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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 장영희 에세이
장영희 지음, 정일 그림 / 샘터사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10월 초 이웃이신 햇살박이님의 포스팅을 보고
바로 도서관에서 빌린 책.
띄엄 띄엄 읽느라고
도서관 연체 독촉 문자까지 받으면서 이제야 다 읽었다.^^
이 책은 저자가 <샘터>에 연재 했던 글을 모아 펴낸 에세이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통 에세이들보다 한 꼭지가 정말 짧은 글들로 구성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난 정말 읽기 쉽더라는...^^
남들보다 조금 불편한 모습으로 살아오면서도,
전혀 남들과 다르지 않게,
아니 남들보다 더 열심히 살아온 그녀이기에
글 한줄한줄이 더 강하게 와닿는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렇게 열심히만 치열하게 살지만은 않았다.
삶을 즐길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런 그녀가 암이라는 새로운 장애물을 앞에 두고
또 어떻게 넘어가게되는지,
사실 그 과정이 이 책속에 나와있지는 않지만
그녀의 글속에서 그녀가 현명하고 지혜롭게 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기서 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녀는 참 행복했던 사람같다.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이해하고 이끌어주고
또 지적으로나 환경적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채워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많은 장애우들이 그들의 생각과 뜻을 많이 펼칠 수 없는것은
사회의 여러 조건들도 있지만
(사실 그녀에게도 사회의 조건은 똑같이 작용했을테니까)
부모의 사회적 문화적 수준도 많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가정의 경제력이 부족하다면 아무래도 장애우를 돌볼 시간이 없고
그만큼 외부세계의 자극에 있어서 뒤쳐질수 밖에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배움도 적어지고,
사회에 나갈 기회도 더 적어지고...
그녀의 문체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아주 잘쓴다고는 사실 말하지 못하겠다(그러는 너는?^^)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고, 설득력도 있지만
아주 마음에 쏘~~옥 와닿는 그런 문장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읽으면서 계속 미소지을수 있는
그런 책이었다.
마음에 와닿은 문장들...
15년이 흐른 지금 생각해도 여전히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힘든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 경험을 통해서 나는 절망과 희망은 늘 가까이에 있다는 것, 넘어져서 주저앉기 보다는 차라리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배웠다.
그런데 영희, '운명의 장난'은 항상 양면적이야, 늘 지그재그로 가는 것 같아.
나쁜쪽으로 간다 하면 금방 '아, 그것이 그렇게 나쁜건 아니었군'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일이 생기거든. 협소공포증이 생겨 엘리베이터 걸을 그만두고 나서 나는 정원 장식용품 점원으로 취직했고 거기서 죽은 우리 남편을 만났지. 재작년 그사람이 죽을 때까지 우린 53년을 같이 살았어.
남편을 만난 건 내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었어.
그렇습니다. 중요한것은 믿음입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삶을 마무리하고 떠날 때 그들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못 다한 사랑을 해주리라는 믿음, 진실하고 용기있는 삶을 살아주리라는 믿음,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 주리라는 믿음, 우리도 그 들의 뒤를 따를 때까지 이곳에서의 귀중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리라는 믿음 - 그리고 그 믿음에 걸맞게 살아가는 것은 아직 이곳에 남아있는 우리들의 몫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민숙아, 어디선가 읽은 이야기인데, 사람이면 누구나 다 메고 다니는 운명자루가 있고 그 속에는 저마다 각기 똑같은 수의 검은 돌과 흰 돌이 들어있다더구나.
검은 돌은 불운, 흰돌은 행운을 상징하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은 이돌들을 하나씩 꺼내는 과정이란다. 그래서 삶은 어떤 때는 예기치 못한 불운에 좌절하여 넘어지고, 또 어떤 때는 크든 작든 행운을 맞이하여 힘을 얻고 다시 일어서는 작은 드라마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아마 너는 네 운명자루에서 검은 돌을 몇개 먼저 꺼낸 모양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남보다 더 큰 네 몫의 행복이 분명히 너를 기다리고 있을것이다.
또하나, 꼭 네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로키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 수목 한계선 지대가 있다고한다. 이 지대의 나무들은 너무나 매서운 바람때문에 곧게 자라지 못하고 마치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한 채 서있단다. 눈보라가 얼마나 심한지 이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그야말로 무릎 꿇고 사는 삶을 배워야 했던 것이지.
그런데 민숙아,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올린은 바로 이 '무릎 꿇은 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내가 살아 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내가 남의 말만 듣고 월급 모아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한것은 몽땅 다 망했지만,
무심히 또는 의도적으로 한 작은 선행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에 고마움으로 남아있다.
어차피 65억 인구 중에 내가 태어났다 가는 것은 아주 보잘것 없는 작은 덤일 뿐이다. 그러나 이왕 덤인 김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덤이 아니라, 없어도 좋으나 있으니 더 좋은 덤이 되고 싶다.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때도 잇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김종삼 -어부-)
사람들이 '당신은 이제 영화 속의 슈퍼맨이 아니라 진짜 슈퍼맨이 되었다'라고 말할때마다 저는 무척 언짢습니다. 죽지 못해 사는게 슈퍼맨이라면 그래요, 전 슈퍼맨이지요. 그러나 환상속이 아니라 현실속의 슈퍼맨이 되는 것은 너무나 힘겹습니다.
왜 저의 상처에도 역할이 주어져야 하는 지요.
이 글을 어떻게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리브가 싫어해도 할 수 없다.
이 글을 마무리 할 수 있는 말은 단 한가지 - 과거에 그들이 환상속의 슈퍼맨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진짜 슈퍼맨이 되엇다. 우리 보통 사람들은 오래된 상처까지 이리저리 들추어내고, 그 상처가 없어질세라 꼭 끌어안고, 자신은 상처투성이라 아무것도 못한다며 눈물 흘리고 포기하는데 이들은 여전히 꿈과 희망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신마비 구족화가이자 시인인 이상열 씨가 쓴 '새해소망'이라는 시
"새해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게 하소서."
어떤 여자가 중병에 걸려 한동안 무의식 상태에 빠져 있었다. 이 세상과 저세상의 경계선을 방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몸이 위로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녀는 자신이 하느님 앞에 서 있다고 확신 했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어디선가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목소리만 들렸다.
"너는 누구냐?"
"저는 쿠퍼 부인입니다. 시장의 안사람이지요."
"네 남편이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제니와 피터의 어미입니다."
"네가 누구의 어미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선생입니다.초등학교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너의 직업이 무어냐고 묻지 않았다. 너는 누구냐?"
"저는 기독교인입니다. 너는 누구냐?"
"저는 매일 교회에다녔고 남편을 잘 내조 했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네가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았다. 네가 누구인지 물었다."
결국 여자는 시험에 실패한 모양이었다. 다시 이 세상으로 보내졌기 때문이다. 병이 나은 다음 그녀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나는 이제껏 나만 보고 살았는데, 열심히 나를 지키고,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나만을 보살피며 살앗는데,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토마스 머튼이라는 신학자는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의 참된 기쁨은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고 '자기'라는 감옥에서 빠져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창살 없는 그 감옥에 나를 가두고 온갖 타이틀만 더덕더덕 몸에 붙인채 아직도 내가 누군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