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도서관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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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런 홀링허스트의 장편 소설 "수영장 도서관"의 배경은 HIV가 창궐하기 직전인 1983년이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성적으로 왕성한 남성 동성애자들이다. 소설은 그들이 분명히 느꼈을 차별적인 시선보다 그런 시선을 압도하는 욕망을 다룬다. 욕망은 심지어 소설이 시작되는 계기가 된다. 무명의 남자와의 섹스를 기대하며 공원의 공공 화장실에 들어간 주인공 윌리엄이 때마침 거기 있던 노인이 심장 마비로 쓰러지자 그를 살린다. 그는 팔십 대의 동성애자 찰스다. 훗날 윌리엄과 스포츠 클럽에서 다시 만난다. 윌리엄이 자신이 당신을 살렸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는 윌리엄을 집으로 초대한다. 자식 없이 혼자 사는 그는 윌리엄에게 중대한 과제를 맡긴다. 바로 자신에 관한 책을 써달라는 것. 1983년이라는 현재와 찰스의 젊은 시절이 담긴 일기는 이중 구조로 엮인다. "수영장 도서관"이라는 신비로운 제목은 주인공 윌리엄의 추억이 담긴 장소다. 천진한 욕망이 처음으로 발현되고 그로 말미암아 관계를 맺기 시작한 학교의 수영장을 뜻한다. 학창시절 윌과 친구들이 버릇처럼 하던 말, "도서관에 다녀올게"는 수영장에 간다는 의미였다. 수영장 도서관에서 윌리엄과 친구들은 거리낄 것이 없었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스포츠 클럽에서 윌리엄은 헤엄을 치고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도 수영장 도서관을 잊지 못한다. 수영장 도서관은 어쩌면 그에게 처음으로 자유가 무엇인지 알려준 곳일 테다. 앨런 홀링허스트는 섹스 묘사를 훌륭하게 해낸다. 성정체성을 떠나 누구나 그의 소설을 읽으면 흥분할 것 같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한다면 그런 흥분은 어느덧 사그라든다. 작가가 아무리 연민 어린 시선으로 봐주길 바라지 않는다 해도, 또는 연민이 깃들 틈이 없을 정도로 섹스 묘사가 거침이 없다 해도 시대적 배경과 건장한 몸들을 둘러싼 그리움의 색채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는 그때 같은 시절이 오지 못하리라는.

스포츠 클럽에서 건장한 육체들을 바라보는 찰스는 좋은 시절을 추억하면서도 육체의 덧없음을 아는 현자 같은 인물이다. 그는 팔십 대 동성애자, 생존자로서 윌리엄에게 자신에 관한 이야기를 써주기를 바란다. 자신이 살아왔던 인생이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띠길 바란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이 소설 외적인 환경을 자꾸만 떠올린다. 찰스는 어쩌면 스포츠 클럽을 드나드는 수많은 젊은이들보다 오래 살지도 모른다. 좋은 시절이 과거에만 있지 않다는 걸 깨달을지도 모른다. 그는 남성 동성애자들의 미래라기보다는 살아남은 자로서 남성 동성애자들을 조망하는 천진하나 쓸쓸한 시선을 갖춘 인물이다. 그런 찰스에 관한 이야기를 써야만 하는 주인공 윌리엄에게는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없다. 윌리엄은 머지않아 친구들과 하룻밤 인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모습을 볼 것이다. 생존하면서 생존에 관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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