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날들의 기록 - 철학자 김진영의 마음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방대한 페이지 수에 비해 텍스트가 적어 쉽게 생각했었다. 짧막한 문장들의 나열이라면 술술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고작 100 페이지 남짓을 읽고서 책을 닫고 한참을 쉬어야만 했다. 암 선고를 앞둔(그러니 이 글을 쓸 당시에는 본인의 병증을 몰랐을) 작가의 글에서는 우울함과 고독이 묻어 나왔다. 정독하고자 했으나, 정독을 하려고 하니 작가의 감정이 전유되는 느낌이었다.

리뷰를 써야 하는 기한이 없었다면, 아마 아주 오랫동안 책을 덮고 있었을 듯하다. 특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지금의 내게는 썩 도움이 되는 책이 아니다. (결코 나쁜 책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든 생각은 이것이다. '사유는 우울에서 오는가?' 철학적인 사유라는 것은 결국 끊임없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에 대해 기질적으로 예민한 사람만이 가진 일종의 특권은 아닐까. 감정의 휘발성이 높은 나 같은 사람은 대체로 그런 경험을 하기 어렵다. 똑같은 경험을 해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니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덕분에 우울에 빠지는 일이 적은 내게 한 사람의 우울을 들여다 본다는 것은 감정적으로 버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일종의 경험이겠지.


상실감은 히스테리를 불러낸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삶의 구조 안에서는 모든 상실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부드러운 상실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악착같이 붙들지 않기, 더 이상 못 잊어서 애태우지 않기, 더 이상 집요하게 회복하려고 하지 않기, 그냥 놓아 보내기, 떠난 것을 떠남의 장소에 머물게 하기, 그렇게 부드럽게 상실하기ㅡ그렇게 상실을 기억하고 성찰하면서 자기를 유지하기. (40p)


그러나 '부드러운 상실감'은 이상에서만 존재할 수 있을 뿐,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잊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안에서 어떠한 것이 차지하던 커다란 공간을 자기 자신으로 메우는 일이다. 커다란 기둥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을 때 무너지지 않을 건물이 있을까?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김진영 선생은 말한다. 그러니 결국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겠지. 이 문장을 읽고 상실에 대해 아주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역시 내게는 어려운 일 같다는 게 결론. ^^;;

상실 뒤에는 무거워지는 걸까, 가벼워지는 걸까? (459p) 저자는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느끼지만, 나는 무거워졌다고 느낀다. 상실 이후에도 상실 이전의 감정까지 휘발되는 건 아니니까, 상실 후의 괴로움이 더해질 뿐이 아닌가? 

저자는 많은 감정에 대해 말하지만, 나는 '상실'에 대한 언어들이 제일 마음에 남았다. 아직 사랑하는 무언가를 잃어 본 경험도 없으면서, 언젠가 잃을 생각을 하면 겁이 나는 것만 많아진다. 




