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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꼭지 - 천년을 하루로 사는 봉우리 이야기
남지심 외 지음, 박야일 그림 / 얘기꾼 / 2013년 12월
평점 :
북한산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 책. 북한산 꼭지
천년이 지나도 길가의 돌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이야기’를 가질 때, 크든 작든 어떤 의미를 지니며, 또 기억된다. 그런 뜻에서 북한산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그저 그냥 동네 뒷산, 그냥 저기 있는 돌산. 아무런 의미없는 커다란 바위. 그 정도로 이야기 한다면 너무 야박하다 할까? 하지만 나부터 시작하여 많은 사람들이 북한산 주변자락에 살고 있지만, 북산한을 의미있게 생각하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만약 나에게 북한산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어떨까? 그래서 각각의 봉우리나 기암 위의 소나무가 내게 말을 걸기 시작하고 미소지어 준다면, 그래도 북한산을 그저 커다란 바위로 생각할까?
보통 관공서에서 기획하고 유적지나 명소를 소개하는 책을 보면 가는 길과 맛집을 소개하는 정도로 정보를 전달하곤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북한산 꼭지'는 그런 책들과 확연히 다르다. 저자로 참여한 남지심 소설가와 문학가 모임 '이야기 만드는 바띠'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북한산에 숨을 실어 독자에게 소개했다. 소설가들의 합작품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에 각 봉우리의 스토리텔링은 문학적인 단편으로도 꽤 흥미롭게 다가온다. 예를 들어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시공을 초월하는 우정, 일곱마리의 용 형제가 벌이는 가족회의, 진흥왕의 순수비를 지게에 메고 올라가는 나무꾼 등등 우리가 알게모르게 들어왔던 이야기들을 상상력과 버무려 펼친다
이렇게 각 봉우리마다 이야기를 심어서 살아 숨쉬게 하는 것. 이 점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다. 더불어 이 이야기들을 이어주는 매개도 흥미롭다, 바로 북한산 정령 '꼭지'와 아버지의 건강을 빌러 올라온 소년 '대한이'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 책의 시작은 이들의 만남이고 이들이 약속하고 헤어지며 이 책도 끝난다 .
북한산 정령 '꼭지'는 삼천년을 지내며 수많은 사람을 만났고 또 친구가 되어 왔다. 꼭지는 대한이에게도 산의 이곳저곳마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친구가 된다. 더불어 소년에게 자비와 정성의 소중함 등을 알려준다.
독자는 이 대한이의 시선에서, 처음은 낯설어 하기도 하고 모르는 게 많다고 투덜대기도 하면서 꼭지와 정을 쌓는다. 그리고 어느새 우정의 손을 잡으며 약속한다.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고. 그렇게 대한이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성장하며 조금씩 어른이 되는 것이다.
성장. 어쩌면 이 책이 전하고자 하는 진정한 메시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점은 이 책이 그저 산에 대한 소개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정말로 산은 운동을 위한 장소만은 아닐 것이다.
또는 혼자 있고 싶어서 오르는 그런 곳도 아닐 것이다.
우리 몸은 산을 밟고 오른다고 할 지 모르나, 산은 조용히 우리에게 말을 건다.
'북한산 꼭지'가 주는 교훈은 그것이다. 이 책은 산이 거는 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길 희망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를 통해, 산이 들려주는 지혜로운 이야기와 정성과 자비의 마음을 통해, 오르는 이가 모두 성장하길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총 30개의 봉우리를 23개의 짧은 이야기로 전달하고 있다. 다소 많은 이야기 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것이 놀랍고 반가운 것은, 그 만큼 우리가 북한산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산의 봉우리가 이렇게 많고, 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껏 잘 드러내지 않았던 훌륭한 친구들이 이제 내 앞에 나타났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행히 이야기의 말미마다 봉의 지리적 위치와 환경등이 간략하게 가미되어 있다. 북한산 정령 '꼭지'를 직접 만나진 못할지라도 '북한산 꼭지'를 들고 산에 오른다면 어떨까? 산을 밟고 오르는 내 발걸음이 조금은 더 가볍고 경건해지지는 않을까? 등산이 그저 땀을 흘리는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산과 친해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