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투자 원칙 - 한 권으로 끝내는 버크셔 해서웨이 투자사의 결정판
애덤 J. 미드 지음, 이혜경.방영호 옮김 / 서울문화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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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 투자 원칙

버크셔 해서웨이는 어떻게 위대한 기업으로 탄생 할 수 있었을까? 저자는 오랜 기간 버크셔의 모든 연례 보고서,주주서한, 책,온갖 인터뷰, 연례 주주총회를 시간 순서대로 추적하면서 버크셔 해서웨이 발전 과정을 상세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총 1220 페이지 분량에 두꺼운 책이라서 2주일 동안 읽게 된 책이다.

버크셔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버핏은 단순히 투자만 잘 하는 투자자가 아니라 기업인수와 경영자로서 능력이 출중함을 알게 되었다. 찰리 멍거는 “뛰어난 투자자가 되는 방법을 알면 당신은 뛰어난 경영자가 될 수 있다.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기업 인수 과정을 보면서 인수된 기업들의 훌륭한 경영자를 발견하는 버핏의 능력에 감탄하게 되며 인수 된 기업들은 최고의 기량을 발휘 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면서 버크셔 자회사들은 하나의 독립된 경영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 경영자들은 버크셔 전체에 고려하는 게 아닌,각자가 담당한 특정 기업에 기여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았다.

영구적으로 조달하는 저비용 자본 활용, 신중한 리스크 관리 기법과 버크셔의 독특한 조직문화는 결국 버크셔의 성공은 사업에 모든 측면에서 극대화한 것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제1장 방직 기업

방직산업의 성장. 왜 북부인가?

방직 산업이 왜 북부에서 발전했는냐는 것이다.남부에서는 당장 방직업에 나서는 것이 경제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부에서는 적어도 초기에 뚜렷한 이점이 있었다. 북부가 누린 두 가지 초기 이점은 자본과 저렴한 전력 공급원이었다. 방직 산업이 북동부 지역에서 처음 자리 잡은 결정적인 요인은 자본을 조달하기 수월했을 거라는 점이다. 북부의 또 다른 초기 이점은 지리적인 것이었다. 뉴잉글랜드에는 물살이 세차 강물이 바다로 내려올 때 엄청난 규모의 수력을 분출하는 강이 많았다.

경제 지형이 달라지면서 초기 우위는 북부의 산업 쇠퇴를 가속화하는 족쇄로 변했다. 가장 중요한 요인은 느린데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술 노후화였다. 수력발전에서 벗어난 것 또한 북부에 피해를 입혔다. 이와 대조적으로 남부는 석탄에 대한 접근성에 힘입어 이내 공장에 증기기관을 결합했다. 남부가 북부보다 유리한 또 다른 결정적 요인은 북부에 비해 저렴한 인건비와 낮은 세금이었다.

”만일 당신이 탄 배가 고질적으로 물이 새고 있음을 알았다면, 물 새는 것을 막는 데 힘쓰기보다는 배를 갈아타는 데 전념하는게 더 생산적일 것입니다.”

제2장 1955∼1964년

1950년대와 1960대 해외 직불 제조업체의 주요 강점은 저렴한 인건비였다. 전 세계 전문가들의 노하우와 더불어 글로벌 상거래 물류의 발전으로 믺이 직물을 수입하는 것이 경제성 측면에서 더 유리해졌다.

제3장 1965∼1974년

버핏은 1962년에 자신이 운영하던 버핏 투자 조함으로 버크셔 해서웨이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딱 12.5센트였다. 버크셔 주식을 주당 11.5달러에 매각하는 거래에 나섰다. 공식적으로 제사받은 가격은 주당 11.375달러로, 12.5센트가 낮았다. 무시당했다는 느낌에 버핏은 버크셔에 대한 경영권 확보 작업에 들어갔다.

1969년 버핏이 버핏 파트너십 리미티드를 청산하면서 버크셔는 버핏의 주요 투자 수단이 되었다. 버크셔의 주주들은 차례로 보험사, 은행 신문사, 그리고 블루칩 스탬프를 통해 우료 거래 사업, 또 다른 은행, 사탕회사를 소유했다.

