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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ㅣ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평점 :
인문학 열풍이 주춤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도 같다. 확실한 것은, 난해한 전문용어를 동원해가며 인문학적 지식을 은밀히 공유했던 ‘그들만의 리그’에서 탈주하는 이들이 꽤 있다는 것. ‘스페셜리스트(전문가)’보다 ‘제너럴리스트(잡학박사?)’를 지향하며 쉽게 풀이한 말들로 소통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어떤 이가 그랬다.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가 그런 것이라고.
책에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고, 이제는 유투브 동영상을 통해서 간소화된 지식을 취하는 데 익숙해졌다. 인문학과 철학을 별개의 것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인문학이든 철학이든 모두 문턱을 낮추려 하고 있다. 얄팍한 디지털 인류로 남지 않으려는 몸부림일터. 백종현의 <인간이란 무엇인가> 역시 이런 맥락이라 할 수 있겠다.
백종현은 한국의 칸트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통해서 칸트의 사상에 대해서 안내해준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떻게 가르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책에서 백종현의 모습은 넉넉하고 포용적이다. 그는 칸트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기에 앞서, 칸트의 생애를 언급하면서 “칸트를 너무 정확히 알 필요까지는 없다”고 권한다.(41) 어째서인가. 칸트 역시도 레퍼런스(참고문헌)가 많았던 까닭이다. 어쩌면 이 지점이 내겐 가장 좋았다. ‘오독에 의한 창작’ 말이다.(41) 칸트를 정확히 이해하기보다는, 칸트의 글을 읽으면서 그저 내 생각을 다듬으면 된다고, 그뿐이면 충분하다고, 사상사에서 거대한 인물인 칸트를 대하는 태도가 느슨해도 괜찮다고.
칸트를 오랫동안 연구한 백종현은 철학을 어떻게 정의내릴까. 두 가지만 언급해보고 싶다. 첫째, 한계를 아는 것, 둘째,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78) 비유를 섞자면, “여타의 학문들이 헛길에 들지 않도록 앞장서 등불을 들고 가는 시녀”(79)가 철학이 감당해야 하는 역할이다. 공학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철학은 그것들이 인류의 복지에 봉사하고 있는지 묻고 또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칸트 얘기를 해보자.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3가지 질문을 붙들면 도움이 된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인간을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인간은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이 물음들에 대한 각각의 답으로 칸트는 <순수이성비판>과 <실천이성비판> 그리고 <판단력 비판>을 저술했다.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전제해야 할 것은, 칸트 당시 계몽주의의 영향이 컸다는 것이다. 이성에 빛이 비춰짐(enlighten)으로, 신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났다. 칸트가 말하는 ‘순수이성’이 그것이다. 신에 비해 인간의 이성이 진리를 포착하는 데에 불완전할 수 있지만, 그 한계를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칸트는 시작한다. 결과적으로는 자연과학적 지식만을 인간은 알 수 있고, 선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한 것만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칸트의 인식론이다. 여기서 ‘통각’이란 용어가 열쇠낱말이 될 것이다.
다음, 인간은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 그 답은 당연히 ‘선’이어야 한다. 그것도 ‘최고선’. 그렇다면 인간은 ‘선’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중세시대에는 신과 교회가 정답을 만들어놓았으나, 칸트는 그것을 거절했다. 목사아들인데 교회를 탈출했다. 그는 교회가 아니라 인간의 자율성에서 ‘선’의 근거를 찾는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인 ‘정언명령’이 여기서 나온다. “-해야한다”는 당위성으로 점철된 ‘의무론적 윤리’가 말이다.
마지막, 인간은 무엇을 해도 좋은가. <순수이성비판> 및 <실천이성비판>은 <판단력비판>과 괴리가 있는데, 이 지점에서다. 인간은 쾌감을 느끼는 존재다. 특별히 미적 감정을 느낀다. 아름다운 자연풍광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 칸트는 자연의 합목적성을 발견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그런 자연을 모방해야 하고, 지상의 천국을 세우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마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성경의 주기도문처럼 말이다.
칸트의 철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존엄을 향한다. 돈이 주인 노릇하는 세상 속에 많은 현대인들은 시들어가고 있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지 않고, 수단으로 취급하는 까닭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칸트의 질문이 시급히 필요하다. 좀비로 전락하지 않고, 진선미, 이성과 윤리와 미적 감각 지닌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 말이다.
비록 대중친화적인 언어로 소통하려 했지만, 저자의 말은 이해하기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정리한 내용조차 자신이 없기도 하다. ‘오독의 의한 창작’이라고 너그러이 이해받으리라 믿으며 독후감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