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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 컴퓨터 - 21세기 과학혁명 ㅣ 살림지식총서 36
이순칠 지음 / 살림 / 2003년 10월
평점 :
아마도 양자컴퓨터에 대한 내용을 수식 단 한 개도 쓰지 않고 그림을 5개 넘게 쓰지 않으며 설명하는 세계 유일의 소개서일 것이다. 이 책은 양자컴퓨터뿐 아니라 심지어 양자암호통신 그리고 양자역학을 응용한 순간이동까지 비록 간단하게나마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은 100페이지도 되지 않는다. 가히 수박 겉핥기도 아니고 겉 스치기라 할 만하다. 사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면 양자정보공학을 물리학 전공자가 아닌 사람에게 제대로 설명하는 것은 어차피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고전물리학에만 (완전하게는 아니라도) 의존하는 현재의 컴퓨터기술이 한계에 봉착한다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라는 지적호기심을 가진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양자컴퓨터가 어떻게 해서 현대의 최첨단 암호기술을 간단히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양자암호기술은 (양자역학의 근본 토대가 틀렸다고 판명되지 않는 한) 어떻게 절대로 깨지지 않는 암호체계를 구성할 수 있는지, 또 양자정보기술은 얼마나 빨리 실현되고 어떤 한계를 가질 것인지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볼 수 있을 것이다.(저자가 실제로 양자컴퓨터 구현을 연구하는 KAIST 교수이기 때문에, 짧지만 신뢰할만한 답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질문들과 답은 무척이나 어렵고 거창해 보이지만, 적어도 이 책의 내용만 이해하는건 별로 어렵지 않다. 양자역학에 나오는 세 가지 원리 - 중첩(superposition), 얽힘(entanglement), 그리고 물리용어로 '붕괴'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관측에 의해 중첩된 가능성 중 하나로 완전히 결정되는 것 - 를 쉬운 설명으로 소개한 다음, 이 세가지만으로 양자정보기술이 어떻게 실현가능한지를 순수하게 논리만 가지고 설명한다. 그러니까 복잡한 수식이나 물리 지식 같은 것은 거의 필요하지 않다.
저자가 물리학교수니까 글재주가 부족하지 않을까 싶겠지만, 그 생각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상당히 재치있고 유머러스한 글솜씨에 종종 웃음을 터뜨리며 읽기도 했으니까. 다음과 같은 문단이 기억에 남는다. (문자 그대로 따온 것은 아님)
... 양자역학 같이 어려운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자부심 때문인지 물리학자들은 겉보기와 달리 매우 자부심이 강하다. 어떤 사람이 겸손하다면, 그는 물리학자가 아니라고 보면 된다. 심지어 독설을 즐기고 오만한 어떤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양자역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과 원숭이와의 차이보다도 더 크다. 양자역학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금붕어나 다름 없다고 보면 된다.' 여기까지 읽은 당신은 이제 기억력이 3초라는 금붕어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니까 다행이다. 참고로 내가 나의 아내를 금붕어 수준으로부터 구제하는데 13년이나 걸렸다. ...
나는 이 책 덕분에 한시간만에 금붕어 수준에서 벗어난 것에 감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