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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평점 :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스스로의 상황을 한심해 하는 대학생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 청춘은 스스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은 말로 일축한다 : "잉여죠" / "한심하죠?" 나에게는 이 말이 낯설지 않다.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솔직히 내 주변에 있는 청춘들은 대체로 '괜찮은' 대학을 나왔고 (혹은 다니고 있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상태가 꽤 좋아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대강 짐작하겠지만, 역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각종 이유로 자신의 상태를 한심해한다. 학점이 별로라서, 영어를 못해서, 취직을 못해서, 취업은 했지만 결혼을 위한 각종 '조건'을 못 갖춰서. 취직은 어째저째 했지만 다니기 너무너무 싫은 회사를 억지로 견디느라 괴롭고 고되다. 하고 싶은 일을 찾느라 썩 괜찮은 회사를 집어치우고 나니 가진 건 아무것도 없고 사람들은 미쳤냐고 묻는다.
그래서 우리는 풀죽어서 혹은 시니컬하게 말한다. 한심하지? 그뿐인가? 주말에 방에 박혀 밀린 '미드' 내지 '일드'나 보는 것도 게임 랩업에 열올리는 것도 모두 '잉여짓'이다. 요새 뭐하냐, 고 물으면 취업준비중이라는 말 대신, 공부한다는 말 뒤에, 잉여짓, 이라고 대답하는 소리는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우리는 이래저래 자기비하가 입에 붙은 세대이며, 자학개그의 달인들이며, 자신을 스스럼없이 있으나 마나하다는 '잉여', 나아가 '케잉여'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한심하고 쓸모없는 것들로 여기게 만드는가?
우리들 중 많은 수는 이를 스스로 생각해본 결과 혹은 스스로 반성한 결과라고 생각할 지 모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한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다른 사람들을 두려워하며 자신을 쉽사리 한심하게 여겼다. 우파와 좌파를 막론하고 청년들의 안일한 의식상태를 질타하는 높으신 분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곳부터 그러하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을 들으면서 자라고, 그 말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다 자란 어른아이들에게 남아 있다. 우리는 어른들이 사촌 언니나 남의 집 딸에 대해 "아유 걔는 나이 서른이 되도록 모아놓은 돈도 없이 여즉 결혼도 못하고 어떡하니"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는 누군가의 아들, 해마다 부모님 해외여행 보내드린다는 어느 집 딸, 꽉 찬 나이에도 부모님의 돈을 뜯어가기만 하는 망나니, 고시에 수차례 떨어지고 미쳐버린 사람 등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런 일들이 더 이상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우리는 쉽게 한심해진다. 왜냐하면 우리는 부모님께 미안해질 것이 걱정되고, '엄친아/엄친딸'과 비교되는 것이 괴롭고, 성공한 '어른들'처럼 되지 못할까 두렵고, 남들-친구들, 친척들, 선후배 등등-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스러우며, '이런 나'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없을까봐 겁나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가 스스로를 앞질러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정말 '스스로' 그런 것만은 아닐 것이다. 한심해하지 말고 잘 생각을 해 봐야 한다. 스스로 생각해서 반성해야 한다. 반성한다는 건 잘못한 일들에 대해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또한 반성은 자신을 몰아부치고 괴롭히는 일이 아니다. 반성은 그냥 돌이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잘 한 일과 못 한 일이라고 말하기 전에, 뭘 하면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생각해보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잘했다 못했다를 따져서 자신의 과거에 칭찬이나 비난의 딱지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지금부터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 이 책. 책은 말한다. 너희는 괜찮다. 우리는 괜찮다. 우리는 '어른들'이 상상도 못 해본 세상에서 그들이 생각도 못한 방식으로 '성장' 했다. 이것이 이 책이 가진 첫 번째이자 가장 큰 미덕이다. 우선, 이렇게 '괜찮다'고, 다른 방식으로 '성장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괜찮다'는 말은 어설픈 감성 에세이 따위가 감상적인 말들로 조악한 위로를 건네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왜냐하면 이 '괜찮음'은 이 책의 두 번째 미덕인 '구체성'에서 오기 때문이다. 이는 들어가는 글에서 밝히듯 'example' 에 의해 가능한 구체적인 이야기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야만,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껍데기만 남아 있기 십상인 추상적인 말들-성장, 민주주의, 사랑, 소비, 열정 등-이 '지금 바로 여기'에서 어떤 의미인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엄기호가 아니다. 이 책은 그가 쓴 것이지만 그가 혼자 쓴 것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가 강의했던 덕성여대와 연세대 원주캠퍼스 학생들의 글과 함께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책의 구체성은 단지 허울 좋은 의미로 오해될 수 있는 '학생들과 함께한 기록'에서 온 것이 아니다. 이 책은 '다시 제대로 질문하기'에 의해 구체성과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 우리는 괜찮을 뿐만 아니라, 바보가 아니다. 질문을 받으면 스스로 생각해 대답할 수 있고, 나아가 그 질문 자체에 대해서 다시 질문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생각하고 반성하는 일의 시작이다. 어른들의 상투적인 언어로 자신을 비난하는 일과는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그리고 엄기호와 학생들은 그 일을 '시작했다'. 제대로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사족. 나는 이 책을 얻었다. '공짜로' 책을 받았다고 좋아하던 나는 결국 이 책을 서점에서 직접 사게 되었다. 그것은 문제의 '상투적인 어른들의 언어'를 구사하는 친구들로부터(!) 고통받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생각보다 '적들은 가까운 곳에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쉽사리 한심한 잉여 정도로 생각하는 만큼, 친구들에게 함부로 '취직', '영어성적', '학벌', '학점', '열정', '결혼', '나이', '연봉' 따위의 말을 엮어 함부로 말하기도 쉽다는 걸 알았다. 사실 어른들이 그런 소리를 하는 것보다, 지금 자신의 상태를 친구와 비교해서 함부로 말하는 또래들이 더 서글프다(때로는 재수없다). 우리는 부디 친구들에게 '어른들의 상투적인 언어로' 충고하지 말자. 그리고 자꾸 비교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