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 욕쟁이 꽃할배의 더 까칠해진 시골마을 여행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 2
빌 브라이슨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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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다. 우리나라만 특유의 색깔을 잃어가고, 우리나라만 멍청한 짓을 일삼는가 싶어 좌절스러웠는데,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2>를 읽고 나니 영국도 어느 정도 멍청한 짓을 하긴 하는 구나 싶어 안심이 됐다. 우리나라에만 멍청이들이 있는 게 아니었어, 오예! 물론 인류 전체로 봤을 때는 여기나 저기나 죄다 멍청이들뿐이라 안타깝다. 하지만 이쪽에만 멍청이들이 있는 것보다는 지구 반대편에도 비슷한 수의 멍청이들이 있어야 균형이 맞을 것이 아닌가! 세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도 다행인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거나 세상에 수많은 멍청이들이 있다는 사실은 같은 행성에 사는 사람으로서 슬픈 일이다. 세상에 멍청이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탄식하는 빌 브라이슨의 심정을 알 법하다.


지난 봄에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으며 빌 브라이슨 아저씨가 너무 너그러워졌다 싶어 슬펐다. 불평하는 모습을 도통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불평 속에는 다른 여행기들이 눈감고 못본 척하는(혹은 진짜 보지 못하는) 진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역사와 인물이,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다른 여행기에서는 만나기 힘든 것들이다. 그러나 그의 다른 여행기(호주 여행기라든가)를 봤을 때, 그는 미국이나 영국처럼 몇십 년 동안 익숙한 나라를 방문했을 때라야 좀 더 심도 있게 비판하고 불평을 터뜨릴 수 있는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는 그 역시 평범한 여행객들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것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았다. 불평도 뭔가를 제대로 알아야 터뜨리게 되는 법이다. 남의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아는 것이라곤 뉴스 기사나 해외토픽에 잠깐 올라 스치듯 보는 것들 뿐이고, 여행을 가기 전 수박 겉 핥기로 알아보는 짧은 역사뿐이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2>는 그가 나고 자란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잘 아는 나라인 영국이 대상이므로 그의 시니컬한 불평이 가득(!)하다. 그의 불평이 즐겁다!


우선 그린벨트에 대해 흔히들 생각하는 가장 크고 위험한 오해는 '그린벨트가 전혀 특별한 곳이 아니며 대부분 관목만 무성한 쓸모없는 땅'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여러분의 몫이다. '영국의 농촌살리기 운동'의 연구에 의하면 영국에 있는 그린벨트에는 3만 킬로미터에 달하는 오솔길과 2,200제곱킬로미터의 숲, 2,500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최고 품질의 농지, 890제곱킬로미터의 국립 자연보호지 특별과학 대상지가 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충분히 보존할 가치가 있다. 그린벨트 부지 중 그 어느 곳이라도 쓸모없는 땅이라면 그것은 그 위에 무엇을 짓지 않아서가 아니라, 땅 주인이 땅을 개발했거나 누군가 개발할 사람에게 팔았기 때문이다. 땅 주인에게 형편없이 관리한 땅을 현금화하도록 허락하는 것은 그 땅을 훨씬 더 형편없는 곳으로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이다. (...) 하지만 그린벨트는 아무것도 없는 땅이 아니다. 그린벨트는 야생 동식물의 보금자리이자, 어마어마한 산소를 내뿜고, 탄소와 오염된 공기를 빨아들이고, 식량을 길러내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과 산책로를 내주고, 우아하고 평온한 풍경을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p. 163)


그래, 멍청이들이 많은 세상이다. 이 멍청이들은 멀쩡히 살아 숨쉬는 땅을 무조건 개발해야 한다고 우겨댄다. 그러면서 휴가를 보내거나 놀러 가고 싶을 때는 꼭 자연을 찾아가고 싶어한다. 아니면 자기네 집 거실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이 내려다보이길 원한다. 그토록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쳐대는 개발의 끝에 이르면 도대체 어느 곳에 우리가 급하게 숨을 멈추게 될 자연이 남아있게 될 거란 말인가. 자연을 즐기기 위해 캠핑을 떠나서는 최신식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길 원하는 어리석음과 다를 바가 없다. 자연을 사랑한다는 것은 인간이 자연을 혐오스럽게 망치길 원하지 않는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앞날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빌 브라이슨은 영국 시골의 평온하고 사랑스러운 풍경이 문명의 것들로 불리우는 콘크리트 덩어리로 잠식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 자연 속에서 걷기를 즐기는 그로서는 이 파괴적인 그림과 현상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주장에 가슴 깊이 공감하며, 그가 느끼는 슬픔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의 책은 그저 한낱 여행기라고 보기에는 여행지에서 보이는 현상들에 대해 깊이 고찰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여행기와는 격을 달리한다.



​그곳에서 물 한 병을 사면서 가게 주인에게 테스코가 새로 들어오고 나서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지 물어봤다. 그러자 주인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힘들어지고 있지요. 장사도 더럽게 안 되고요. 아마 몇 달 뒤에 다시 오시면 내 장담하는데 문 닫은 가게들이 수두룩할 것이오."

