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유론 (무삭제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0
존 스튜어트 밀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18년 6월
평점 :

먼저 자유론을 저술한 존 스튜어트 밀과 그의 사상에 대해 간단히 정리하고 넘어가겠다.
밀의 사상은 시기에 비해 여성에 대해 오픈되어 있었는데, 그가 오랜 시간 교제했던 해리엇 테일러라는 여성의 영향이었다. 그는 유니테리언주의(Unitarianism) 활동을 하며, 급진적 정치 사상을 토대로 여성 참정권 운동을 벌인 사람이라고 한다.
밀은 동인도회사와 인도 정부간 교섭 업무를 맡기도 하고, 공직에서 은퇴한 뒤에는 대학 학장으로 재임하거나 자유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활동했다. 1866년에는 영국 헌정사상 최초로 의회에서 여성 참정권을 주장했고, 비례대표제와 보통 선거권 도입 등 의회와 선거 제도의 개혁을 촉구했으며, 노동조합과 협동농장을 중심으로 한 사회개혁을 주장했다.
밀의 사상
1. 공리주의
쾌락의 질을 구분해서 지적이고 도덕적인 형태의 쾌락이 육체적인 쾌락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행복과 만족을 구별해서, 행복이 만족보다 더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하면서 도덕적 규범과 의무를 질적으로 더 높고 고귀한 성격을 지니는 행복 추구와 연결시켰다.
2. 경제적 민주주의
자본주의적 기업들을 노동자들의 협동조합으로 대체하는 것 같은 방식의 경제적 민주주의를 주장했다.
3. 정치적 민주주의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와 개화되고 유능한 통치자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옹호했다. 그는 대중은 정치적으로 무능하긴 하지만, 특히 지방자치 차원에서 정치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러한 무능력은 결국에는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4. 여성의 해방
혼인한 당사자들 간의 평등은 인류의 일상 생활을, 도덕을 계발해나가는 학교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고, 인류는 오직 남성과 여성이 평등하고 대등한 관계로 살아가는 사회에서만 진정한 도덕적인 정서를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현실에서 가족은 독재를 배우는 학교이고, 독재의 악덕을 길러내는 곳이다. 밀은 평등만이 미덕들과 능력을 계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동일한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부터는 자유론의 기본적 개념과 사상에 대해 정리하는 동시에 내 개인의 생각을 memo로 덧붙이는 방식으로 서술했다.
자유론의 기본적 개념과 사상
1.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근거로서의 “효용”
인간이 자유를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곧 최대의 효용을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 자신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모든 재능을 완전히 꽃피워서 인간으로서의 성장과 발전을 최대한으로 이루어낼 수 있다. 인류라는 것도 결국에는 개개인의 집합이기 때문에, 개인이 최대의 성장을 이루어내는 환경을 조성해줄 때에만 가장 발전할 수 있다.
memo. 개개인이 최대로 성장하여 집단도 성장한다는 건 정말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개인이 성장하는 집단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물론 성장을 수치적으로 보지 않는다면 소속원 모두가 만족하는 집단은 가능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회란 삐걱거리는 개인들마저도 무작위하게 존재하는 집합인데 개개인이 모두 만족하면서 집단을 유지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자유를 해치는 이에 대한 제한이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 세세한 지점을 고려해가야하기 때문에 원론적으로 느껴질 수 밖에 없기는 하다. 수많은 조직의 형태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2. 인간의 불완전성을 보완하는 것으로서의 자유
밀은 개개인에게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 이유를 인간의 불완전성에서 찾는다. 모든 개개인에게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와 자신의 의견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토론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자유들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절대로 틀릴 수 없다” (infallibility)를 전제하는 것이고, 그것은 독단이자 독선이며, 독재다.