상실감은 히스테리를 불러낸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삶의 구조 안에서는 모든 상실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것일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부드러운 상실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더 이상 악착같이 붙들지 않기, 더 이상 못 잊어서 애태우지 않기, 더 이상 집요하게 회복하려고 하지 않기, 그냥 놓아 보내기, 떠난 것을 떠남의 장소에 머물게 하기, 그렇게 부드럽게 상실하기ㅡ그렇게 상실을 기억하고 성찰하면서 자기를 유지하기. - P4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첫 몇 페이지다. 나는 이충걸 작가의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읽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 책이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떤 세계에서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결핍을 들추어야 한다던 그의 문장을 독서 노트에 통째로 옮겨 적었다. 다 적자면 저작권 위반일 정도로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닿았다. '인터뷰'라는 행위 자체가 기자나 피디 같은 이들의 전유물로 느껴지기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인생은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통해 관계를 쌓는 일.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인터뷰에 대한 태도는 결국 사람에 대한 태도와 상통한다.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좋은 것들만 아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나쁜 것까지 알고 교감할 수 있을 때에 진정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명사 11인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가장 즐겁게 읽은 인터뷰는 kt위즈 강백호의 인터뷰다. 내 주변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나는 골수 야빠인데, 강백호는 내가 탐내고 있는 타팀 선수 중 하나다. 목차에서 강백호의 이름을 봤을 때부터 설렜을 정도. (음~ 갸백호~) 하지만 치명적인 옥에 티가 있는데 '마운드의 토르' 강백호라는 타이틀이다. 물론 고교 시절 그가 오타니 뺨을 후려치는 투타겸업 선수였다고 하지만 강백호의 주 포지션은 1루수다....... 그는 마운드 위에 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마운드 위의 토르라는 건지? 그라운드 위의 토르나 타석 위의 토르가 더 맞는 표현 아닐까요? 아마 작가님이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작가의 문장에 상당히 수사가 많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샤우터들이 숭고한 자세로 온몸을 내던지며 강박적으로 내달릴 때마다 청음을 초과하는 과잉의 보컬에 뭔가 주춤거리게 된다.'나 '엑스칼리버처럼 배트를 든 강백호에겐 데카당스한 일면도 보였는데, 언어는 센세이셔널한 부분과 아주 달랐다.'와 같은 문장들. 잡지 편집장을 지낸 작가의 이력이 문장에서 드러난다. 한때 보그체라고 불리는 문장이 인터넷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그런 문장들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 책을 술술 읽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들이 좋았다. 과속방지턱에 걸리는 것처럼 낯선 문장들에 시선이 턱턱 걸리곤 했지만, 내가 평생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인물들을 향한 촘촘한 시선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종장을 덮고 나면 수십 년의 삶을 산 인터뷰이들의 일생이 일부분 나의 내면에 흡수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어떠한 일에 열정을 바친 사람들의 사유를 일부나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이다.

질문은 조금만.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좋은 인터뷰를 하는 데에는, 아니, 좋은 관계를 쌓는 데에는 많은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좋은 질문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순간은 질문과 대답으로 엮여 있으니까. 언어는 세계의 전부이자 표정을 손질하는 단 하나의 가치니까. - P6

사람들은, 우정은 변치 않으며 사랑과 다르게 순애보라고 여기지만 속성은 사랑과 똑같다. 잠깐 방심하면 금방 달아나니까. 우정이든 사랑이든 제일 중요한 가치는 지구력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신의 영혼 오로라 -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오로라의 모든 것
권오철 글.사진, 이태형 감수 / 씨네21북스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우연히 일러스트레이터 바랜 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본 적이 있다. 이 만화를 보기 전까지 오로라에 대해 큰 관심이 없던 나는, 이후로 누군가에게 '돈과 시간의 제약이 없다면 어디를 여행하고 싶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항상 '아이슬란드'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었다. 추운 것도 싫어하고 눈도 싫어하는 내가 아이슬란드를 여행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로라였다. 아득한 소망으로 오로라를 꿈꾸던 내게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기록한 이 책은 오로라 여행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책은 오로라에 대한 과학적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오로라 여행이 진행되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언제 오로라를 보러 가는 것이 좋은지, 어디가 오로라를 보기 좋은 곳인지, 심지어 오로라 여행지의 맛집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이 책만 있다면 오로라 관광에 대한 다른 정보는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될 정도. (물론 늘 그렇듯 항공권은 제외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컨대 120여 점이 넘는 오로라 화보이다. 물론 작가의 홈페이지에서도 오로라 사진을 볼 수 있지만, 반질반질한 종이에 선명하게 수록된 오로라 화보의 매력은 상당하다. 똑같은 사진이어도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 책으로 볼 때 더 와닿는 건 내가 아날로그 인간이기 때문일까? 


\



본문을 어떻게 찍어도 내 아이폰이 사진의 선명함을 담지 못해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사진을 가지고 왔다.

위와 같은 아름다운 오로라 사진을 잔뜩 볼 수 있다.


이 책은 미려한 문체로 쓰여진 오로라 에세이는 아니다. 아름다운 우주 에세이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로라 안내서'로서의 역할은 200% 충족하는 책이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빛들의 춤, 그 절정의 순간을 직접 보러 가고 싶다면 이 책으로 미리 맛보기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아, 참고로 나의 버킷리스트였던 아이슬란드보다는 캐나다의 옐로나이프가 오로라를 보기 더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이제 누군가 내게 어디를 여행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아이슬란드가 아니라 캐나다의 옐로나이프라고 대답해야 하나 보다.


