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는 굉장히 단순합니다. 어떤 재앙이 지나간 뒤의 세상을 배경으로 하는 것 같아요. 황량한 잿더미가 남은 땅 위, 신이 모습을 감춘 야만의 시대를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도입부부터 어떤 이유도 상황 설명도 없이 아버지와 아들 두 인물이 이 무자비한 단막극의 주인공으로 무대 위에 던져집니다. 두 사람의 목표는 남쪽으로 가는 것. 희망이라 말하기에도 무색한 어떤 애매한 동기를 꼭 부여쥔 채 계속해 힘겹게 발을 내딪는 그들은 '불을 운반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찾을 걱정을 합니다. 언제나 살아남은 다른 인간들을 경계하구요. 아버지가 한 것 중에 가장 용기있는 일이 무엇이었냐는 아들의 질문에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었다는 대답을 건네는 아버지. 그에게 삶은 이미 고통으로 가득한 불지옥과 같습니다.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지는 세계. 죽음의 세계보다 더 고통스러운 이 세상을 스스로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그의 아들입니다. 아들을 바라보며 아버지는 생각하지요. "저 아이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면 신은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는 거야" 그러고는 묵묵하게 길 위를 계속 걸어갑니다.


사실 현대 인간사회에서 자행되는 수많은 비인간적이고 무자비한 일들도 문명이라는 외피를 벗겨놓고 보면 소설 속 길 위 살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이 현실의 어느 한 귀퉁이에서는 이미 매카시가 작품에서 그리는 어두운 잿빛 세계가 뻗어 있을 지도 몰라요. 인간다움을 잃어버린 인간 사회에서 그 껍데기를 지탱하던 문명이 무너지고 난 뒤는 어떻게 될까요? 매카시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꽤나 직설적입니다. "너희들 그렇게 생각없이 살다가는 이렇게 큰 코 다친다!" 라고 매카시는 일갈합니다. 어쩌면 문명이 몰락한 시대 이후에 태어난 아들과 달리 문명의 시대를 지냈던 아버지라는 인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그리고있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성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인간다움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스스로 정신의 옷깃을 여미어야 한다고 매카시는 말하는 것 같아요. 


시종일관 짧은 호흡으로 끊어치는 매카시 특유의 문체가 작품의 배경과 주제의식과 방향을 같이하면서 그 효과를 톡톡히 봅니다. 푸석한 잿더미로 가득한 공간적 배경을 묘사하는데 있어 헤밍웨이류 필치가 최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덕분에 작품이 그리는 무대의 분위기는 더없이 무겁고 건조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음울한 작품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저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 코맥 매카시가 참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찾아보니 벌써 80세가 다되어 가는 할아버지던데, 그 즈음의 인생에 접어들면 남의 인생사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다 미뤄두고 단촐하게 남은 여생을 즐길 법도 한데 이런 메시지를 던지다니요. 관심이 있어야 지적을 하는 겁니다. 정말 마음이 없다면 아무 소리 안하지요. 저는 매카시의 강렬한 일갈 저변에서 인간에 대한 연민의 감정을 찾습니다. 매카시와 같은 생각을 가진 작가들이 작품을 많이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