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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YouCanDoIt님의 ""신랄하게 정부를 비판한 책""

kbm - 당신이 가지고 있는 향수나 꿈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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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1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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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간아 > 새로운 인생((Yeni Hayat)으로 이끄는 책
새로운 인생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나는 책을 읽는다. 내 평생 죽을 때까지 단 한 권의 책을 읽게 되리라는 것만 확실할 뿐 앞으로 내가 읽게 될 책의 다음 내용에 대해 나는 전혀 모른다. 운명과 우연이 내 다음 책을 결정지으리라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내 독서는 ‘순수한 우연’에서 ‘완전한 숙명’으로 건너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지나치는 풍경으로 흘려보낼 것이다. 다만 몇몇 구절만이 각인되어 내 죽음 이후 그 누구도 증거할 수 없는 한 권의 책의 일부를 이루게 될 것이다. 그 책의 존재는 평생을 거쳐 이루어지지 않다가 이루어진 순간 나와 함께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제서야 내 죽음은 한 권의 책으로 말미암아 바뀌었노라고 내 생을 증거할 것이다. 내 삶은 내 죽음을 위해 단 한 권의 책을 예비한다.


  나는 말한다. “단 한 권의 책으로 내 인생은 바뀌었다.” 죽을 때까지 계속 변화하리라는 사실만 진실이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처음에는 진실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진실이게 만드는 짓거리다. 내가 알기 이전과 안 이후의 삶은 알 안의 안팎처럼 전혀 별개의 것이다. 내 기억은 그 ‘앎’을 잊었어도 이미 내 ‘삶’은 ‘앎’으로 말미암아 껍질을 깨고 다시 태어났다. 스스로는 이 변태(變態)를 알지 못한다. 태어난 존재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기억하지 못하듯, 떠나갈 자가 앞으로의 목적지를 알지 못하고 무작정 떠나버리듯, 순간순간을 지루하게 준비하다가 정작 때가 되면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듯, 지나간 문장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을 확연히 알면서도 기억을 바람에 날려보내 황급히 망각으로 걸어가듯, 돌이킬 수 없는 책의 끝을 향해 계속 나아가듯, 그러나 나는 이 책을 두 번째로 읽게 되었다.  


  나는, 이 책을 5년 전에 읽었다. <새로운 인생>이라는 제목에 휘둘려 단숨에 읽고 밤새워 소주를 들이붓고 난 뒤의 새벽처럼 괴롭고 아파서 떠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다 춘천에 혼자 휘적휘적 갔다가 젖은 눈이 엄청 퍼부어 소양강댐을 한참동안 비척비척 걷다가 달아오른 몸을 식히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한동안 오르한 파묵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다가 최근에 와서 <내 이름은 빨강>으로 주목받게 되어 순식간에 모든 것을 기억해내었다. 그 오르한 파묵의 <새로운 인생>을 다시금 맞이하자 이 책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바뀌었다. 내 인생이 바뀐 만큼의 시간동안 책 역시 계속해서 변화했던 것이다.


  버스에 웅크리고 앉아 차창 밖으로 나타날 천사와 죽음을 물끄러미 기다리고 있는 것만으로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는가, 우리 인생은 계속 살아갈수록 앞으로 분명히 전진하고 있는 것인가, 목적지를 향해 계속해서 예비된 길을 따라 순리에 따르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죽음이라는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을 반기는 것인가, 마침내 천사의 모습으로 죽음이 슬로우모션으로 내 앞에 현현(顯現)했을 때 집에 두고 온 인연을 불현듯 사무치게 그리워하지는 않을 건가.


