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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이 빛나는 순간 ㅣ 푸른도서관 6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3년 4월
평점 :

지은이 이금이
전에 일본어를 배웠을때 나에게 참으로 와닿는 단어가 하나 있었다.
一人前 (いちにんまえ) '이치닌마에' 라고 읽으며 말 그대로 일인분, 한사람 몫이란 뜻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한사람 몫을 한다는 의미로 성숙된 인간, 제구실을 하는 인간을 가리킬때가 더 많다.
난 이 의미가 너무나 좋았던것이 한사람 몫이 라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얻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흔히 좋다고 여기는 명문대를 들어가 번듯한 직업을 가지거나, 직장내에서 승승장구 하거나, 명예를 얻어 다른 이들의 우러름을 받거나, 이런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그저 나에게 주어진 몫 만을 다하면 그것으로 된 듯한 그 말 한마디..
이치닌마에...
우리 아이들도 사실은 그렇게 크기만 하면 된다.
사람에게는 각자 다른 몫들이 있다. 나의 것과 다른 이의 것이 같지 않으며, 결코 그 어느 것이 더 크고 작지 않다.
그저 서로에게 다른 몫만 주어졌을 뿐이다. 자신의 몫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에 충실하기만 하면 된다.
내가 가지고 싶었던 몫, 그러나 나의 것이 아니었거나 나의 노력부족으로 얻지 못했던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 강요해서는 안된다.
그들은 우리의 소유가 아닌 하나의 객체이기 때문이다.
사랑이란 미명아래 우리의 생각을 그들에게 강요할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실을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린다.
여기 자신의 몫을 찾아 길을 가는 두 청년이 있다.
석주는 단란한 가정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친구이다. 형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여 명문대를 들어가 아버지와 동문이 되고, 자신은 그 정도의 실력이 되지 않자, 신설된 영동의 특목고, 태명고로 진학하게 된다. 용꼬리보다는 뱀머리가 되어 명문대를 노려본다는 엄마의 치밀한 전략이었다.
지오는 아버지의 넘쳐나는 교육열에 의해 엄마와 쌍둥이 여동생 지윤과 캐나다에 갔다온 유학파이다. 그러다 엄마는 자신만의 길을 찾게 되고 결국 아빠와 이혼에 이르게 된다. 엄마와 남겠다는 지윤의 말에 지오는 자신만은 아빠의 곁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오지만 아빠는 아들의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에 실망감을 드러내고 부자의 골은 깊어만 진다.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해 지오도 태명고에 입학한다.
이 둘은 1학년 첫해에 같은 기숙사 방을 쓰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이 둘에게서도 그들 스스로 그들의 길을 찾는 모습을 발견 할 수가 없다.
석주가 믿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은 사실은 자신에게 보여지고 주어진 길이지 그 스스로가 찾아낸 길은 아니다.
지오 또한 한번도 자신이 원하는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낸 본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던 게 아마 자퇴를 결심하고 집으로 향하던 때였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지오는 자신이 가야하는 곳이 떠나는 곳보다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집으로 갈때는 학교를 벗어나는 게 좋았고, 학교로 갈때는 집과 멀어지는 게 좋았다. 그 뒤 3년여가 지났는데도 상황은 상황은 여전했다. (p8)
이야기는 지오가 석주의 초청을 받아 기차를 타고 추풍령까지 가는것에서 시작한다. 그 여행으로 시작된 지오의 회상과 현실이 맞물려 이야기는 진행된다.
태명고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첫날.
석주는 전날 보았던 모의고사의 참담한 성적 때문에 돌아갈수가 없었고, 지오는 아빠와의 단절감으로 돌아가기 싫어했다. 우연한 기회에 서로의 상황을 확인한 둘은 역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빌려(훔쳐)타고 자전거 여행을 시작한다.
어찌나 빠르게 페달을 밟았는지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덕분에 떨리는 게 사라졌다. (p89)
해가 기울자 날씨가 선선해졌다. 석주는 자신의 발로 페달을 굴러 달려온 거리와 시간에 대해 뭔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p90)
날이 어두워지고 길을 잃은 둘은 지나가는 트럭을 타게되고 아저씨의 도움으로 따뜻한 저녁과 하룻밤 신세를 지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한 살 어린 여자아이 은설. 예쁘게 생기지는 않았지만 까르르 웃는 밝은 모습에 석주는 마음이 떨린다. 그러나 은설이 지오에게 더 관심이 있는듯 보이자 석주는 실망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은설과의 인연.
