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쓰는 아버지의 전기

나의 아버지 박지원 (양장본) - 참 우리 고전 1
박종채 / 돌베개 / 1998년 9월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과정록>

자식이 아버지의 언행과 가르침을 기록한 글이라는 뜻.

-자서(自序)

소백온의 <문견록>이나 여씨의 <가숙기>등을 읽어보니 자잘한 일이라도 버리지 않고 모두 기록하였는데 고인의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존엄한 글보다 도리어 나았다. 이에 그것을 본떠 집필하여 조각글이나 짧은 메모라도 쓰는 대로 다 모았으니 마치 옛날사람이 감나무 앞에다 글을 써서 항아리에 차곡차곡 모으듯 하였다.

자식이 부모에 대해 전기를 쓸 수 있다는 것은 참 대단한 일 같다. 그만큼 자식이 부모를 존경한다는 뜻이니 부모로서의 삶은 참 살만했다고 할 수 있겠다.

흔히 전기 작가가 쓰는 스타일이 아닌 작은 일 하나라도 그냥 허투루 보내지 않고 써내려간 이 책은 오히려 박지원의 업적만을 써내려 간 것보다 더 인간적이어서 좋다. 물론 아들이 쓴 것이라 단점은 거의 없게 적혀있지만...

나도 우리 부모님에 대해 이렇게 써내려갈 수 있을까?

모아둔 기록이 없어서 기억만으로 쓰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이렇게 써놓는다면 나중에 나의 부모님을 추억할 때 참 좋을 것 같다.

우리 형님 얼굴은 누굴 닮았나?

아버지 생각나면 형님을 봤지.

이제 형님 생각나면 그 누굴 보나?

시냇물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네.

-형님이 죽었을 때 지은 시

시도 참 잘 짓는다.

짧은 글에 형님에 대한 그리움이 담뿍 묻어난다.

상인은 관에서 조종해서는 안 됩니다. 조종하면 물건 값이 고정되고 물건 값이 고정되면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며 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되면 가격을 조절하는 시장기능이 마비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농민과 수공업자가 모두 곤궁해지고 백성들은 살아갈 바탕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인들이 싼 곳의 물건을 사다가 비싼 곳에다 파는 행위는 실로 넘치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데다 보태주는 이치인 것입니다. 이는 비유컨대 흐르는 물밑의 가벼운 모래가 출렁거리는 물결에 고루 퍼져 솟은 곳도 패인 곳도 없게 됨이 절로 그렇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장사치는 4민(사농공상)가운데 비록 천한 직업이기는 하나 장사치가 없으면 온갖 물건이 유통될 수 없다. 이것이 상업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다. 또한 부가 백성들에게 축적된 뒤에라야 국가 재정이 풍족해진다.

연암의 시장경제에 대한 의견은 사실 나도 경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옳은지 그른지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상업을 천시하던 그 시대에 상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연암처럼 매서운 기상과 준엄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만일 우스갯소리를 해대며 적당히 얼버무리지 않았다면 아마 지금 세상에 위태로움을 면하기 어려웠을게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머와 해학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은 현대 사회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예로부터 이단이란 것이 처음부터 스스로 사학이라고 한 적이 있었습니까? 백성들은 누구나 인륜을 좇는 마음을 지니고 있어 선을 즐거워하고 어진이를 좋아하는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지만..............그러므로 일단 사학을 믿었다는 자백을 한 것으로 우격다짐을 받습니다. 그러면 간교한자는 그 진실 되지 못함을 도리어 비웃고,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마음이 더욱 미혹되어 중얼거리기를 ‘내가 즐거워하는 것은 선이고 공경하는 것은 하늘인데, 어찌하여 나의 선을 막고 나의 공경을 금하는 걸까?’ 라고 합니다. 근원을 제거하지 못하고 사교를 따르는 자들을 잡아다가 곧바로 몽둥이질을 하는 등 무도한 현벌을 가한 후 윽박질러 예수에게 맹세케 하거나 친주를 배척하게 하여................... 내 어리석은 백성 중에는 예수를 위해 죽음으로써 절의를 지키려는 자도 있는 가합니다. 그러나 이는 형벌을 남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관과 민이 서로 다투는 일이 되니 비록 일시적으로 승리를 얻어낸다 할지라도 잃는 바가 또한 많습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그 시절 박지원은 무조건 벌로 다스리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라고 역설한다. 실제로 그는 면천순수였을 때 천주교신자들을 불러 말로 몇날 며칠을 타이름으로서 옥사가 그의 관할에 옥사가 일어나지 않게끔한 일이 있다.

