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부르면 그래 책이야 40
정이립 지음, 전명진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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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인해 하루 5교시 200분의 수업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학생들에게 주어진 쉬는 시간은 단 10분. 화장실 한 번 다녀오고 기지개 한 번 피면 그 시간도 얼추 지나서 다음 수업을 준비해야 한다. 점심을 먹으면 얼른 학생들을 집이나 방과후수업, 돌봄교실로 보낸다. 학생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그때부터 교실 정리는 교사의 몫이다.
청소를 하며 바닥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지우개 조각이다. 흔히 학생들이 '지우개똥'이라 부르는 지우개 가루가 아닌 '조각'. 인위적으로 뜯거나 가위로 잘라내어 모서리가 반듯한 조각들이 유독 몰려있는 자리들이 있다. 두어 자리 건너 자리에도 역시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처럼 지우개 조각이 흩어져있다.
지우개 조각 다음으로 바닥에 많이 보이는 물건은 연필이다. 이름이라도 써놓았으면 주인이라도 찾아줄텐데, 대부분은 그대로 분실물 바구니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연필은 주인의 손에 돌아가지 못하고 한 달에 한 번 바구니를 비울 때 버려진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아이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몽당연필을 친구에게 자랑했고, 갑자기 교실 여기 저기에서 몽당연필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미 글씨를 쓴다는 연필의 기능이 불가능할 정도로 짜리몽땅한 연필들을 보며 어디서 갑자기 저런 짧은 연필이 나왔을까 의문스러웠다. 그리고 청소시간에 그 비밀을 알게 되었다. 바닥에는 반씩 부러진 연필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나의 부모님 세대는 물건을 아껴쓰신다. 가끔은 저렇게까지 아끼나, 고장났으면 바꾸지 뭘 그렇게 힘들게 고쳐쓰나 답답할 때도 있다. 하지만 당신들이 조금의 불편만 감수하면 얼마든지 계속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긴 했다. 그리고 우리 세대는 그보다는 풍요로워졌고, 지금 우리 아이들 세대는 더 큰 풍요 속에 살고 있다. 단돈 몇 백원 하는 지우개나 연필은 문구점에서 살 필요도 없이 학교, 학원, 각종 캠프에서 경품이나 선물로 뿌져지는 물건이다. 종합장이나 공책은 기본이고 풀이나 테이프가 없으면 '당연히' 학교 것을 빌려쓸 수 있다.

과연 학용품만 이렇게 막 쓸까. 휴대폰을 바꾸고 싶은데 고장이 나질 않아서 바꿔달라는 말을 못 한다며 친구에게 던져달라는 아이가 있고, 어차피 액정 깨져서 괜찮다며 하늘 높이 휴대폰을 던졌다가 받아내는 아이도 있다. '공짜로 주는'(줄로만 알고 있지만 국민의 세금이다 이녀석들) 교과서의 앞뒤 표지는 찢겨 나간지 오래. 망쳤다며 끝없이 새 도화지를 받아가면 오히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려한다며 칭찬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내 이름을 부르면>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우개를 뜯으며 서로에게 던지다가 나에게 혼난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버려진 자전거 '황금 날개'에게 돌을 던지던 삼인방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연필심을 부러트리고 다시 깎는 것을 반복하는 아이는 "어차피 연필 많아요."라고 말했었다.
물건 하나에 목숨걸고 쪼잔해지자는 것이 아닌데 물건을 아끼자는 말이 민망해지는 순간들이다. "용돈 말고 니들이 번 돈으로 산 물건이 있니?"라고 말하다가도 아차, 그럼 나중에 자기가 번 돈으로 산 물건은 막 써도 되나? 싶어서 꼭 그 뒤에 "그리고 자기가 번 돈으로 산 물건이어도 그렇게 막 써도 돼?"하고 덧붙인다.

10.p 나는 자전거다. 마음씨가 있는 자전거. 주인이 이름을 붙여 일곱 번 부르면 마음씨가 생긴다. 마음씨는 주인의 사랑을 받고 자란다.
우리 아이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을 읽고 마음씨가 생긴 물건들을 생각해주면 좋겠다. 소중히 여기는 물건 하나에 이름을 붙여주고 아끼는 마음을 오롯이 쏟아주면 좋겠다. 그런 경험과 생각들이 아이들의 생활 태도에 드러나고,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사용하면 좋겠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그 물건을 만드느라 고생했을 지구를 위해서라도 물건을 아껴주면 좋겠다.

사실 <내 이름을 부르면>의 주인공인 자전거 '황금 날개'는 자신을 아껴주는 '형섭'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 단순히 자기를 주워가고 단장해줘서 고마운 것에 그치지 않고 삼인방을 대하는 형섭의 태도를 보며 황금 날개가 새롭게 배운 마음도 있을 것이다. 어떤 마음인지는 책에서 확인해보시길:)

+초등학교 중학년에 추천한다. 사실 고학년만 되어도 성인군자같은 형섭의 행동에 아쉬움을 느끼는 아이들이 많을 것 같다. 삼인방의 말과 행동이 너무 얄밉지만... 결국 그들이 누구에게서 배웠겠는가... 다 어른들 잘못이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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