  한 권의 책으로 그의 인생은 변했다. 돌이킬 수 없는 삶, 알아버린 인생은 이미 무엇의 계획으로 준비된 몸, 이후의 삶은 죽음 이전까지 전부 각성과 실천으로 이루어진다. 주인공은 떠난다. 예정된 운명과 정해진 이치에 순응하며 계속해서 점점 책의 정체와 운명을 향해 나아간다. 확신과 결단으로 그는 책의 정체와 책으로 말미암아 변화된 자신의 삶, 그리고 책으로 변화된 인생을 사는 다양한 사람들의 존재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배후를 추적하는 집단과 이 책의 저자의 정체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 자난과 자난이 사랑했던 남자 메호멧과 그의 아버지 닥터 나린과 그의 조직 <비탄에 빠진 가슴들>, 자신의 어린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르프크 아저씨, <새로운 인생> 캬라멜의 생산자 슈레이야씨, 그리고 사랑하고 이해했던, 책을 읽고 자신의 새로운 인생을 찾고 완전한 믿음과 거룩한 순수와 해맑은 인생을 즐기고 있던 존재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게 된 이후의 주인공이 어울려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묻는다. 그 계기가 되는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단 한 권의 책이다. 계속해서 새롭게 읽을 수 있는 책, 읽을수록 확연하게 의미가 드러나며 자신의 인생의미와 가치를 알려주는 책,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이후 맑은 평화 속에서 평생을 엄격하게 필사할만한 가치를 가진 책, 책을 통해 깨달은 사랑하는 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고 이 모든 행동의 예비와 이후의 삶에 대해서도 확신을 가지게 만드는 가치를 가진 책, 마침내 천사의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을 향해 뚜렷하고 분명하게 다가오는 죽음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이 책은 새로운 인생으로 추락시키기 위한 치명적인 초대장이다. 순수는 치명적인 독이다. 오염된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에게 이 치명적인 초대장은 순수로 다가오지만 죽음의 모습을 보게 해주는 천사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음을 알고, 인정한다. 다만 5년 전 나를 위해 예비되었던 이 책이, 어찌해서 지금 다시 내 앞에 나타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명 이 책은 변화되었다. 새벽을 부르고, 시간의 걸음걸이를 보여주고, 죽음의 그림자가 아주 빠르게 스친 것을 느끼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5년의 시간동안 내 변화된 인생은 내게 새로운 인생이었는가를 생각해본다. 아니다, 그건 이미 내 생각 속에 있었던 인생이고 예측가능했던 삶이다. 그렇다면 다시 이 책을 읽은 이후의 내 인생은 어떠할까? 나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장을 넘기듯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그것을 웃으며 확인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분명 내가 하나의 거대한 책을 평생을 걸쳐 읽고 있음을 확인하고, 확신하게 된다. 결국 나는 한 권의 책을 읽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며 내 죽음과 더불어 내 평생 동안 읽었던 책들은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할 것이다. 그 책을 읽으며 나는, 아직 오지 않은 진정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은 분명 책 이상의 책이다. 나는 이 소설이 나를 위해 쓰여졌다고 믿는다. 사무치고 서럽고 비참하고 억울하다. 알지 못해도 그러하고 안 이후에도 그러하다. 그러나 지금의 내 인생도 어느 순간 다시금 새로운 인생으로 비약하리라. 그 순간 나는 분명히 또 한 권의 책을 만나게 되리라. 순간! 새로운 인생이다.


  * 이 책의 시점은, 주인공인 오스만의 눈, 1인칭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불쑥불쑥 작가의 존재가 느닷없이 개입되기도 한다. 오스만의 독백을 빌려 작가가 슬그머니 독자들에게 이 소설에서 알아주었으면 하는 메시지를 직접 던지기도 하고 오스만이 작가인 오르한 파묵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 메타픽션이니 터키의 보르헤스나 칼비노니, 환생한 제임스 조이스니 하는 평가를 두고서라도 이 책은, ‘소설’이라는 관점으로 볼 때 단연 뛰어나고 치밀하고 적확한 구성으로 이루어져 분명히 천의무봉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다. 한 치의 오차와 낭비와 여백도 없이 이루어진 이 소설은,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나가는 무수한 풍경, 주인공의 버스여행 여정 중에 본 모든 사물들, 사소한 농담으로 던져졌던 모든 말들까지도 이후에는 다시 언급되고 나중의 벌어지는 사건과 이어지고 운명이라 부를 만한 우연으로 다시금 만나게 되어 경악스럽게 완벽한 무늬를 이루어내고 있다. 거대한 만다라를 바라보며 면벽수행하는 수도승의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앞의 내용이 너무나 황홀하고 혼곤해서 왜 단편소설로 끝내지 않았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후반부의 멋진 내용이 후줄근해보일 정도로 이 책의 서두는 압권이다.


