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은 조금만 - 자부심과 번민의 언어로 쓰인 11인의 이야기
이충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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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것은 첫 몇 페이지다. 나는 이충걸 작가의 인터뷰를 본격적으로 읽지도 않은 시점에서, 이 책이 나를 만족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떤 세계에서 누군가를 알고 싶다면 그 결핍을 들추어야 한다던 그의 문장을 독서 노트에 통째로 옮겨 적었다. 다 적자면 저작권 위반일 정도로 많은 문장들이 마음에 닿았다. '인터뷰'라는 행위 자체가 기자나 피디 같은 이들의 전유물로 느껴지기에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사실 인생은 수많은 사람들과 '인터뷰'를 통해 관계를 쌓는 일.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인터뷰에 대한 태도는 결국 사람에 대한 태도와 상통한다. 어떤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좋은 것들만 아는 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나쁜 것까지 알고 교감할 수 있을 때에 진정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명사 11인의 인터뷰를 다루고 있는데, 역시 가장 즐겁게 읽은 인터뷰는 kt위즈 강백호의 인터뷰다. 내 주변인이라면 다 알겠지만 나는 골수 야빠인데, 강백호는 내가 탐내고 있는 타팀 선수 중 하나다. 목차에서 강백호의 이름을 봤을 때부터 설렜을 정도. (음~ 갸백호~) 하지만 치명적인 옥에 티가 있는데 '마운드의 토르' 강백호라는 타이틀이다. 물론 고교 시절 그가 오타니 뺨을 후려치는 투타겸업 선수였다고 하지만 강백호의 주 포지션은 1루수다....... 그는 마운드 위에 오르지 않는데 어떻게 마운드 위의 토르라는 건지? 그라운드 위의 토르나 타석 위의 토르가 더 맞는 표현 아닐까요? 아마 작가님이 야구를 그렇게 좋아하시지는 않는 모양이다.

작가의 문장에 상당히 수사가 많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샤우터들이 숭고한 자세로 온몸을 내던지며 강박적으로 내달릴 때마다 청음을 초과하는 과잉의 보컬에 뭔가 주춤거리게 된다.'나 '엑스칼리버처럼 배트를 든 강백호에겐 데카당스한 일면도 보였는데, 언어는 센세이셔널한 부분과 아주 달랐다.'와 같은 문장들. 잡지 편집장을 지낸 작가의 이력이 문장에서 드러난다. 한때 보그체라고 불리는 문장이 인터넷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곤 했는데, 그런 문장들에 거부감을 느낀다면 이 책을 술술 읽어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인터뷰들이 좋았다. 과속방지턱에 걸리는 것처럼 낯선 문장들에 시선이 턱턱 걸리곤 했지만, 내가 평생 만날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인물들을 향한 촘촘한 시선이 좋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종장을 덮고 나면 수십 년의 삶을 산 인터뷰이들의 일생이 일부분 나의 내면에 흡수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어떠한 일에 열정을 바친 사람들의 사유를 일부나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은 일이다.

질문은 조금만. 책의 제목을 다시 한 번 살펴본다. 좋은 인터뷰를 하는 데에는, 아니, 좋은 관계를 쌓는 데에는 많은 질문은 필요하지 않다. 다만 좋은 질문이 필요할 뿐이다. 


인간의 모든 순간은 질문과 대답으로 엮여 있으니까. 언어는 세계의 전부이자 표정을 손질하는 단 하나의 가치니까. - P6

사람들은, 우정은 변치 않으며 사랑과 다르게 순애보라고 여기지만 속성은 사랑과 똑같다. 잠깐 방심하면 금방 달아나니까. 우정이든 사랑이든 제일 중요한 가치는 지구력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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