"거참, 씁쓸하네요."

"더럽게도 슬픈 일이지요."

"하지만 사장님, 이 가게 분위기도 너무 우울해요. 제가 이 가게에 들어왔을 때 인사도 안하셨죠? 사장님은 어떤 모습인 줄 아세요? 청승맞고 쓸모없는 퇴물 같은 분위기만 풍긴다고요."

"맞는 말이외다. 더 노력해야죠. 그래야겠죠?"

"훨씬 더 많이 노력하셔야 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장님은 그렇게 안 하실 거잖아요. 사장님은 마치 이 가게가 망하는 것이 사장님을 제외한 다른 모든 사람의 잘못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냥 앉아서 투덜거리기만 할 거잖아요."

"참 잘 아시네요. 고맙소. 나를 더 나은 가게 주인으로 만들어주셔서. 아니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셨구려. 언젠가 다시 우리 가게에 와주셨으면 합니다."

실제로 이런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다. 가게 주인은 고맙다는 말도 한 마디 없이 무뚝뚝하게 거스름돈을 거슬러줬고 내가 그 가게를 다시 찾을만한 최소한의 명분도 주지 않았다. 정말 우울하기 짝이 없는 멍청이였다. (p. 263)

​대기업들의 지역 상권 잠식은 영국에서도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물론 이에 대한 지역 상인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고, 결국엔 대기업들이 승리를 거머쥔다는 사실 또한 같았다. 마음 아픈 일이고, 양심 없는 대기업들의 행태에 분노도 느끼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빌 브라이슨이 비꼬듯 가게 운영에 대해 아무 생각도 의지도 없는 주인들이 많다는 것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어떤 가게를 들어가든 꼭 인사를 하고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나온다. 가게 주인들이 나를 반기든 반기지 않든 몸에 밴 습관이라 어쩔 수 없다. 그런데 활기차고 반갑게 나를 맞이하는 가게는 나올 때 던지는 인사가 절로 밝아지고, 그 가게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남게 되어 가까운 곳이라면 다시 찾아가거나 먼 곳이라면 어쩌다 그곳에 대해 글 한 줄 남기게 됐을 때 좋은 평가를 주게 된다. 반면 들어갈 때 인사는커녕 나갈 때 인사도 없는 곳, 가게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미심쩍을 정도로 우중충하고 꾀죄죄하거나 기운 없이 늘어진 주인을 마주하면 자연히 나쁜 인상을 갖게 된다. 불량품을 샀을 경우 좋은 인상의 가게에서는 어쩐지 교환이나 환불에 약간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지만, 나쁜 인상의 가게에서는 '나쁜 가게가 물건도 이따위'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 상권이 갖는 경쟁력은 그저 먼저 자리를 찜해서 누리는 텃세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가게를 아끼고, 가게를 찾는 고객들을 아끼는 마음이 경쟁력이 된다. 일반 여행객이었다면 무심히 넘겼을 일화도 보다 넓은 범위로 확장해서 바라보고, 연극처럼 오가는 대화로 재밌게 구성해낸 빌 브라이슨 아저씨의 재치가 감탄스럽다.

 

 

 

 

 

​그리고 1957년 영국은 원자력 분야에서 세계 최고가 됐다. 하지만 이후 영국은 추락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에 셀라필드(당시에는 윈드스케일이었던 지역)에서 방사능이 유출됐다. 1957년 10월, 평소와 다름없이 유지되던 원자력 발전소에서 원자로 한 대가 과열되면서 불이 붙었지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셀라필드에 있던 원자로 심들은 공기로 냉각시키는 공랭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원래대로라면 이 방식은 절대 원자로가 과열될 일이 없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하게 원자로가 과열되는 사고가 일어났고 사전에 이러한 우발적 사고에 대한 대처 방안은 미처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었다. 원자로를 공기로 냉각시킬 경우 팬에 불이 붙을 수 있다. 유일하게 가능한 대안은 원자로 중심부에 물을 붓는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뜨거운 원자로 중심부에 물을 부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물을 부었을 때 거대한 폭발, 즉 사실상 핵폭발이 일어나서 방사성 물질이 성층권까지 올라가게 되면 유럽 전역과 북대서양 지역에 대혼란이 야기될지도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었다. (...) 하지만 막상 물을 부은 결과 효과가 있었고 우려했던 대재앙은 일어나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주변 목장에 있던 우유를 폐기하고 양들을 폐사시켜야 했지만 그래도 불행 중 큰 다행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원자력 홍보에는 대재앙이었다. 원자력 에너지가 절대 신뢰할 만한 것이 못 되며 영국에서 환영받지 못할 에너지라는 인식이 확산됐고 프랑스에도 그러한 인식이 퍼졌다. (p. 421)