  * 검색해보니 이 책이 벌써 절판이다. 이 책의 새로운 발간을 강력히 촉구한다. 정말로 훌륭한 소설이다. 오자 몇 개 발견했다.

186쪽 셋째줄 (나린의 -> 나린이), 274쪽 첫째줄 (추적게 -> 추적케), 347쪽 일곱째 줄 (고훈 ->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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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인간아 > 눈과 시를 영혼으로 만나는 행복과 불행
눈 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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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은 평생 한 번 우리의 꿈속에서도 내린다.


  눈이 아름다운 건 뜨거운 영혼으로는 받을 수 없는 파편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려면 그를 위해 체온을 낮추라. 하나의 눈송이는 완전한 우연으로 창조된다. 세상에서 오직 유일한, 절대적인 하나의 결정.


  우리는 살아 있는 한 온몸으로 눈을 받아낼 수 없는 비애를 가진 짐승이다. 날카로운 형상으로 온몸을 낭자하게 상처 낼 수 있는 눈이 내 마음을 깊이 있게 찌른다. 눈을 바라보는 건 눈이 아니고 영혼이다. 허공에서 태어나 대지에 맞닿자 죽어버리는 싹. 눈이 녹은 자리에 눈물이 질척거린다.


  4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하고, 망명지 독일에서 죽음처럼 방황하던 시인 카가 고향 카르스로 돌아온다. 거기서 그는 예전에 사랑했던 여인, 친구의 아내였던 여인 이펙과 만나 사랑하게 된다. 엄청난 폭설은 카르스를 외부로부터, 그리고 정부로부터 완전히 단절시킨다. 눈으로 갇혀버린 공간은 연극의 무대로 변신한다. 이제부터 카르스 안의 모든 사람들은 거대한 연극에 참여한다.


  위대한 터키의 영웅 아타튀르크가 되고 싶었던 연극배우 수나이 자임과 요염하고 정열적인 밸리 댄서 푼다 에세르는 모함과 누명을 쓰고 비참한 생활을 전전해오다가 오로지 ‘연극’을 하기 위해서, 친구와 함께 쿠테타를 일으킨다. 히잡을 벗으라는 정부의 명령을 거부하고 교리에 위배되는 자살로 자신의 신앙을 지키는 소녀들을 위한 연극「조국 혹은 히잡」을 공연하는 자리가 바로 쿠테타가 일어나는 공간이다. 무대에서 총을 쏴도 관객들은 움직일 줄 모른다. 움직이면 그 순간 표적이 된다. 완벽히 연극에, 쿠테타에 몰입하게 되는 순간이다. 주어진 시간은 단 3일, 눈이 녹으면 모든 상황은 다시 꿈처럼 예전으로 돌아간다.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과거로 되돌아갈 수 없다. 수나이 자임은 그의 소망대로 연극배우로 무대에서의 죽음을 계획한다. 그리고 자신의 연극「카르스의 비극」을 공연하다가 죽음을 맞이한다. 진정한 예술가의 죽음은 숭고한 비극이어야 한다.


