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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쿨 -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강국 ‘코리아’ 탄생기
유니 홍 지음, 정미현 옮김 / 원더박스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의도치않게 이 책을 읽던 중에 나는 압구정역 주변을 걸을 일이 있었다. 그리고 저자 유니 홍이 이 거리 모습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 지 정말 궁금해졌다.
분명 전통과는 거리가 먼 클래식 전차모형 트롤리 버스를 뻔뻔하게도 한국투어버스로 쓰고 있는 '강남시티투어버스', 가로등마다 달려있는 아이돌 가수들의 컴백을 알리는 세로 현수막과 그 안의 'K-Star로드'와 강남구의 로고. 건물 쪽으로 눈을 돌리면 성형외과가 밀집되어 있는 정도가 아니라 성형외과가 세운 전문 성형 병원들(어떤 건물은 문화시설을 제공한다면서 특정층을 휴게 공간으로 내놓는 여유까지 보인다.), 지하철 역사로 내려가보면 브랜드화 된 성형외과 '의사'들을 내세운 광고판들. 또한 성형 붓기가 빨리 빠진다고 '다국어로' 광고하는 연고제 등등. 저자는 이런 모습들을 보면서 또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한국은 유니 홍의 한국 칭찬(?)을 기다려 줄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칭찬을 느긋하게 만끽할 시간도 없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쿨하다고 할 지 말 지는 각자의 몫으로 남기고 싶다.
'코리안 쿨' 유니 홍의 이야기는 이 압구정에서부터 시작했다. 자신의 유년시절 살았던 추억에서부터다. 주변의 초가집을 떠올렸고, 뽑기와 방방이 등을 떠올렸다. 적어도 30대 이상의 독자라면 큭큭거리며 향수를 즐기리라. 그러나 교육, 정확히는 체벌에 대한 지적은 마음아프다. 특히, 당신들이 즐거우려고 학생들을 체벌했을 거라고 확신하는 유니 홍의 말은 보며 정말 그랬을까 싶을 정도다. 아니면 그 시절(저자는 나보다 8살 많다.)에, 정확히 '강남'이란 교육병 1번지였기 때문에 그러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순진해서 모르는 건지, 운이 좋아서 모르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주변에 그렇게 악랄한 교사는 없었다. 그러나 내가 그렇게 말해도 불구하고 당시의 체벌문화나 억압적 분위기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문화는 지금 내가 속해있는 성인사회에 잔존해있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겠다. (교육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공부에 목숨을 거는 나라' 장을 읽어보길 바란다.)
하지만 유니 홍의 이야기는 어두운 면에 집중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런 부정적인 면들을 딛고 어떻게 한국이 세계적인 문화수출국으로 자리잡고 있는지 사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풍자의 탄생' 장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한민국에 풍자와 유머가 등장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말하며 당시 분위기를 서술한다. 대한민국이 먹고살기에만 급급한 나라가 아니라 이제 적당히 비꼬면서 웃을 줄도 아는 나라가 됐음을 알리는 증거가 바로 '강남스타일'이라는 것이다. 이렇든 차근차근 분야별로, 또는 원인과 결과별로 한국의 성장 스토리를 풀어가는 데, 음식, 케이팝, (아이돌) 스타들, 드라마, 영화, 게임, 전자기기(삼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력들을 실제 사례와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어가니 흥미로우면서도 유익했다.
(p.129~130 ‘왜 대중문화인가’ 中)
최보근(문체부 문화콘텐츠 산업실 콘텐츠정책관)이 몸담은 부서는 최첨단 문화기술 연구 및 개발을 촉진하는 임무를 맡았다. 나는 문화기술이란 용어를 난생처음 들었는데, 최보근의 말에 따르면 한류는 문화기술에 달려 있기 때문에 저우가 여기에 엄청나게 투자한다고 한다.(중략)
다른 많은 국가에도 정부 예술 기금이 있지만 대중문화에 자금을 대거나 대중문화 육성을 위해 10억 달러(약 1조 1770억 원)의 투자 기금을 조성하는 정부가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중략)
아시아 금융 위기 이후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콘텐츠산업실의 전신인 문화사업국을 키우기 위해 연간 예산 5000만 달라(약 550억 원)을 책정했는데 지금은 문화콘텐츠산산업실의 연간 예산이 약 5억 달러(약 5500억 원)라고 한다.