하지만 가보지 않으면, 오로라를 볼 확률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0%이다. - P10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특권 중산층 - 한국 중간계층의 분열과 불안
구해근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사회과학 도서를 읽었다. 구해근 교수의 <특권 중산층>은 세계화를 거치며 새로 등장한 신흥 상류 중산층이 대한민국 사회의 양극화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고, 미쳤는지를 다양한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 책은 내가 평소 막연히 생각만 하던 개념을 정확한 통계와 최근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구체화시켜 주는 책이었다. 한국 사회의 계층 분열은 상위 1% 대 하위 99%로 나눌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상위 1%는 아니지만 부유한 생활을 영위하며 해외 유학, 명품 소비, 주기적인 해외 여행 등을 누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 반면, 일반적인 통계 기준으로 중산층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에 급급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같은 층위에 놓고 보는 것은 명백한 통계의 오류이다.

대한민국의 부는 점점 더 상위 계층에 집중되고 있다. 부유한 자들은 더 부유해지며, 가난한 자들은 더 가난해지거나, 가난하지 않았던 자들이 가난해진다. 언제나 중산층이 될 수 있었고,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1980년대와는 달리 2020년대는 언제든지 미끄러질 수 있다는 불안이 팽배한 사회가 되었다. 1990년대생들은 이러한 현실을 비관하여 미래를 꿈꾸는 대신 오마카세, 호캉스, 가까운 해외 여행 등으로 대표되는 상류 중산층의 소비를 모방하고, 결국 이러한 모방 소비는 부를 축적하는 것을 어렵게 해 계층을 공고히 하고 있다.

중산층의 불안은 사회의 불안으로 이어진다. 중산층에서 추락해 하위층으로 전락할 것 같다는 불안이 팽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이 불건강한 사회를 다시 건강한 사회로 만들기 위해 정치사회적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계급사회를 공고하게 만드는 정치적 행위에 반기를 들고, 불평등한 사회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문지 스펙트럼
다자이 오사무 지음, 유숙자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요조라는 인물을 경멸한다. 음침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하하고, 인간을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인간을 열망하는 이 인물과 절대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다 보면 이따금 요조와 내게서 교차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나는 그 순간들이 싫어 더더욱 요조를 나와 타자화하곤 했다. 모든 인간의 내면에는 음침한 면에 존재하지만, 요조의 경우는 인간의 모든 끈적거리고 질척거리는 타르 점액 같은 부분만을 응집시켜 놓은 캐릭터 같다. 과도한 자기 비하는 오히려 자아 비대와 동일한 게 아닐까?


유숙자 번역의 <인간 실격>의 첫 페이지를 읽자마자 드는 생각은 '이 번역가, 일본어투를 굉장히 살려서 번역하는 편이구나'라는 것이었다. 한국어로 된 글을 읽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어로 이런 표현을 썼겠구나 가늠이 가는 번역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번역은 가독성을 해쳐 속도감 있는 독서를 방해한다고 생각하는데, <인간 실격>은 빠르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니라 천천히 인물을 곱씹으며 사유해야만 의미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이러한 번역이 오히려 좋았다. 특히 후반부에 호리키와 요조가 말장난을 하는 부분의 원문을 살린 번역은 그 내용에 대해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삶은 트라가 아니라 코메라고 말하는 점이 인상 깊었다. 요조의 삶은 어디로 보나 코메는 아니었음에도.


요조가 싫다. 요조에 대해 지나치게 과몰입하는 사람들도 분명 나와 맞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다가도, 이것마저 요조와 닮은 내 비대한 자의식이라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싫어진다. 과연 내가 요조의 삶을 평가 내릴 수 있는 사람일까? 그가 인간성을 실격했다고? (물론 그러고 싶다. 아니, 사실 이미 그러고 있다.) 내게 자격이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생애가 부끄럽지 않은 삶이었다고 내 인생의 말미에 확신할 수 있을지는 정말 모르겠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