  행복하기 때문에 경험하게 되는 고통과 불행을 나는 안다. 이 고통과 불행은 결코 함께 나눌 수가 없다. 이건 내가 만들어낸 행복이기 때문이다. 무흐타르는 쿠테타 이후 자신을 고문하게 되리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감사한다. 고통이 자신을 속죄하게 하며 죄를 덜어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카는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 불안과 고통과 불행을 느낀다. 라지베르트는 순교로써 전설이 되길 원하며, 수나이 자임은 연극무대에서 죽음으로 자신의 예술을 완성하고자 한다. 터키 정부는 순교자나 영웅이 죽을 때마다 성지가 생기는 걸 두려워해 시체를 바다에 몰래 던져버린다.


  눈이 영혼에 맞닿는 기적처럼, 독일을 헤매며 포르노가게를 기웃거리던 잊혀진 시인 카에게 시가 찾아온다. 단 3일 동안 그는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여인과 망명지 독일에서 누리게 될 생활을 꿈꾸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시인에 대한 신성모독이다. 카에게 시가 찾아왔기 때문에, 시의 부름에 행복하게 응답하는 시인이 될 수 있었기에 그는 행복을 경험한다. 그러나 시가 온 순간의 행복은 곧 시가 떠나버리는 불행과 같은 몸이다. 카는 시인, 시인의 숙명으로 시는 찾아오자마자 떠나기 때문에 궁극의 행복과 죽음에 이르는 비탄이 동시에 그에게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시는 제 행복의 체온에 놀라 스스로 사라져 녹아버린다.


  시인의 영혼은 필연적으로 불행해야만 한다. 그가 행복을 꿈꾸는 순간 죽음은 그에게 찾아들고 시는 날아가 다시는 찾아오지 않는다. 시가 떠난 시인의 영혼에게 죽음은 평안을 주는 축복이다. 시는, 행복한 영혼 위에서는 내리자마자 녹아버리는 눈이다. 시가 찾아드는 영혼은 고독과 고통으로 불행하다. 시인에게 불행이 숙명인 이유는 시의 결정을 온전히 받아 드러내기 위해서다. 카는 자신이 쓴 시를 읽으면서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놀란다. 그는 '다른 사람이 쓴 시를 읽을 수 있었기 떄문에 그 시가 아름답다고 여겨졌다. 아름답다고 여겼기 때문에, 시의 소재들이, 자신의 인생이 놀랍게 여겨졌다. 시에서 아름다움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고 자문한다.


  눈은 상처로 서로를 찌르면서 거대한 장벽으로 쌓인다. 이 때의 풍경은 모든 것을 뒤덮는 거대한 순수 자체다. 눈이 쌓여도, 눈이 녹아도 터키는 변하지 않는다. “카르스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절 넣으신다면, 저는 독자들에게 당신이 저에 대해 그리고 우리들에 대해 말하는 것들을 절대 믿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 누구도 멀리서 우리를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 “자신들이 우리보다 영리하고, 우리보다 우위에 있고, 우리보다 인간적이라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리를 웃기고 사랑스럽다고 생각해야 하지요.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할 거예요. 하지만 제가 방금 한 말을 책에 넣으신다면 그들 머리에 의혹이 남아 있게 되겠죠.” 2부 본문 299쪽에서 파즐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 내가 소설 <눈>을 통해 알게 되는 터키는 완전한 오해다. 행복이 불행이 되고,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 교리를 어기고 자살한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을 해야 하고 신성한 신의 이름으로 남을 죽이고 자신을 살해한다. 온몸에 폭탄을 두르고 행복하게 웃으며 목표물을 향해 달려는 무슬림은 지금 신을 만나러 가는 걸까.


시인 카는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돌아온 후 시를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귤을 사려다가 뒤에서 총을 맞고 죽음의 행복을 만난다. 나는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에게 죽음은 시의 현현이기도 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오르한 파묵을 정말로 좋아한다. 이 소설을 통해서 이전 그의 소설 <새로운 인생>에서 알게 되었으나 잘 알지 못했던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느낌이다. 이 소설은 시인 카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의 조국 ‘터키’에 관한 이야기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카와 이펙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서사구조로 보자면 너무나 한심하다. 그러나 이러한 상투적이고 유치한 관계 속에 성스러운 신은 존재의 그림자를 보여주시고, 시는 이러한 통속 속에서 강림한다. 그를 통해 나는 터키를 오해한다. 이 오해가 쌓여 결국은 눈처럼 하나의 길을 만들어내는 새하얀 길이 되리라.