3. 사회적 행위가 아닌 모든 개인의 행위에 주어져야 하는 자유
밀은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는 모든 행위는 “개인의 자유”의 영역이라고 규정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끼치는 영향을 판단할 때에 오직 “직접적인” 영향만을 따지고, “간접적인” 영향을 따져서는 안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어떤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는 않지만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인 경우에는, 전자의 자유가 후자보다 우선한다.
4. 인간 자신과 인류 발전을 이끌 원동력으로서의 개개인의 “개성”
밀은 모든 개인에게 자유가 허용될 때에만 개개인이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개성"이 온전히 발현되고, 이 무수한 개성들이 의견의 표현과 토론을 통해 함께 어우러질 때만이 개개인과 인류 사회는 발전하게 된다고 봤다. 사회나 국가는 일반적으로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목표로 설정해서, 시민들과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걸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는 독선의 요소가 자리잡고 있어 결국 개인과 사회와 나라의 발전은 가로막히게 된다. "개성"은 겉보기에는 사람들을 분열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개성이 극대화 될 때에만 개인과 사회는 역동적으로 발전해나갈 수 있다.
memo. 나는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식보다는 독선을 견제하는 장치를 만들면서 나아가는 게 사회를 이끄는 방식 중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memo. 현대에 이르러 과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개인의 의견 표명이란 존재할까? 타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한, 이라는 전제는 너무 나이브한 것 같다.
memo. 물론 사람의 개성을 증진시키는 건 좋은 일이지만 과연 그게 능력 발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일일까? 경쟁사회 속 한국이으로서 문장만으로 벌써 지친 기분이 든다. 인간은 개인적인 특성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결국 전체적인 생활양식에서는 사회가 말하는 것을 따른다. 그런 식으로 사회의 약속은 정해지고 사회는 안정적으로 굴러간다. 타인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과연 몰개성이나 평범한 것으로만 치부될 수 있을까? 우리는 평균을 잃은 사회에 살고 있다. 끝없이 평범해지기를 바라고 평균이기를 바란다. 양극단과 점극화된 요즘이 밀의 개성과 맞다면 우리 사회는 왜 발전한다는 양상을 보이지 않는 걸까? 그건 극단으로 치닫는 각자의 의견들이 “개성”이 아니기 때문일까?
5.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원리로서의 “해악”
개인의 행동이 사회에 영향을 미칠 때에 그 행동을 제한하는 원리는 “해악”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사회적 해악이 되는데, 이러한 해악을 방치하게 되면, 사회 전체의 효용이 훼손되고 발전은 저해된다. 따라서 사회나 정부는 적절한 개입을 통해 그러한 해악을 규제함으로써, 사람들과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memo. 밀의 의견 중에 중국에서 아편 수입을 금지한 것에 대해 사회가 개입해서 특정 물건을 구입하기 불가능하거나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문제가 된다면서 생산자나 판매자의 자유가 아니라 구매자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허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이야기하는데 아편 수입에 대해서는 이미 그 시기 영국에서도 그 문제성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되는 만큼 단순히 자유의 논리로 접근할 수 없다고 본다. 이건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밀이 말하는 “직접적인” 영향을 단/장기적 관점에서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성을 느낀다. 아편 수입을 막는 행위는 단기적으로는 구매자의 자유를 침해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구매자의 건강과 정신을 무자비하게 만들어 결국 사회 전체를 골병 들게 하는 원인이 되므로 단기적인 시선에서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충분히 그러한 논의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본다.