다스림은 구차하지 않으나 가끔 꾀병을 부린다.

(근무평가가 中이 나온 이유)

연암선생인 사람을 깨우치고 계발해주는 방법은 대개 우스갯소리에 있으니 풍류가 넘치고 재기가 번득여 사람을 놀라게 한다. 만약 선생의 속뜻을 모르고 그저 우스갯소리로만 듣는 사람은 앞뒤가 꽉 막힌 사람이라고 할 만하다.

-지산 유화의 말-

문장에 고문과 금문의 구별이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문장이 한유와 구양수의 글을 모방하고 반고와 사마천의 글을 본떴다고 해서 우쭐하고 으스대면서 지금 사람을 하찮게 볼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 만 있으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만약 남들이 자기 굴을 읽고자 할 경우 그 때마다 자기가 일일이 주석을 달아주어야 할 지경이라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겟는가?

사람들이 무조건 옛사람들의 글을 본뜨고 흉내 내어 어렵게 하면서도 스스로는 간명하고 예스럽다고 여기는 것을 보고 한말

고문을 배우려는 자는 자연스러움을 구해야 마땅하며 자기 자신의 언어로부터 문장의 입체적 구성이 생겨나도록 해야지 옛사람의 언어를 표절하여 주어진 틀에 메워 넣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남을 아프게 하지도 가렵게 하지도 못하고 구절마다 범범하고 데면데면하여 우유부단하기만 한다면 이런 글을 대체 얻다 쓰겠는가?

글 쓰는 법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대입에서는 논술이 세상살 때는 이모저모로 글 쓰는 일이 필요하다. 아픈데 보듬어 주고 가려운데 긁어주는 그런 글이야 말로 좋은 글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박지원은 고문만 답습하던 동시대 학자들과는 달랐던 것 같다.

좋은 법이라 하더라도 폐단이 없을 수 없지만 그 좋은 취지를 살려 폐단을 바로 잡는다면 오래 갈 수 있다. 나쁜 법이라 해서 이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지 않은 취지로 이익을 구한다면 하루라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학문이란 별다른 게 아니다. 한 가지 일을 하더라도 분명하게 하고 집을 한 채 짓더라도 제대로 지으며 그릇을 하나 만들더라도 규모 있게 만들고 물건을 하나 감식하더라도 식견을 갖추는 것. 이것이 모두 학문의 일단이다.

선이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자기 몸에 갖추고 있는 이치거늘 신명이 굽어본다 할지라도 사람들이 행하는 선에 따라 일일이 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므로 딱히 훌륭하다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악은 단 한 가지라도 행하면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 이는 어째서 일까? 마땅히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므로 미워하고 노여워 할 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선을 행하여 복을 받겠다는 생각은 하지 말고 오직 악을 제거하여 죄를 면할 방도를 생각함이 옳다.

박지원은 성선설을 따랐던 것일까?

선을 행하는 것은 당연한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너무 당연하기에 선을 행한다고 복 받을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악을 행해서 벌 받게 되는 것을 피하라고 한다.

사실 선을 당연하다고 생각해야 올바른 사회가 아닐까 싶다. 선을 행하는 사람을 너무나도 특이한 경우로 받아들이다 보니 오히려 선을 행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하는 일로 여겨지게 될 때도 있다.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나 해야 되는 일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사람은 글 짓는데 있어 그 재주가 제각각이다. 시문을 잘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저술을 잘 하는 사람도 있다........................무릇 저술하는 사람에게는 네 가지 어려움이 잇다. 첫째 근본이 되는 학문을 갖추기가 어렵고 둘째 공정하고 밝은 안목을 갖추는 게 어려우며 셋째 자료를 총괄하는 역량을 갖추기가 어렵고 넷째 분명하고 명쾌한 판단력을 갖추는 게 어렵다. 그래서 재주, 학문, 식견, 이 셋 가운데 하나라도 결여되면 제대로 된 저술을 할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고전읽기 열하일기에서 시작된 나의 박지원에 대한 책읽기는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것 같다.

아직도 읽어야 할 것이 많지만 아들인 박홍채가 쓴 이 <과정록>은 그 어떤 책보다 박지원에 대해 잘 알 수 있었다.

앞으로도 박지원에 대한 책읽기는 계속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