이 부분을 보면서 개인적으로는 문화산업에 국가가 주도적으로 지원(개입이 아니다)한 내용을 보며 막연했던 국가지원이 어느 규모였었는지 알 수 있었다. 순수예술 외에 대중문화를 위해서만 별도로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하니 괜히 한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하고 생각하게 만든 대목이었다. 내수가 크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역시 국가 지원만이 창작자가 기반을 다지고 성장할 수 있는 길인가 싶기도 했서 약간 씁슬한 느낌도 없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이런 지원이 꾸준히 유지되고 또 (김헌준의 바람대로) 다양한 분야로 연결된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다.
한편, 일본이 왜 문화전쟁에서 패했는지 짚어보는 대목을 보면서 나는 더욱 흥미로웠고 또 생각이 복잡해지기도 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작은 내수 시장이 아쉽다고만 생각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지원에 크게 의존하지 말고 문화 시장이 자생력을 기르려면 내수가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해외 시장에 팔지 않고서는 못 살아남는 형태 때문에 오히려 해외 시장에 선도적으로 수출국이 될 수 있었다는 관점은 내 생각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p.250~256 ‘코리안 쿨’ 中)
일본은 이미 10~15년 전에 아시아의 문화적 취향을 만들어 내는 선도자 자리를 잃었다. 그렇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열도라는 일본의 지리적 특성처럼 일본의 대중문화 또한 다른 나라들과 너무 돌떨어져 있어서 전 세계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가 힘들다. (중략) 일본의 수많은 부디오 게임은 오로지 내수용으로만 나온다.(중략)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 같은 사람들은 일본이 그 자체로 규모가 충분히 큰 소비 시장(인구가 1억이다)이며, 한국만큼 대외 수출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수많은 일본 회사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해외 마케팅을 위해 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중략) "한국 음반사와는 달리 대부분의 일본 음반사는 자기네 아티스트의 작품을 해외에 홍보하는 일을 아주 질색한다."고 전했다.
서구권에서 케이팝이 제이팝을 추월한 또 다른 이유는 한국문화가 본래 엄격하고 보수적이라는 데 있다.(중략 / 한국의 가수들은 단정하고 예의가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등을 말하는데 ‘착한 아이 신드롬’ 부분에 자세히 언급된다.)
마지막 이유는 일본 자체가 이미 한류를 적극 수용한 상황인 것이다.(중략) 제이팝은 이제 머나먼 기억 속의 이야기 같다.
이 책은 언급한 내용들 말고도 흥미로운 (그래서 더 이야기하고 싶은) 에피소드들이 풍부하게 채워진 책이다. 그러나 충분히 알만한 인물과 사건들을 소재로 이야기하다보니 읽는데 지루함은 없었다. 친구가 이야기할 때 맞장구치거나 또는 반박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리는 느낌이 랄까? 예컨대 빅뱅의 지드레곤이 승산이 있다며 진지하게 콘서트 경험담을 이야기할 때 나는 그 말에 수긍하면서도 한편으론 왜 아이유를 이야기 안하냐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책이 써지고 제작된 시기가 아마도 박근혜 대통령 취임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미래창조과학부가 불분명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긴 하지만, 적어도 그게 어디서 주도를 했던지 간에 상관없이 한국은 급변을 하고 있으며 발전할 증조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또 한국의 저력을 믿는다는 말도 남겼다.
한편, 불과 약 3년 만에 지금의 한국을 되돌아보면 ‘헬지옥’이란 말을 필두로 좌절감들이 급격하게 퍼지고 있다. 이것이 과연 나중에 독특한 ‘한恨’의 정서로, 나아가 상장의 밑거름이 될 것인가? 아니면 분열과 좌절 상태에서 더 분란이 가중될 것인가? 솔직히, 개인적으로 그 ‘한의 정서’가 원동력이 됐다는 말에 100%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한’을 정의하기 까다롭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릴 적 추억으로 시작하여 한국의 독특한 ‘한’을 짚고, 나아가 문화의 여러 영역을 통찰한 작가의 시선은 여러모로 지적 자극을 주는 건 확실하다.
문화 수출이나 한류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며, 문화의 힘으로 ‘한국’, 또는 ‘한국의 성장모델’이라는 브랜드까지도 파는 한국인의 저력을 발견하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 그게 어려우면 지금쯤 어디서 '응답하라 1988'을 보고 있을지도 모를 유니 홍의 다음 책을 기다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