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는 여자의 공간 - 여성 작가 35인, 그녀들을 글쓰기로 몰아붙인 창작의 무대들
타니아 슐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봄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려 서른다섯 명의 여류 작가들이 소개되는 책인데, 내가 이름이라도 '확실히' 들어본 작가까지 절반이 안 된다. (개중에는 들어봤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이름들이 몇 있다. 하지만 그런 인물들은 제외하고.) 작품을 읽어본 작가만 추리면 고작 일곱 명.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친 독서를 하는지, 그러면서도 얼마나 지식이 짧은지 금세 훅 드러난다. 책에서 새로운 작가를 만나게 됐다는 반가움도 있었지만, 좀 더 내밀한 안쪽까지 알고 싶었던 친근한 작가들의 경우에는 몇 되지 않아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인물들의 경우에는 낯선 작가들보다도 각 인물마다 할당된 대여섯 장 정도의 내용이 더욱 짧게만 느껴졌다.


어떤 작가는 글을 쓴 공간이 사진으로 제시되기도 하고 어떤 작가의 경우는 사진 없이 글로 표현되기도 한다. 사생활을 중시하는 작가들은 사적인 공간을 세간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품이 탄생하는 공간의 사진이 없기도 한다. 그리고 글을 쓰거나 타이핑하는 사진이 있어도 그게 실제로 작품을 쓰는 모습인지 아니면 사진가의 요청에 따라 의도된 사진인지도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다.

작가들의 사진을 보며 나는 어쩐지 자꾸만 미소를 짓게 됐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자기 집 책상 앞인데도 당장에라도 외출할 수 있을 듯한 옷차림과 매무새를 하고 있는 모습들이 작가들도 여자는 여자구나 싶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게을러터진) 나 역시 집에 있을 때는 꾸미고 있어야 하나 싶기까지 했다. 그리고 많은 작가들이 담배를 피우는 사진이 실려 있어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녀들이 작가들이라 자유로운 존재들이어서 담배를 피운 건지, 아니면 그들이 살던 지역이 자유로운 곳이어서 담배를 피운 건지, 20세기의 인물들이라 대유행이던 히피적인 양식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남성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던 다른 책에서보다도 더 많은 담배를 본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쩌면 담배는 기존 여성이 지닌 순종적인 이미지에 대해 지적인 여성이 나는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며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반항적인 매개체일지도 모르겠다.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도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행히도 이 책에 실린 작가들 대부분은 크고 작은 글을 쓸 공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계관시인이었던 테드 휴즈보다 더 유명해진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에는 어떨는지 잘 알 수 없는데, 그런 사진이나 기록이 없고 시로 나날이 유명해지던 남편과 달리 자식들 뒤치다꺼리에 집안일에 치여 자신의 창작욕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을 거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만일 그녀가 남자로 태어났거나 또는 남자처럼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것도 아니면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차라리 여자에게 주어진 모든 집안일에서 눈을 돌릴 수 있는 배짱이 있었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고 멋진 작품을 발표했을 수도 있었을 거란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테드 휴즈와 실비아 플라스에 관한 재미있는 기사)


인물들의 내용 및 사진이 적은 듯해서 아쉽긴 하지만 작가들의 공간을 훔쳐보길 좋아하는 나로선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고 볼 수 있어 괜찮았다. 뒷표지며 서문에서 조앤 K. 롤링에 대한 언급이 있어서 기대했으나 언급뿐이어서 무척 아쉬웠다. 해리 포터로 성공한 지금은 어떤 공간에서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했는데. 쩝. 어쨌거나 요즘들어 공간의 필요성을 느끼는 내게 탐나는 서재가 참 많았다. 그러나 서툰 목수가 연장 탓을 한다고 재능이 있다면 어디선들 글을 쓰지 못하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