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을 닮았나 봐요 웅진 우리그림책 114
유해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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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이라는 주제가 주는 무거움이 있다. 장례 문화나 고인을 기리는 형식 등이 많이 바뀌고 있다고 해도,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죽음을 대할 때 슬프고 무섭고 가슴 아파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기 꺼리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2022년에 서울북부교육지원청 독서교육지원단에서 북콘서트 형식으로 진행한 연수를 통해 아동 장편 동화 「모두 웃는 장례식」을 접했다. 「모두 웃는 장례식」은 ‘생전장례식’을 주제로 한 이야기인데, 살아 있을 때 미리 장례식을 치러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고 정리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게 좋아 보였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모두가 생전장례식을 좋게 생각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TV 예능 프로그램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출연자가 아버지를 모시고 수목장, 바다장 등 다양한 묫자리를 보러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 캐나다에서는 비교적 젊었을 때부터 자기가 영면할 장소를 봐둔다고 한다. 묫자리를 봐두면 더 오래 산다는 말도 있단다. 내가 묫자리 봐뒀다고 하면 우리 부모님께서는 기함하시지 않을까... 하지만 이렇게 죽음에 대해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서 현재를 좀 더 소중하게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될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죽음에 관하여 좀 더 공개적으로 이야기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값지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유해린 작가님의 그림책 「물결을 닮았나 봐요」는 이런 시간의 흐름을 털실로 표현하고 있다. 그림책에 등장하는 아이와 할머니가 나누는 대화가 이리저리 엮인 털실로 표현되어 있는데, 판화로 찍어낸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 곳곳에 따스함이 묻어있었다.


「물결을 닮았나 봐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다 다르단다.’ 페이지에는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강아지와 할머니의 시간, 그리고 아이와 할머니보다 먼저 끝나버리는 강아지의 시간이 털실의 길이로 표현되어 있다. 털실을 일직선으로만 늘어놓으면 각자에게 주어진 시간의 차이가 선명하게 눈에 보이기 때문에 죽음을 슬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털실은 휘어지고 굽어지고 유연하며 서로 엮을 수 있다. 제목 그대로 시간은 물결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누구와 어떻게 보낼지, 내 시간을 어떻게 근사하게 엮으며 보낼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그림책이었다. 유해린 작가님의 첫 책이라는데, 세상을 이렇게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참 기대가 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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