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 마음 - 나의 옳음과 그들의 옳음은 왜 다른가
조너선 하이트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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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나에게 새로운 사유의 길을 터준 '조서방'(조너선 하이트의 처가는 한국계 미국 가정)에게 감사와 존경을!

 

지성과 관용과 유머를 두루 겸비한 이 미국 심리학자는 '도덕'이라는 단단한 바늘로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쟁점들을 능수능란하게 꿰어냈다. 더구나 스티븐 에비시의 말처럼 "이 정도의 아량과 개방성"을 갖추었으면서도 어느 한 부분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지 않고 날카롭고 집요한 질문에 답해 나갔다는 점에 경이를 느낀다. "우리 다 같이 사이좋게 지낼 수 있잖아요?"라는 첫 문장에서부터 "그러니 서로 잘 지낼 수 있게 함께 노력해보자."는 마지막 문장에 이르기까지, 던져 놓은 떡밥들을 완벽하게 수거하는 저자의 성실함과 꼼꼼함에 읽는 내내 탄성이 절로 나왔다.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다. 더 많은 사람이 이 책을 읽는다면 전쟁이 줄어들 것이다. 특히 자신을 진보주의자라고 믿는 이들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정답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나지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가 끝나면 시작된다.

 

어느 영화관에 붙어 있던 이 말처럼, 놀라운 질문들로 가득한 이 책 역시 책을 덮는 순간 시작된다. 코끼리와 기수, 여섯 가지 도덕 기반, 호모 듀플렉스 등 새로운 개념들을 맛보는 경험도 즐거웠지만, 지난 수십 년간 도킨스를 비롯한 학자들이 외쳐온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뒤집고, 인간 종족이 "집단적 바름을 추구하는" 이타적(이집단적) 존재임을 밝히는 지적 여정에 동행할 수 있어서 얼마나 즐거웠는지!

 

대립되는 현상에 대한 이분법적 고정관념이 보기 좋게 뒤집어지는, 그야말로 "환상적인" 독서 대장정은 피로보다는 짜릿함을 더 많이 안겨주었다.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도덕조차 여러 개의 '진실'이 있다는 것, 사람을 판단하고 사회를 작동시키는 정당한 틀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도덕성이란 개인적 차원에서 어느 한 순간 획득되는 것이 아닌 타인이 좇는 가치와 옳음을 이해하려 애쓰는 순간순간 이루어지는 기나긴 과정임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이 책이 갖는 미덕은 오늘날 첨예하게 등을 진 보수/진보. 종교/비종교 인의 행동을 관찰, 분석하는 데 있어. 어느 한쪽을 두둔하지도 혹은 비난하지도 않으면서 끝까지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의 첫 장에 인용한 스피노자의 말은 조너선 하이트가 무엇 때문에 이 책을 썼는지 정확하게 대변한다.

 

"내가 이제껏 각고의 노력으로 공부해온 까닭은 인간의 행동을 비웃기 위해서도, 그것에 동정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도, 그것을 미워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저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였을 뿐."

 

책 내용을 굳이 여기에 정리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저자가 12개 장 말미마다 친절히 요약해주는 것으로도 모자라, 책 말미에 독자가 "집에까지 가져갔으면" 하는 부분과 "여행의 기념품으로" 챙길 것까지 세심하게 짚어주고 있으니.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두 가지를 중심으로 짧게 정리해보고자 한다.

 

 

내 안의 코끼리에게 말 걸기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장면이 있었다. '뇌 편향성'에 관한 동영상이다. 영상은 한 용접공이 개조한 특별한 자전거를 타는 실험에 관한 것이다. 용접공이 바꾼 것은 단 하나, 핸들을 돌리는 것과 바퀴가 움직이는 것을 반대로 만든 것. 핸들의 조작 시스템을 바꾸었을 뿐인데, 모든 사람이 자전거를 타는 데 실패한다. 머릿속 생각이 한번 고착되면 여간해서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이 실험으로 증명됐다.

 

이 책 전반부의 다양한 실험들은 이 자전거 실험을 연상시켰다. 특히 하이트가 직접 인도에 가 공동체의 윤리를 경험하면서 본래 갖고 있던 자율성의 윤리에서 벗어나는 과정, 그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 자율성의 윤리와 마주치며 느끼는 당혹감은 자전거 실험에서와 거의 비슷하다.

비록 자전거 실험이 '도덕성'에 관한 실험은 아니지만, 기수와 코끼리 비유와도 접점이 있다. 오랫동안 철학과 과학의 역할은 우리 인간이 합리적, 이성적 존재임을 증명하는 데 있었지만, 그 합리성이 허술하기 짝이 없는 구조물이며 이성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허구임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하이트의 '직관주의'는 우리가 내세우는 이성적, 합리적 사고(추론)라는 것이 실은 자신의 감정(정서, 직관)을 정당화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주장을 담고 있는데, 이는 반대로 말하면 정서(직관)가 결여된 사고(추론 능력)는 쓸모없거나 심지어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뜻이다. 자전거 핸들이 반대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며, 미숙한 운전은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결국 도덕은 물론이고 삶의 방식, 태도를 변화시키고 싶다면 내 안의 기수(이성)에게 호소하는 것보다는 코끼리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 다르게 살고 싶다면, 내 안의 기수가 아니라 코끼리를 움직여야 한다는 것. 다른 선택이 가져올 득과 실을 합리적으로 따지고, 모험의 기회비용을 이성적으로 셈하기보다 직관이 이끄는 대로.

