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는 문구를 보며 나 같이 미술에 문외한인 사람도 같은 배움을 얻을수 있을까 싶어 골라낸 책이었다. 사랑,추억,고독,슬픔,기쁨 등의 모든 감정들을 그림과 함께 고스란히 느끼게 될 그림여행의 시작에 앞서 내심 설레이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첫 장, 화면에 모래를 부착시켜 벽돌을 형상화한 작품 옆에는 현실의 고통에 견딜 수 없을만큼 괴로워하면서 그럼에도 꿋꿋이 서로를 사랑하며 믿고 의지하려는 한 부부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실의 고통에 괴로워하면서도 끝내 삶을 포기 못하는 부부에게서 마치 무너지리 듯 위태로운 모래성처럼 불안한 미래를 느낀다. 한젬마가 그림에 붙인 부제 '무너지지 않을까 정말 무너지지는 않을까?' 라는 문구에서 난 과연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에 대해 생각해 본다.

인터넷이 대중화된 사회에 무리지어 사는 우리, 또 그 속에 포함된 나는 위태롭게 우표가 붙어있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그려진 「한줄기 빛」이라는 그림을 보며 밤새 고민하다 썼다 지웠다 찢었다를 반복하던 그 옛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되었다. 키보드 하나로 손쉽게 지우고 쓰고 클릭한번이면 단숨에 상대에게 전해지는 메일에는 그 옛날의 떨림이 없다. 문득 편지지를 한 아름 사들고 막연히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픈 나를 느꼈다.

모든 연인들은 위태롭다. 그림속엔 많은 색면들로 겹쳐져 채색되어 있는 한 여자가 넓게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 연인들은 때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다. 서로의 진실을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막연히 자신만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알량한 자존심으로 그렇게 다른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 한다. 난 생각한다. 과연 나는 누군가에게 진실된 모습만을 보여준 적이 있는가? 나 또한 그림 속의 여자처럼 복잡한 색을 숨긴 채 나 자신도 모르는 나에게 지친 뒷모습으로 그렇게 드넓은 바다만을 동경한적은 없는가? 생각해 본다.

그런 세상의 모든 사랑을 포용하며 어루만지는 한젬마의 글에서 '나는 그림에서 사랑을 배웠다' 라는 1부의 주제에 어긋나지 않는 배움을 얻었다.2부의 주제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화가 이야기' 에서는 말 그대로 한젬마가 존경하는 화가들을 그들의 그림과 함께 그들의 생활과 가치관까지를 넣어 진솔히 이야기 해주고 있다.

라디오 생방송을 앞두고 술냄새 폴폴 풍기며 등장한 화가 이철수의 그림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한 장짜리 비싼 작품이 아닌 흔하다 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그러다보면 작품의 질이 떨어지지 않느냐는 질문까지 받는 참으로 소탈한 것이었다. 언젠가 내가 무심히 보고 지나치던 그 그림이 담겨 있는 페이지를 보며 '아 그게 이철수의 그림이었구나' 라는 생각만 보더라도 그 그림이 흔하긴 한거 같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생활 속 깊숙히 나의 작품이 스며들었으면 좋겠다는 선생에게 한젬마와 마찬가지로 난 깊은 교훈을 얻는다.

글 중간 중간 그림을 왜 그리는가? 무얼 그리고 싶은가?의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을 하는 한젬마를 보며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하나하나 내리는 듯 자신의 견해를 풀어쓴 이야기 보따리와 함께 그림을 설명해주는 그녀를 보며 나 또한 어느정도의 답이 내려지고 있었다. '꿈이 없는 사람이라면 혹은 어느결에 포기해버린 사람이라면 그의 인생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삶을 견디는 것이리라' 라는 한젬마의 말처럼 인생이란 어떤 경우에도 꿈 없이는 지탱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림은 그 꿈을 일궈나가는데 더 없이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림이란 틀에 박힌 것을 거부해야지만 훌륭한 그림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틀에 얽매여 정말 '그림'이라는 정의 하에 보여지는 그림도 훌륭한 그림은 아닌거 같다. 화가가 살아온대로 그리고 보고 느낀 그대로의 감정을 진솔히 작품에 담아낼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한 명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다시금 그림과 이야기 그 속에 담긴 인생 속으로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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