memo. 밀은 정부의 사전 예방 기능이 사후 처벌 기능보다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이며, 기본적으로 나는 정부가 사전 예방의 기능이 거의 전무하다고 본다. 정부의 사전 예방이라 함은 결국은 이미 이전에 있었던 것의 사후 처리에 가까운 개념이라고 보아야 한다. 일어난 적도 없는 일을 예방할 수 있는 정부의 정책은 사실상 거의 존재 하지 않는다. 정부에게는 사후 처리가 중점이 되어야 한다. 이미 침해된, 침해되어온 자유에 대해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6. 자유를 배워나가는 훈련으로서의 “자치”
자유를 향유하기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지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류 사회가 근대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그런 지적 역량을 갖추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한 개인의 경우에도 그런 지적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 이제 자유가 대중화된 근대 사회에서, 개개인으로 하여금 그 자유를 누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훈련이 필요한데, 그 훈련은 모든 사람들이 시민적이고 사회적인 활동에 참여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권한이 비대해진 정부는 독재의 경향을 띠게 되고, 시민이나 국민은 종속되고 자유는 제한된다. 따라서 근대 시민 사회에서 모든 시민들이 지역 사회나 국가적인 사업에서 정부의 관료들이 하는 것과 같은 자치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감으로써, 자신들의 일을 스스로 처리하는 역량을 키우는 것은 개인과 사회의 시민적 자유를 지켜나가고 발전시켜나가는데 필수적이다.
자녀들에게 음식을 주어 먹여 살리기만 하고, 교육과 훈련을 통해서 그들의 정신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은 그 불행한 자녀들은 물론이고 사회에 대해서도 도덕적인 범죄를 저지르는 것임을 아직까지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부모가 이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에는, 국가는 가급적이면 부모의 책임 하에서 그 의무가 이행될 수 있도록 감독하는 것이 마땅하다.
우리가 국가는 모든 아동들을 교육 받게 해야 하는 의무를 진다는 것을 일단 인정하고 난 후에는, 국가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하는 난제들이 남아 있다. 오늘날 이 문제는 종파들과 정파들 간의 싸움터로 변질되어서, 교육에 쏟아야 할 시간과 노력이 교육에 관한 논쟁으로 소모되고 있기 때문에, 이 난제들은 속히 해결을 보아야 한다.
정부가 모든 아동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강제하겠다고 결심을 했다고 해도, 굳이 정부가 직접 나서서 그런 교육을 제공하려고 골머리를 썩힐 필요는 없다. 자녀들을 의무적으로 교육시킬 것을 법으로 강제한 후에는, 그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교육을 시킬지는 부모에게 맡겨두고서, 가난한 계층의 학비를 일부 지원해주고, 학비를 전혀 낼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전액을 국비로 부담하는 조치를 취하기만 하면 된다.
memo. 여기에 대한 밀의 의견을 꽤 흥미롭다. 아마 부모가 없다면 그것은 국가가 의무를 다하면 될 것이다.
유럽 대륙의 많은 나라들에서는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자산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혼인을 금지하는 법들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법들은 국가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다. 그런 법들을 제정해서 시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로 해당 지역의 상황과 감정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그런 이유를 들어서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가족을 부양할 능력도 없으면서 무턱대고 혼인은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해치는 것으로서, 비록 법적인 처벌을 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고 할지라도, 사회적인 비난과 원성을 사기에 충분한 행위이기 때문에, 국가가 거기에 개입하여 법으로 그런 행위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하기 때문이다.
7.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건으로서의 “지적 역량”
밀은 미성년 상태의 미숙한 사회와 대중은 시민적 자유를 제대로 누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자치”와 사회 차원의 “자유로운 교육”을 통해 미숙한 사회와 대중이 성년 상태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정부와 통치자의 소임이라는 걸 일깨워주는 것이다. 인류 사회가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조건인 “지적 역량”은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발전해왔다고 보고, 근대 사회에 이르러 인류가 성년기로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런 후에 어떤 사람이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합법적인 권위를 가지고서, 또는 그런 권위 없이 권력을 장악한다고 해도, 그는 관료 조직에 지시하고 명령할 수 밖에 없고, 관료 조직은 전혀 변하지 않고 혁명 이전이나 이후나 똑같이 움직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이전과 똑같이 돌아가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게 된다. 관료 조직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memo. 안정적이지만 그렇지 않은 순간 이전의 폐단을 답습하는 지름길이란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