제4장 1975∼1984년

첫 번째 재분배는 시즈 캔디 숍 인수였다. 시즈는 버핏이 기업 가치보다 높은 밸류에이션 배수를 적용한 첫 번째 사례로, 버핏은 찰리 멍거의 통찰력 덕분에 이루어진 결정이라고 이야기 한다. 세 번째 주요 인수는 버펄로 이브닝 뉴스였다. 멍거와 버핏은 제품 자체가 아니라, 자기들이 그 회사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그 회사가 경제성이 좋은 사업을 하는지를 중요하게 여겼다. 사탕인지 철강인지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제5장 1985∼1994년

1985년 버크셔는 방직 사업부를 폐쇄해 과거에서 해방되었다.

포트폴리오 내에서 단연 비중이 가장 높았던 가이코는 보험사에 대한 버핏의 신뢰도를 반영했다. 가이코는 매입 가격이 4,600만 달러였는데 1985년 말 시장가치 기준으로 전체 포트폴리오의 50%나 차지했다. 가이코에는 버핏이 칭찬할 만한 또 다른 자산으로 투자 책임자인 루 심프슨이 있었다. 보험은 이러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버크셔는 보험을 통해 보험 인수와 책임준비금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가치의 원천 두 가지를 보유했다.

제6장 1995∼2004년

이 연도의 가장 큰 인수는 가이코의 나머지 지분 50%로, 법률적으로는 1996년 1월 2일에 마무리 되었다.

버크셔의 자본 배분 전략은 미드아메리칸의 대다수 경제성 있는 지분을 인수하면서 미묘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벼크셔는 100% 보유기업이나 보통주 지분을 보유한 기업에는 자본을 배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자본 집약적이긴 하지만 대단히 안정적으로 일부 현금을 투입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아냈다. 1994년 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코카콜라, 질레트,웰스 파고에 대한 버크셔의 투자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57%를 차지했다.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도 동일한 4개 종목이 포트폴리오의 65%로 나타났다.

제7장 2005∼2014년

2010년 2월 12일 버크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가 이루어졌다. 거대 복합 기업 버크셔는 전체 철조망도 집어 삼켰는데 이는 의심할 여지없이 미국이 여전히 기회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BNSF는 안정된 매출액과 이익을 창출하는 유틸리티 기업처럼 기능했기 때문에, 약간의 부채는 적정 수준에 있으면서 자기자본이익률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버크셔가 경기 침체기에 이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이었다.

제8장 최초 50년 구간 : 1965∼2014년

제9장 2015∼2019년

버핏은 기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그런 기업을 경계한 사실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왜 IBM 지분을 정리하고 애플에 투자를 확대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애플은 거대한 해자를 갖춰지만 IBM은 그러지 못했다. 애플의 해자는 넓고 깊었다. 테크놀러지 기업이 아니라 소비재 기업으로 가치를 더 인정받았다. 상당한 전환 비용과 결합된 소비자 습관에 의해 애플의 해자가 구축되고 유지되었다.

제10장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대기업

자본배분- 성공한 기업은 무슨 종류든 간에 시간이 지나서 보면 합리적인 자본 배분의 결과다.

회계성 보다 경제성-버핏은 버크셔 주주들과 초기에 소통했을 때 회계보다는 경제성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리스크관리-버크셔는 기민한 리스크 관리로 이득을 보았다. 보험 책임준비금을 이용한 투자 자금 조달로, 리스크를 덜 감수하면서 더 높은 자기자본이익률을 창출할 수 있었다.

지배구조-버크셔의 또 다른 요소는 지배 구조 형태였다. 버크셔는 자율적으로 경영될 수 있는 기업의 인수를 우선시해 기존 경영자를 유임하여 위임하는 것이 방침이었다. 자기들이 받을 돈보다는 회사에 대해 더 신경쓰는 경영자를 알아보는 버핏의 능력은 종종 간과된다.

제11장 버핏 이후의 버크셔

버핏이 2007년에 작성한 주주 서한을 보면 광범위하게 분류한 세 유형의 기업에 대한 교훈을 배울 수 있다. 버핏과 멍거는 자신들이 그 사업을 이해한 기업, 유능하고 신뢰할 만한 경영진이 있고 인수 가격이 합리적인 기업을 찾았다.

위대한 기업- 탁월한 투하자본이익률을 지켜 내는 지속 가능한 경제적 해자를 보유한다.

좋은 기업- 주주에게 훌륭한 이득을 제공하지만, 성장을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이익을 상당히 많이 재투자해야 한다.

끔찍한 기업- 기업 중 최악의 부류는 고속으로 성장하면서, 성장을 이끌어 내려면 상당한 자본이 필요하고, 그런데 이익은 거의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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