  작가 오르한 파묵이 화자로 등장한다는 점도 소설의 특이한 구성이라 할 수 있다. 오르한 파묵은 편지로 알게 된 시인 카의 시 - 카르스에서 보낸 3일 동안 쓴 시 19편으로 제목은, ‘눈’, ‘은밀한 균형’, ‘별들의 우정’, ‘초콜릿 상자’, ‘신이 없는 곳’, ‘혁명의 밤’, ‘꿈의 거리’, ‘자살과 권력’, ‘속수무책과 곤경’, ‘나는 카’, ‘난 행복할 거야’, ‘천국’, ‘모든 인류와 별들’, ‘총에 맞아 죽다’, ‘체스’, ‘사랑’, ‘개’, ‘질투’, ‘세상이 끝나는 곳’이다. - 가 적힌 푸른색 노트를 찾으려 애를 쓰지만 끝내 찾지 못한다. 시인을 빌려 세상에 태어났으나 발견되지 않는 시는 전설이 된다. 카의 시는 읽을 수 없지만 그 감동은 충분히 오르한 파묵의 소설로 전달된다. 시의 감동을 전해주는 소설이라는 모순, 그러나 오르한 파묵은 이것보다도 자신의 조국 이야기가 먼저였으리라고 확신한다.


  눈은 나리고 쌓이고 죽음을 맞이하고 쌓이고 현실을 환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이 소설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눈이 내린다. 터키 북부의 외진 도시 카르스는 눈에 의해 환상의 연극 무대가 되었다가 눈이 녹은 뒤 다시 터키라는 현실로 돌아갔다. 시가 머물고 떠난 자리처럼, 시가 찾아왔다가 떠난 영혼으로 고통받는 시인처럼 카르스도, 터키도 결국은 변치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에 감히 어떠한 감상이나 이해를 쌓지 않기로 한다. 나는 오르한 파묵의 글을 녹지 않게 영혼으로 받아, 카가 썼던 시를 읽어볼 뿐이다. 허공을 부유하는 눈처럼 존재하지 않는, 불행한 영혼으로만 읽어볼 수 있는 시인의 뜨거운 시를!


  눈 속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풍경을 길로 만들 수 있다.



   * 등장인물 (내 마음대로의 느낌이므로 다른 인물일수도 있다.)

  카 - 독일로 망명했다가 고향 카르스로 돌아온 시인. 단 3일 동안 그의 인생이 뒤바뀌는 사랑과 사건을 경험한다. 무신론자였다가 후에 ‘무엇’으로 변한다.

  오르한 파묵 - 이 소설의 화자이자 작가. 친구인 카의 죽음 이후 그의 시가 담긴 초록색 노트를 찾기 위해 그의 행적과 카르스를 좇는다.

  무흐타르 - 시인 카의 옛 친구. 순수한 꿈이 있었으나 정치적 욕망의 길을 선택한다.

  이펙 - 시인 카의 친구이자 무흐타르의 아내였던 아름다운 여인, 짧은 시간동안 카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녀의 과거로 말미암아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카르스에 남게 된다.

  카디페 - 이펙의 여동생이며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지만 사랑하는 연인 라지베르트를 구하기 위해 연극무대에서 히잡을 벗는다.

  라지베르트 - 신실한 무슬림이자 카디페의 연인.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말하지 않는다.)

  투르굿 - 이펙과 카디페의 아버지로 감옥에서 오랜 고통을 당하고 난 뒤 호텔에서 생활한다.

  세르다르 - 판매부수 320부의 <국경 도시 신문>의 발행인. 내일의 기사를 쓰는데 예언처럼 맞아떨어지게 된다. ‘많은 사건들이 단지 우리가 미리 기사를 썼기 때문에 일어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거야말로 현대적인 저널리즘이지요.’ 라는 그의 말은 무엇보다도 지금의 현실에 걸맞는 풍자다.

