으로 먹었지만 떡으로도 많이 먹었어요.

청동기 시대 유적에서 떡을 찌는 시루가 발견되어

그 때부터 우리 민족은 쌀을 떡으로 만들어 먹었던거죠.

아이가 태어나 삼칠일, 백일, 돌 때에는 백설기가 빠질 수 없어요.

우리 콩군도 찡이군도 늘 백설기를 빠뜨리지 않고 해줬거든요.

그리고 간식 중 최고는 백설기라는 콩군이에요.

 

귀신과 나쁜 기운을 쫓는다는 의미의 수수경단

모든 것을 골고루 갖춘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는 색색의 오색 송편도 참 좋아해요.

그리고 설날 아침에는 한 살을 더 먹기 위해 떡국도 빠질 수 없죠.

 

 

 

 

콩가루를 살살 묻혀 고소한 인절미를 만들어 볼 수 있게 소개된 페이지를 보더니

콩군이 얼른 찹쌀가루와 콩가루를 사오라며 엄마를 등 떠밀었답니다.

떡집에 가면 늘 쉽게 살 수 있는 인절미이지만

다음에는 콩군과 솔솔솔 콩가루를 직접 입혀 인절미도 만들어 먹어 봐야 겠어요.

 

그리고 우리 밥상에서 빠질 수 없는 장!!

된장, 간장, 고추장을 담은 장독대는

요즘엔 흔히 보기 어려워졌네요.

 

콩군이 아플 때 자주 먹은 흰죽!!

그리고 요즘 간식으로 간편히 먹는 타락죽!!

요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밥처럼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즐겨 찾기도 하죠.

 

 

 

그리고 콩군은 바삭한 누룽지를 과자 먹듯 하는 걸 참 좋아해요.

그래서 누룽지 만드는 기계도 구입한 콩군 엄마~ ^^

전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매 끼마다 가마솥에 밥을 지어 누룽지도 만들고

뜨끈한 숭늉을 만들어 먹던 기억이 있지만

울 콩군에게는 그런 추억이 없어 아쉽네요.

 

그리고 쌀로 빚어내는 또 하나, !!

축하를 하거나 슬픔을 나누는 자리,

그리고 제사 때 항상 빠질 수 없는 술은

예전엔 집집마다 만들기도 했답니다.

가양주, 농주 또는 탁주

이런 우리의 전통 술은 오랫동안 사랑 받아왔지만

일제 강점기 때 쌀 수탈로 인해 술 빚는 문화가 점점 사라져 갔어요.

우리의 전통이 담긴 술은 사라지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요.

 

 

이렇게 우리 생활에서 빠질 수 없던 쌀은

시간이 흐를수록  소비량이 감소하고 있다고 해요.

대체 음식들이 많이 있어 굳이 쌀밥을 많이 찾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

쌀밥 대신 잡곡밥을 먹는 걸 선호하는 이유도 있답니다.

게다가 밥 보다는 반찬 위주로 먹는 식사로 인해 쌀 소비량이 줄어든 이유도 있고요.

 

하지만 우리에게는 단순한 끼니가 아닌

우리의 역사와 문화, 정신이 담긴 쌀밥 한 그릇을

오늘은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게 누리면 좋겠어요.

 

 

 

밥 대신 햄버거와 피자를 원하던 콩군도

<역사 한 그릇 뚝딱>을 읽고 급 반성모드로 들어갔네요.

오늘부터는 무조건 쌀밥을 더욱 감사히 먹겠다 다짐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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