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 동서분당의 프레임에서 리더십을 생각한다
이정철 지음 / 너머북스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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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너머북스, 2016.
: 민주 진보 진영의 집권 실패에 대한 은유

위 책은 조선 중기 동인과 서인의 분당에 관한 장편의 논픽션이다. 1575년부터 1590년 동인이 몰락하는 경과 과정을 담고 있다.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소략하고, 어떤 부분은 반대로 지나치게 세심하게 서술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분당의 원인과 누군가의 그릇침인지에 대해서는 거칠게 본의를 알 수 없도록 하였고, 사건의 전개에 관해서는 인과과정을 독자가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이, 선조, 김우옹, 류성용 등등 1차 사료가 된 <경연일기>, <조선왕조실록>, 각각 문집 자료 등을 통해 각 사건을 이끄는 인물의 행동을 입체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이덕일처럼 서인이 무조건 잘못했다는 식의 서술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권력의 욕망에 휩쓸리는 것을 애초부터 잘잘못의 범주로 두고 있지 않다. 요즘 시대엔 이런 서술이 인기가 없다. msg를 팍팍 쳐서 ‘책임감 없는 막장 임금 선조’와 망나니칼 휘두르는 독한 정철에 의해 무조건 희생 당한 어떤 이들이 소재가 인기임을 개탄하는 한편, 진지한 저술을 만나 흥미로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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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을 엄밀하게 밝힘으로써 현 시대의 의미를 탐구하였다고 하는 출판사의 자화자찬이 과언은 아닌 듯, 조선 시대 중종-명종-선조로 이어지는 파란과 정치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내 승리를 쟁취한 사림 세력이 다시 동인과 서인이라는 붕당을 이뤄 권력을 분할하는 모습과 박정희-신군부 시대 정치 개혁을 주도, 김대중-노무현 시대의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지만 마침내 이명박-박근혜에게 정권을 탈취 당한 진보정치 세대와의 모습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
그들이 승리에 도취되어 붕당으로 나뉘어지고 정권을 빼앗겼는가? 그렇지만도 않다. 조선의 사림들은 혁명 뒤엔 정치 지도자 그룹으로써 민생을 책임지고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저자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김대중과 노무현 정권 하 386세대들은 집권 후 민생은 제쳐두고 개인의 도덕적 신념에 따라 국정을 운영하는 바람에 민생을 그르쳤다는 말인가? 역시 그렇지만도 않은 듯 하다. 정권이 수구 세력에게 돌아간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고, 현재 그것을 되찾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오늘날 야당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자면 정치 교체의 주역이자, 지식분자를 대변한다는 자신들 스스로가 변화시켜 온 정치 환경에 그들 역시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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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쁜 정치’로 신자유주의니 FTA니 들여오고 재벌 제한 풀어주고… 나름대로 고민으로 격동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한편, 지나치게 ‘사상적 지향점으로서의 진보’에 얽매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천견이지만 진보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이상 사상적 지향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그것을 ‘생활 목표로서의 진보’로 가지고 내려와야했다. 진보 정당의 실패는 민노당과 통진당의 좌충우돌과 정의당의 지지부진함으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 거대담론으로서의 진보는 이상으로 충분히 지켜내야 하겠지만 그것을 기층민의 삶 속에서 구현해내지 못한 것이 선한 진보 정치인들의 ‘나쁜 정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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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금껏 수구 세력과 더불어 국정을 운영해 온 여당 또한 자신들이 만들어나갈 국가의 100년 대계 보다는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익만을 생각하며 민생은 딴전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탄핵사태로 불거져 나온 것이다. 나쁜 지식인의 나쁜 정치이다. 
나쁜 정치는 민생을 위험하게 한다. 듣기에 “꽉 찬 창고에서 인심 난다”고 하듯이 지갑과 통장이 텅텅비어서 쥐약 먹고 죽을 시간도 없는 사람들은 촛불 집회인지 문화제인지 나가지도 못한다. 기층민의 생활고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권이 망할 뿐만 아니라 실패한 정치, 나쁜 정치라는 낙인까지 찍힌다. 역설적이게도 노태우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가장 합리적이었다는 평가를 얻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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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왕조 시대의 역사적 사건의 결론이 현재에 꼭 맞아들 수는 없을 것이다. 사고가 훨씬 유연해졌고, 다양한 사람들이 정치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고 감시 인력도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정치의 기본은 바뀌지 않는다. 동인과 서인의 사림 세포 분열에서 오늘날 한국의 리더십은 어디 있는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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