석주가 원하지 않는 성적으로 수능을 마치자 재수를 결심하고 둘은 정동진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이끌림에 의한 하룻밤을 보내고 석주는 은설을 잊었다. 1년 뒤 만족할 만한 성적으로 수능을 끝낸 석주는 은설을 찾아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은설은 만삭이 다 된 몸이 되어있고 석주는 그만 그곳에서 도망쳐나와 버린다. 그렇게 석주의 방황은 시작되었다.
감정의 파고는 풍랑처럼 기복이 심해 어떤 날은 과외로 떼돈을 벌어 그 돈을 엄마와 은설 앞에 휴지조각인 양 집어 던지고 싶었고, 그 다음 날은 뱃사람이 돼 자신에게 추파를 던지는 동백 다방 미스 고와 살림을 차려도 살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석주는 진심으로, 바닷물에 퉁퉁 불고 물고기에 눈알을 파 먹힌 시체로 엄마와 은설에게 발견되고 싶었다. (p244)
많은 깨어짐을 통해 자신의 길을 결정한 석주는 이제 더 이상 이 모든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기로 결심한다.
석주는 그동안 자신이 남들의 삶을 바라볼 여유가 없었음을 깨달았다. 자기안에 자학의 우물을 판 뒤 얼굴을 처박고 그 안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p285)
그랬다면 좋았을까. 자전거 여행을 안 했더라면 더 좋았을까. 은설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 엄마의 착하고 자랑스러운 아들로 살고 있으면 더 행복할까. 석주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해 그 누구도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으리라. (p287)
어른이 된다는 건 살면서 '어떻게 그럴수 있어 목록'보다 '그럴 수도 있지 목록' 이 더 늘어나는 일일지도 모른다. (p282)
석주를 만나게 되는 지오는 그의 모습에 너무나도 놀라고, 이해가 되지 않아 서울로 같이 올라가자고 말리기까지 한다. 엄마의 삶도 이해되지 않고 아버지의 모습도 두렵기만 한, 아직 그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그로서는 석주의 모습이 당당해 보이지만 억지로 저러는 것이라고 자신을 위로하고 싶은 것이었다.
이때 은설의 아버지는 그에게 이런 말을 해준다.
"어디 제절로 나는 빛이 있드나. 지오 니 이른 봄 얼음 녹을 때 냇가에 가 본적 있나?
물가에 있어 보마 깨진 얼음장이 흘러다가 반짝하고 빛나는 순간이 있제. 돌에 걸리거나 수면이 갑자기 낮아져가 얼음장이 곧추설 땐 기라. 그때 햇빛이 반사돼가 빛나는 긴데 그 빛이 을매나 이쁜지 모린다. 얼음장이 그런 빛을 낼라 카믄 일단 깨져야 하고 돌부리나 굴곡진 길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하는 기라.
사람 사는 일도 마찬가지지 싶다. 사는 기 평탄할 때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몰라. 고난이 닥쳤을때 그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마 그제사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기다." (p303,304)
지오의 핸드폰이 연거푸 울린다. 아빠의 전화다.
그때 또 다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지오는 천천히 손을 뻗어 퓨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심호흡한 다음 자신을 이른 봄 얼음이 깨질 때의 냇가로 데려다 놓았다. (p312)
어떤 삶이, 어떤 인생이 더 좋다, 아니다 말할수는 없다. 다만 그 길에서 자신이 한사람 몫을 해내고 있느냐갸 중요할 것이다.
석주가 살아보지 않은 다른 인생. <안녕, 누구나의 인생>의 셰릴 스트레이드가 말한것처럼 자매선(sister ship)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바라보고 소원해도 그것을 실제 나의 삶이 아닌 유령선일 뿐인것이다. 석주는 그가 선택한 길에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얼음이 빛나는 그 순간을 경험한 것이다.
지오 또한 순간순간 선택을 할 것이고 후에 선택의 뒤안길을 열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길이냐가 아니라 그 또한 한사람 몫을 하고 있느냐일 것이다. 지오 또한 빛이 발하는 순간을 경험하길 조용히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