원자력 관련 사고에 대해 아는 것이 몇 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큰 사고이므로 셀라필드 원자력 사고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부분을 읽고 나니 지구상에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자잘한(?) 원자력 방사성 물질 누출 사고가 꽤 많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뭔가를 은폐하기 좋아하는 나라에서라면 특히 더더욱 의심이 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올바르지 못한 의식주가 병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많이들 지목되고는 있으나, 알고 보면 그 바탕에 이렇게 알지 못하는 사이 누출되어 공중을 떠도는, 혹은 땅에 누적되었거나 바닷물을 오염시킨 방사성 물질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특히 암이나 백혈병처럼 과거보다 꽤나 흔히 그 환자들을 마주치게 된 것을 보면 더더욱 의심스럽다. 빌 브라이슨은 영국과 프랑스가 원자력에 대해 경계심을 갖게 된 것을 이 셀라필드 원자력 누출사건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과 프랑스가 필요한 만큼의 경계를 하고 제대로 운영을 하는지는 알 수 없다. 실례로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연한을 기존 40년에서 50년으로 늘렸다.)


아마도 우리나라가 원자력에 대해 맹목적으로 신뢰하고 있는 것은 직접 그 피해를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그러나 바로 옆나라 일본이 2011년의 동일본대지진으로 그 난리를 겪고도 원자력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냥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과거의 잘못에서 뭔가를 깨달아 발전하는 특성 자체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든다. 빌 브라이슨은 '원자력 에너지를 단 1퍼센트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나는 원자력 에너지 자체를 신뢰하고 말고 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그것을 운영하는 인간의 능력이 불완전하며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자연재해에 대해 원자력 시설의 안전 역시 불완전하고, 거기서 나오는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능력이 인류에게 없음을 생각해보면 아직 인간이 원자력 에너지를 다룰 만한 기술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므로 무턱대고 원자력을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착각하는 것은 오류이다. 최근 울산 쪽에 약한 지진이 일어났는데, 만일 큰 지진이라도 일어나게 되면 열에 아홉은 분명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기리라고 본다. 진도 7.0도 버틸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데, 툭하면 비리가 드러난 뉴스가 터지는 데다 부실공사를 빼놓을 수 없는 게 우리나라니 일이 터지면 글쎄다. 그렇게 되면 그쪽은 영구 폐쇄 지역이 될 것이고, 서울 사람들에게서도 세슘이니 뭐니 높은 수치로 검출될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단점이 없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무조건 조심하고 보는 게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는 조상의 지혜를 잇는 길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파보로소는 남쪽 해안 전체에서뿐 아니라 이스트서식스를 통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이 여행길에 오르기 이틀 전, 나는 '파보로소 카페' 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구글에 검색을 해봤다. 그러자 어김없이 여행 정보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같이 검색됐는데 트립어드바이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파보로소 카페에 대해 좋지 않은 평을 남긴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느 여행객은 최근 파보로소에 다녀온 소감을 '완죤 실망'이라고 썼다. 이 시점에서 한마디 하겠다. 맞춤법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멍청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공공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말길 바란다. (...) 트립어드바이저의 댓글 식으로 말하자면 '심이 걱정슬업다.' (p. 57)


<빌 브라이슨 발칙한 영국산책2>은 읽다보면 그야말로 웃음이 빵빵 터진다. 나 역시 쉬운 맞춤법도 제대로 못 맞추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게 되는 사람인지라 이에 대해 빌 브라이슨이 한소리 해 놓은 것을 보니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 아저씨 내 취향이라니까! 

요새는 맞춤법 틀리는 것이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곤 한다. 사람들이 워낙 책을 안 읽어서 맞춤법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는 건가? 그런데 가끔은 책 좀 읽는다 싶은 사람들의 글에서도 엉망인 맞춤법을 보게 된다. 요즘 책들이 교정에 인색해서 그런 건가, 사람들이 맞춤법을 지키는 데 대해서 무감각해서 그런가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의도적으로 맞춤법을 틀리게 적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건 문화적 현상이라 어쩔 수 없다고 친다. 그러나 그게 아닌 경우에는 아무래도 맞춤법이 정확한 사람에게 더 호감이 간다. 그리고 더불어서 이렇게 대놓고 지적질하는 빌 브라이슨은 사랑스럽다. (그런데 이렇게 맞춤법에 엄격한 빌 브라이슨의 이 책이 수많은 오타로 가득한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가 알면 버럭할 듯.)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는 정말 작은 사진 한 장 첨부되어 있지 않다.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다. 그러나 겉핥기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그가 그랬듯이 역사와 인물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떠나는 깊이 있는 여행이다. 그가 과거의 유산을 유심히 보듯이 관찰하면 나 또한 그 유산이 거쳐온 세월과 사람들을 느낄 수 있게 되고, 공감할 수 있게 될 것만 같다. 그의 책은 여행기로서도 합격점이지만 시간이 남을 때 낄낄대며 읽기에도 충분히 유쾌하다. <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 산책>을 보고 빌 브라이슨에게 뿅 가서 그의 책을 모으기 시작했는데,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은 제목처럼 재미있었으나 <나를 부르는 숲>이나 <빌 브라이슨의 대단한 호주 여행기>를 읽고는 시들해졌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빌 브라이슨이다. 이 책으로 다시, 읽지 않은 그의 책에 대한 관심도가 급 높아진다. 추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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