 

 

내 안의 스위치 발견하기

 

10장에 등장하는 '군집 스위치'라는 이 기지 넘치는 개념은 내게 지적인 자극도 주었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의 삶을 해석할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요긴한 화두였다. 군집 스위치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나'에서 '우리'가 되는 과정에 일어나는 몰아(沒我)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이트는 이 스위치를 켜는 방법으로 세 가지를 제시하는데, 나는 그중 첫 번째 스위치가 나의 것이라고 직감했다.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느끼는 순간."

 

비단 웅장한 풍경 한복판에 섰을 때가 아니더라도 "밤하늘에 총총히 박힌 별을 바라보거나, 완만하게 경사진 들판의 픙경을 바라볼 때나, 혹은 그저 숲길을 이리저리 거"닐 때 말을 잊고 마음이 텅 비는 듯한 경험을 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우리가 거대한 무언가에 속해 있다는 압도감이 "자아의 회로를 닫아주"고 나 자신이 "그저 전체의 일부"임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하이트는 이 스위치를 자연에 대한 경외심, 뒤르켐적인 약물, 레이브 파티 세 가지를 들었지만, 각자의 삶 속에서 이 스위치는 무한할 것이다. 나는 하이트의 군집 스위치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은데, 바로 독서의 경험이다. 책 역시 압축된 시공간이라는 점에서 자연이 주는 경외와 "고차원적 느낌"을 선사하는 훌륭한 스위치다. 자신의 스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행복을 찾기도 더 쉬울 것임은 두말할 필요 없다. 그 점에서 하이트의 또 다른 저작물 <행복의 가설>도 읽어보고 싶다.

 

하이트는 행복은 "사이에서 찾아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 자신과 타인, 나 자신과 나의 일, 나 자신과 나보다 더 거대한 무엇, 이 둘 사이에 올바른 관계가 맺어져야 행복은 비로소 찾아온다."

 

<바른 마음>은 심도 깊은 학문적 성과이기도 하거니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통해 나와 세계 '사이'를 응시하게 함으로써 내 삶의 기쁨과 의무를 찾도록 이끌어준 유용한 가이드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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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타의 일
박서련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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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소재와 캐릭터들로 점철되어 있어, 전작의 독창성에 못 미치는 느낌은 있지만, 한번 잡으면 중간에 내려놓을 수 없는 책. 특히 ‘끊기 신공‘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번 장까지만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결국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또 하나의 강력한 여성 스토리텔러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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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 진화하는 페미니즘
권김현영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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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게, 하지만 지금이라도 나와줘서 고마운 권김현영의 첫 단독 저서.

서문부터 울컥.

 

1.
"페미니즘은 늘 쓸모를 증명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는 말에서
'전쟁'을 포함해 남성들이 만들어낸 온갖 '쓸모없는' 것들. 아니, 해로운 것들을 떠올렸다.

 

 

2.
"페미니즘의 목표는 권력을 남성으로부터 '탈환'하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권력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권력의 의미를 바꾸는 데 있다."


이 한문장이 지닌 함의와 무게가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권력의 주체가 누구인가, 권력을 누가 소유할 것이냐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권력 자체의 의미를 바꿔내는 것.

(이상적일 수 있지만) 그리하여 누가 권력을 갖더라도
그 권력이 사람을 배제하고 억압하고 해치는 일이 없게 하는 것.
이는 오염된 강을 정화하는 일, 지구상에서 미세먼지를 완전히 몰아내는 일과 같은 것.
하지만, 한번 이루어지고 나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일.
권력의 '성질'을 바꿔내는 것!
다른 어떤 담론이, 학문이, 운동이, 이토록 아름다운 종착지를 향해 길을 떠나봤을까?

 


2.
그것은 "진화하는 영혼을 지닌" 이들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다.
진화하는 영혼의 소유자란, 뛰어나고 영웅적인 혹은 무결한 "몇몇 예외적인 여성"이 아니다.
"올바름의 이름이 아니라 무엇이 옳은지를 질문하는 사람"이다.
"페미니즘의 이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좀 자유로워졌다"는 저자의 말에
의식하지 못한 채로 나를 둘러싸고 있던 투명 감옥의 문이 활짝 열리는 느낌이었다.

 

 

3.
저자는 정치적인 큰 권력만이 아니라,
우리 안에, 관계 사이에, 일상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작은 권력들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실수한 자리" "잘못된 판단" "관성"을 지워버리는 대신
솔직히 인정하고 똑똑히 바라봄으로써
같은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진화하고자 한다.

 


4.
다양한 일상의 자리와 시선과 반응들이 풍성하게 드러나는 것이 좋았지만,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들을 모은 책이기에 아쉬움도 있다.

단지 한 편 한 편에 할애된 분량의 적음 때문만이 아니라,
여러 글들에서 '더 이어질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하는....
각 글이 품고 있는 문제의식이 더 깊고 치열하게 전개되지 못한 것은
저자의 한계가 아니라 첫 책의 아쉬움일 것으로 생각하고 싶다.


첫 책이 저자의 '넓은'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었다면,
다음 책은 저자의 '깊은' 시선을 보여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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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과 O
김현 외 지음 / 알마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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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실물로 봐야 하는 책이다. 겉부터 안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책. 그래서 책은 쓰다듬을 수 있는, 넘길 수 있는, 접을 수 있는 물성이어야 한다는 새삼스런 생각이 들게 하는 책. ˝이제 책을 덮고 책을 읽으세요.˝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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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 - 여자들만의 나라 Rediscovery 아고라 재발견총서 5
샬롯 퍼킨스 길먼 지음, 황유진 옮김 / 아고라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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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는 상당한 비약과 결락도 있지만, 설정만으로도 큰 즐거움. <누런 벽지>를 읽으면서는 여성을 욕망의 주체로 보지 않는 건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구나 싶어 씁쓸. 누구의 목소리인가. 화자를 마구 휘저어버림으로써 독자를 혼란에 빠뜨리는 흥미로운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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