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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199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베르베르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환경이나 다른 생물들 대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만함과 우월감에 대한 경고와 풍자일 것이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이 '개미'이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에도 작가의 평소 관심사와 지론이 그대로 드러난다. 개미를 비롯한 곤충, 여러가지 생물에 대한 이야기가 사람만큼이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알려지지 않은 소수민족이나 오지의 부족들이 쌓아 온 그 나름의 현명한 문제해결책이나 문화 등을 소개하는 내용들도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게 독립된 하나의 책으로 충분한 가치와 완성도를 가지고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 우선 내용 배분이나 소재 선정에 아무 신경을 쓰지 않고 그저 지식의 편린을 잡다하게 엮어 놓은 내용이라는 점이다. 또한 당연히 제거했어야 할 함량 미달인 항목들이 꽤 많다. 예를 들면 [미로 - 캄캄한 미로에서 길을 잃었을 때에는, 벽에 손을 대고 더듬거리면서 그 벽을 따라서 아무데로든 가야 한다.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때는 울부짖기라도 해야 한다.] 이게 한 항목이다. 말할 가치도 없는 내용이 아닌가?
지적하고 싶은 점은 또 있다. 나는 이 책과 '개미'를 함께 사서 '개미'부터 읽었는데, '개미'를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펼쳐드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 앞서 말한 함량 미달의 항목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내용이 '개미'에서 등장하는 백과사전 내용 그대로이다. 두 책의 연관성을 모르고 괜히 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개미' 소설 특유의 교차 구조에서 등장하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내용은 '개미'의 줄거리와 절묘한 타이밍에 맞아떨어지면서 이야기에 힘을 불어넣는 훌륭한 양념이 된다. 하지만 '개미'를 보지 않고 이 책만 읽고 나면 좀 싱겁다고 생각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그 자체로 독립성, 완결성이 없기 때문이다.
인기 있는 책의 내용 일부를 그대로 발췌하여 다른 책인듯 슬그머니 출판하는 것은 '개미'의 인기에 편승하여 책을 하나 더 팔기 위한 출판사의 얄팍한 장사속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