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머리속에 주입하는 마약 공급책이 돌아가셨다고, SNS에 부고가 떴다.
그는, 빈약한 내 서가의 한자락을 굳건히 차지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당분간 내게 즐거움을 주는 그 만한 구라꾼도 없을 것이므로.
그와의 첫 만남은 대학 3학년 기말고사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종교철학 수업시간 이었을 것이다. 종강 시간이었으므로 교수님이 편안하게 이런, 저런 농아리를 풀었던 듯 한데, 고금의 종교와 교회가 폭삭하는 연유와 과정을 이야기 했던 것 같다. 이야기 중간에 그의 책 이름이 튀었다. 꼭 한번 읽어보란다.
'장미의 이름'이라고? 연애 소설인가? 실없이 연애소설을 읽으라고?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음날 있을 시험을 위해 책을 사러 서점에 들렀다. 그런데, 그 책이 눈에 띄었다. 연애소설은 아닌 듯하여 집어 들었고, 차 안에서부터 읽기 시작하였다. 이게 나에게 망쪼가 되어버렸다.
도저히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당일치기를 해야 하는데도 중간에 덮을 수가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면서 다음날 해가 중천에 걸릴즈음에야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머리속에 남아있는 여운의 미로를 헤메다가, 까무룩 잠들어 버렸고, 오늘만 대충 개긴다는 '오대수'였던 나는, 나래비선 시험을 쭈루룩, 대충 수습도 못하고 망쳐버렸다.
이렇게 당하고도 수시로 탐닉하였다. 특히나 심사가 복잡할 때, 누항의 잡사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면 몰입하여 그가 풀어대는 구라를 흡입하였다. 읽노라면 머리속이 쫄깃해지고, 찰지게 호기심을 당기는 뽕이라서 세상을 완전히 잊게 하였다.
오늘도 소식을 접하고서 서가 앞으로 다가갔다. 그가 떨구고 간 구라들을 쳐다보니, 뽕쟁이처럼 뇌세포가 달뜨기 시작하였다. 환장하게 근질, 근질 했지만 참기로 하였다, 다음달까지만....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
"에코 선생, 부디 편안히 가시오. 다음달에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