  쿠르드인 교주 사데띤 에펜디 - 무신론자 카에게 신앙을 고백하게 만든다.

  예니 하얏 제과점 - ‘새로운 인생’이라는 뜻의 제과점. 오르한 파묵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카와 이펙이 카르스에서 처음 만나는 장소이기도 하다.

  아타튀르크 - ‘터키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타튀르크의 원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1881~1938)이다. 국부라는 뜻의 ‘아타튀르크’는 1934년에 국회가 그에게 부여한 성이다. 그는 터키 국민의 정신적 지주로 1923년 터키 공화국을 선포하면서 초대 대통령이 되었고, 종래의 이슬람 전통을 크게 탈피한 서구적 근대화 개혁 작업을 급진적으로 추진한 인물이다.

  네집 - 무슬림 학생, 밀렛 극장에서 공연된 연극「조국 혹은 히잡」을 보다가 일어난 쿠테타의 총알에 맞아 죽음에 이른다. ‘무신론자(atheist)라는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athos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 단어는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신에게 버림받은 외로운 사람을 의미한답니다. 그러니 사람은 절대 무신론자가 될 수 없지요. 신은 우릴 버리지 않으니까요.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서양인이 되어야 해요.’라는 말을 하던 순수한 이슬람 믿음 내면에 도사린 무신론의 회의로 고통 받는다. ‘히즈란’으로 알려진 카티페를 사랑한다.

  파즐 - 무슬림 학생, 자살한 여학생 테스메리를 사랑한다. 그러나 친구 네집이 죽은 후 네집의 영혼에 잠식당하게 되고 자신 내면의 믿음을 시험당한다. 훗날 카티페와 결혼해서 외메르잔을 얻는다.

  메숫 - 무슬림 학생

  테스리메 - 히잡을 벗고 등교하라는 정부의 지시와 가족, 친구들의 압박 속에서 교리를 위반하고 자살을 선택함으로 자신의 믿음과 신앙을 지켜낸 여학생.

  Z. 데미르콜 - 신문기자이자 경호원이었으나 쿠테타 이후 대학 기숙사, 신학고등학교, 정당들을 습격하는 살인자로 활동한다.

  타르쿳 웰춘 - 프랑크푸르트에 온 초기 이민자. 이 글의 작가이자 카의 친구인 오르한 파묵이 독일에서 카의 행적을 찾을 때 도와준다.

 

  * 오타

  1권

  24쪽 11째 줄 : 그를 -> 그는

  108쪽  6째 줄 : 이사이 -> 이 사이

  2권

  132쪽 4째 줄 : 그리고 자신이 붙여준 두 명의 경호원이 카의 곁에 꼭 붙어 있을 테고 말했다.  (문장이 이상하다.)

  141쪽 23째 줄 : 예상치 못하게서로를 -> 예상치 못하게 서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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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최효찬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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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책의 무게는 좋은재질로 만들어져 상당히 무겁다.

그러나 내용은 엄청나게 가볍고 간혹 위인전기전집 요약판 같다.

처음 제목만으로는 아주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욕구에 부합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동일한 사실의 중복기재, 주로 성공한 가족소개 거기에다가 교육관련 내용의 일부첨가 로

일관한 전체내용은   자녀교육 철학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그냥 짤막한 훌륭한

위인전기 편집정도 수준이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이런 내용이 자녀교육에 얼마나 도움이 될 지

의심스러운 면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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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천재뮤지션님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은 왜 탄생했으며, 어떤 방식으로 소비되는가?"

1950년대 북한의 인민은 어떤인민이었는지에 대한 설명과, 북한의 혁명학살 장면등도 같이 게재하는게 공평하지 않나요? - 해골 사진을 너무 크게 게재하여, 편향적인라는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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