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희망의 귀환 - 희망을 부르면, 희망은 내게 온다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3년 3월
평점 :

지은이 차동엽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스페로 스페라 Spero, spera)
전에 한비야씨의 책에서 본 이야기이가 생각난다.
아프리카에 가뭄이 극심해 물도 없고 곡식도 자라지 않아 심한 굶주림에 허덕이는 지역이 있었다고 한다. 구호단체에서 이들을 위해 씨앗을 구해다 농사를 지을수 있도록 원조해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씨앗의 양이 부족하여 한마을에만 지급이 되고 옆마을에는 지급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씨앗이 지급된 마을도 수확을 하기전에는 양식을 얻을 수 없기에 두 마을이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씨앗을 지급받지 못한 마을에서는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였으나 씨앗을 지급받은 마을은 굶어죽는 사람이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그 두 마을이 굶주림에 허덕이는 조건은 똑같았다. 무엇이 그들을 죽음과 삶으로 갈라 놓았을까?
그것은 희망이었다.
저 씨앗이 자라서 수확을 하면 우리는 굶주리지 않을거라는 희망이 그들을 살려낸 것이다.
그뒤로 난 항상 다른이들을 위해 기도를 할때면 희망이라는 말을 되내이곤 한다.
"희망을 갖게 해주세요. 희망을 버리지 말게 해주세요."
희망은 무엇일까?
저자는 절망의 의미부터 알려주고 있다.
절망이 무엇인가.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 것이 절망이다. 한자어로 절망은 바라보기를 끊는 것을 가리킨다. 맞다. 바라봄을 끊는 것이 절망이다. 더 이상 바라보지 않는 것이 절망이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절망이다. 눈감아 버린것이 절망이다. 그렇다면 희망은 바로 그 반대! (p36)
기대할것이 없는 상태, 바라볼것이 없는 상태, 바라보지 않는것, 그것이 절망이다. 희망이 그 반대라면 우리는 바라보면 되는 것이다. 꿈을 꾸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는 희망을 바라보기에 너무 어려울 때도 많다.
그러나 저자는 그럴 때도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우격다짐으로라도 아무거라도 붙잡고 희망을 가지라고 말한다.
'근거 없는 희망', '헛소리', 이런 표현들은 내 희망철학의 핵심요소다. 여기서 진일보한 것이 바로 "아무거나 붙잡고 희망이라고 우겨라!" 라는 다소 우악스런 나의 권면이다. (p 62)
절망을 없애려고 하지말고 희망을 붙잡으십시오, 절망하고 싸우지 마십시오, 자꾸 희망을 가지십시오. 이루어지든지 말든지 계속 좋은 것을 상상하십시오. 그러면 됩니다. 연거푸 희망을 품는 것이 절망을 몰아내는 상책입니다. (p95)
아마도 어떤 이들은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있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잡을 수 없는 상태에서 무엇을 바라보느냐고...
그러나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핑계일 뿐이다.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길이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필리핀 속담에 "하고 싶은 일에는 방법이 보이고, 하기 싫은 일에는 핑계가 보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악한 환경에서도 기꺼이 희망을 부여잡고 호기로운 꿈을 품으면, 방법은 신통방통하게 생기기 마련이다. (p110)
성공회대 신영복 교수가 감옥 독방에 갇혔었을때 매일 2시간쯤 햇빛이 들어왔다고 한다. 그때가 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회상한다.
매일 2시간쯤 들어오는 무릎면적의 햇빛!
희망을 모르는 이에게는 죽음의 이유가 되고도 남는 지독스런 결핍이다.
하지만 희망을 아는 이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되는 충분한 명분인 것이다. (p28)
희망일지 절망일지는 나의 태도에 달린것이다.
미국 인디언들의 속담에 같은 말을 2만번 이상 반복해서 말하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이것은 자신이 삶을 대하는 태도를 말하고 있다. 내가 희망을 붙잡느냐, 절망을 붙잡느냐에 따라 나의 삶의 방향은 달라질 수가 있다.
어떤이는 '~때문에'라며 불평을 한다. 그러나 어떤이는 '~덕분에'라며 감사 한다.
내 얼굴이 못난 것이 다행이었다.
내가 못났기에 나는 열심히 기도했고 공부했다.
내가 부족했기에 언제나 그분께 지혜를 청했다.
그렇게 나의 약함은 이 나라에 도움이 되었다. (p150)
이스라엘 첫 여성 총리인 골다 메이어의 위의 고백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저자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희망만을 역설한다.
희망은 정말로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내가 희망을 품고, 희망을 그리고, 희망을 말하면, 희망은 이루어진다. (p138)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저자가 하는 말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좋습니다. 감당하기 벅찬 절망이 덮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때도 희망을 고집할 것입니까?"
나의 답변은 이랬다.
"나는 나에게 딱 3일만 절망할 시간을 줄 것입니다. 소리르 지르든지, 울든지, 술을 퍼마시든지, 신세타령을 하든지 하면서 실컷 절망하라고 말입니다. 그러고 희망을 추슬러서 다시 벌떡 일어날 것입니다." (p303)
우리의 인생에는 여러가지 고비가 온다. 아무리 둘러봐도 의지할곳 없을때도 많다.
그러나 희망을 갖자.일부러라도 억지로라도 희망을 갖자.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말로라도 희망한다고 외쳐보자.
그리고 희망의 순간을 머리속에 펼쳐보자.
그러면 희망은 어느새 내 눈앞에 우뚝 서 기다릴 것이다.
차동엽 신부의 이 책은 읽는 내내 희망이 가득찬 기분으로 읽었다.
그 강한 메세지 속에서 지쳐 있던 마음이 치유되기도 하였고, 내가 다른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무엇보다 어둔 앞길 앞에서 두려워하는 20대 청년들과 중년의 과도기를 겪고 있는 40대에게 이 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처음부터 끝까지 저자는 희망만을 말한다.
여러가지 사례와 이야기들, 수많은 인용구등을 통해 그가 말하고자 한 한가지...
희망이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스페로 스페라 Spero, spera)
얼마나 좋은 이야기들이 가득 했는지 내가 붙여놓은 포스트잇 장수만 보더라도 짐작 할수 있으리라.

<한우리 북카페 서평단>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