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인생에 있어서 첫독립을 나는 2001년해가 막 지나가기 전에 단행했다. 이삿짐이 하나둘씩 제자리를 찾아가고 저녁시간을 즐길 여유가 처음 생기던 날 나는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사하기 전에 주문해서 벌써 도착을 했건만 이사를 앞두고 있어선지 얼른 손에 잡히질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내 상황과 이 책을 읽은 시점이 절묘했단 생각이 들어 오히려 기쁘다. 난생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했기 때문에 설레는 마음과 약간의 불안감 그리고 적막감 속에서 첫장을 넘겼다.

거긴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화자(조르바가 '두목'이라 부르는..)가 얘기를 시작했고 뒤이어 곧 조르바가 나타났다. 생각보다 마음이 앞서고 마음보다 몸이 앞선 사람. 어찌 생각하면 대책없는 사람인 것 같지만서도 그것조차 틀과 기성교육에 길들여진 사람의 생각인 것이다.

'두목'은 책 속에서 진리를 구하는 정적이고 소극적이며 어찌 보면 머리만 무거운 샌님이다. 그 무수한 책들과 지식은 머리에 그득하지만 그것들이 영혼을 짓누르고 구속한다. 가슴은 불타다가도 이성의 잣대에 틀에 사그라들고 그것이 자신내부에 갈등을 만들고 이윽고 표출되지 못한 감정과 욕망을 악마라고까지 지칭한다.

하지만 조르바는 어떤가? 그야말로 너무나 속이 시원하다. 먹고싶으면 영혼도 몸도 열심히 맛있게 먹는 일에 열중한다. 속상하거나 울분이 터지면 울부짖으며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른다. 기쁘면 뱃가죽이 아프도록 눈물이 나도록 웃는다. 사랑하고 싶을 땐 아무 눈치보지 않고 너무나 열심히 사랑한다.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하느님이 곧 악마고 악마가 곧 하느님이라고 자신있게 말하는 가슴과 생각이 하나되어 맑은 영혼으로 말하고 사는 사람.. 그는 60이 넘은 늙은이이지만 어린 두목보다 젊고 생명력있게 산다.

이 책 전반에 걸쳐 조르바는 끊임없이 두목에게 질문을 던진다. '두목 사람은 무엇인가요?' '두목 신이 무엇인가요?' '두목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그토록 책을 많이 읽은 두목이 과연 조르바가 무수히 던진 질문에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수 있었던가?.. 그렇다 조르바는 두목에게 틈만나면 그 책을 던져버리고 마음이 시키는대로 하라고 말한다.

삶에서 직접 얻지 않고 책에서 진리를 구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다는 것을 조르바는 알기 때문이었을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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