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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정재승 지음 / 동아시아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은 집에 있는 물고기들에게 이틀에 한번씩, 차 숟가락 반개만큼의 밥을 주는게 나름대로 큰 일과다. 관상용으로 키우는 조그만 물고기기에, 더 많이 주면 안된다는 가게 주인의 말만 믿고 꼭 그만큼만 챙겨서 주고 있다. 이것먹고 쟤네들은 버틸 수 있나? 하는 마음에 앞서 남들 밥 먹을 때 늘 박자를 한 템포씩 놓치는 제일 작은 물고기에 신경이 쓰인다. 밥이 떨어질 때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될 것을, 남들이 막 밥을 다 먹어치운 곳만 매일 뒤따라다니니 저러다가 제 몫의 밥을 과연 먹고는 있나 싶다.
게다가 얼마전에 밥이 다 떨어져서 새것으로 사왔더니 윗부분은 부서지지 않았던 커다란 알갱이들로 가득 차 있었고, 한 벅에 먹기 힘든 작은 물고기들은 늘 그것을 입안에 넣어 반으로 쪼갠 후 뱉어서 다시 주워먹는다. 그 때, 운이 없으면 옆에 있던 큰 물고기들이 쪼개놓은 물고기밥을 낼름 먹어치운다. 요즘들어 작은 녀석들 밥 먹기는 더욱 힘들겠다. 그러고보니 요 앞선 먹이통의 마지막 남은 것들은 다 으스러진 가루여서 잘 먹던데...
아무 생각없이 스쳐지나갔던 물고기 밥 주기가 다시 떠올랐다. 과학 콘서트의 '브라질 땅콩 효과' 부분을 읽으면서 말이다. 어떻게 해도 계속 큰 알갱이들이 맨 위로 가게 된다는 이 성질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부분을 보면서 내 생활이 과학으로 다시 한번 가까이 다가섰다.
사람 사는 세상은 그 자체로 떠안고 살펴봐야한다며, 옛날 데카르트식으로 이것저것 다 쪼갠 후 합치면 전체가 된다는 사고방식에 반대해왔다. 그리고는 뭐든 기계적으로 쪼개려고 하는 것들에 반감을 느끼고, 어느 순간부터 쪼개서 분석하는 과학에서부터 멀어져왔다. 그런데 이런 사고 방식부터가 스스로를 이분법으로 얽어매는 것. 나 스스로를 쪼개는 모순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 느꼈다. '과학'자 들어가는 책들 이래저래 뒤적이다가 이름이 재미있어서 과학콘서트를 넘겨다보았다. 그리고는 편협한 마음속에 들어설 곳 없던 흥분들이 자기네들끼리 뭉쳐서 마음을 채찍질했다. 그는 벌써 과학을 넘어선 인간세상을 보고 있는데 나는 왜 인산세상만 끌어안고 아무런 해답도 구하지 않는가.
과학이 좋아서 과학고에 들어갔다가 오히려 문학과 영화, 음악에 심취했다는 그답게 과학을 주제별로 잘 엮어내어 훌륭한 교향곡 한 곡을 만들었다.
제 1악장, 매우 빠르고 경쾌하게. 세상이 매우 좁다는 케빈 베이컨 법칙, 확률의 오류를 보여준 O.J. 심슨 사건, 바쁜 와중에 잼 바른 땅을 바른면이 바닥으로 가게 떨어뜨리면 빵도 못먹고 바닥도 닦아야 하는 머피의 법칙 등등 각기 다르면서도 흥미진진한 주제들을 경쾌하게 풀어낸다.
제2악장 느리게. 이제 프랙탈에 대해서 천천히 깊이 파들어간다. 자기 자신의 모양을 끝없이 되풀이하는 일견 불규칙해 보이는 자연의 법칙. 그러나 카오스의 개념을 도입하여 불규칙 속의 규칙을 찾아나가다보면 벌써 한 악장이 끝난다.
제 3악장 느리고 장중하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우리 사는 세상살이의 궁금증을 쪼개서 생각하는 과학 덕에 한결 시원하게 풀어낸다. 주로 금융 공학, 복잡성 경제학의 이야기를 하지만, 너무 파고들면 과불유급. 도로에서 차선을 바꾸면 왜 항상 손해보는지, 브라질 땅콩은 왜 항상 위로가는지 소재를 약간 바꾸지만, 큰 틀의 규칙성은 지킨다.
제4악장 점차 빠르게. 한동안 템포까지 늦춰가며 진지함을 한창 과시했다면 이제 처음과 같이 신나게 마무리할 때다. 너무 시끄러운 영국의 레스토랑 욕을 할 땐 언제고 또 소음이 있어야 소리가 들린단다. 컴퓨터 형사 가제트는 우리에겐 아직 요원한가, 싼타 클로스가 하룻밤 안에 세상을 도는 얘기를 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어마어마한 속도로 우리를 함께 돌려 혼을 다 빼어 놓더만, 결국 지금까지의 흥분이 저절로 맞춰지는 박수소리로 마무리한다. 그 간의 향연에 흠뻑 취해 나도 더 신나게 친다.
아직 흥분이 다 가시기 전에 한 마디만 더 하자. 이래도 반쪽짜리 마인드만 끌어안고 있을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