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도둑의 일기
익명인 지음, 박소현 옮김 / 민음사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산소 도둑의 일기 (민음사, 2019년)

원 제 Diary of an Oxygen Thief (2006년)


@ 이 책은


'뉴욕타임스, 아마존 베스트셀러' ,'SNS를 강타한 문제작'이라는 선전 문구와 깔끔하게 제작된 표지가 마음에 들어 출간 당시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소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80쪽에 불가한 책 (20cm X 12cm)에 책정된 12800원이라는 가격에 구입을 망설이게 하더군요. 결국 2020년이 돼서야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었습니다.

2006년도에 네덜란드에서 자비 출판된 이 책은 2016년도에는 미국에 상륙해서 독립 서적 물로는 드문 중량감 있는 인기를 끌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갑작스러운 이야기지만, '미투 운동'은 2006년도에 처음 시작되었으며, 2017년 저명한 할리우드 제작사 '하비 와인스틴'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불꽃같이 확산된 사회 운동입니다. 이 소설과 미투 운동은 등장과 확산에서 묘하게도 유사한 시점을 가집니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내용도 미투 운동과 흐름을 같이 합니다. 여자들에게 '상처 주기'를 즐겨 했던 이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상처받는 내용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니까요.

@ 부족한 가독성, 출중한 메시지


이 소설의 초반 가독성은 원활한 독서를 방해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화자의 과대망상이 흐름에 뒤섞인다거나, 명확하지 않은 중의적 표현의 사용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뒤죽박죽 진행됩니다. 결국 결말부에 화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추측만 가능할 정도로 불친절절한 흐름으로 마무리됩니다.

반면 이 소설의 '메시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자가 이 책에 더 많은 질문을 던질수록 가치 또한 확장될 수 있겠더군요. 아래의 문장은 이 책의 장점과 잘 이어지는 문장입니다.


'남녀 관계'를 빗대어 '남녀 차별'의 정곡을 찌르는 문장들은, 이 소설의 의도가 단순히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 이상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물론 이렇게 남녀관계에 대한 송곳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작가지만, 이 책의 판매를 위해 성적인 기호를 연상시키는 표지 사진에 공들이거나, 데이트 사이트에 매력적인 여성의 프로필 사진을 걸고 '나를 만나기 전 이 책을 읽으세요'라며 자신의 책을 광고했다고 하더군요)


@ 호불호가 갈리는 소설


저는 '불호'인 독자였습니다. 이 소설의 주요한 메시지에 공감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결론에 이르기 위해 이어지는 '지나치게 남성적이거나', '지나치게 여성적인' 폭력적인 해결 방식이 혐오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미국 아마존에 별 하나 짜리 평점에 달려있던 '자기학대를 위한 이들의 소설. 끝까지 읽지 못했다.' 같은 한 줄 평 이 가슴에 와닿았던 이유입니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 '불호'인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이 소설이 이런 뉘앙스의 책이라고 예상치 못하고 접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성 혐오자의 추악한 민낯을 낱낱이 고발한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의 마케팅이 잘 못 됐다고 생각하는데, 이렇듯 모호하고 둥그런 표현보다는, '전격 여성 혐오자 린치 소설!' 같이 그들만의 세상을 위한 소설이라는 느낌을 주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L 소설이라는 마니악한 장르가 있는 것을 아는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BL 이란 'Boys Love'의 줄임말로 남성 간의 사랑을 로맨틱하게 풀어내는 장르입니다. 저는 BL 소설은 읽고 싶지 않습니다. 그건 제 취향이 아니니까요. 이 책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BL 소설에도 마니아들이 있는 것처럼, 이 책도 솔직한 광고를 통해 이슈화가 되었으면 꼭 맞는 타깃층의 독자에게 만족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남자와 여자간의 전쟁이 일어났다고 가정했을 때, 중립에 있는 편의 시민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는 책이 아니고, 우리편끼리 돌려 읽으면서 소속감을 높이는 교본 같은 책입니다.

# 아마존에서 7.99 달러 (paperback) 9.99 달러 (Kindle)에 판매되고 있는 책이 국내에서는 12800원 (hardcover) 8900원(E-book)으로 고가에 팔리는 현실은 국내에서 급진적인 반남성주의 , 급진적인 페미니즘, 급진적인 여성우월주의 같은 사상이 어떻게 소비되는가에 대한 단면 같아서 씁쓸하더군요.


"돈은 그녀가 감정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유일한 주제였다. 그 주제를 언급할 때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두 눈이 번쩍 커지는 것이다. 그게 뭐가 어때? 그걸로 그녀를 탓할 수는 없지. 여자들이 돈을 그토록 사랑하는 이유는, 그녀들이 돈에 이르는 과정을 바로 우리 남자들이 어렵게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자기중심적 자아를 한참이나 부드럽게 매만지며 안마를 해줘야 비로소 돈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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