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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해리 포터를 쓸 수 있다 - 판타지와 SF 창작을 위한 모든 것
올슨 스콧 카드 지음, 송경아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봐서는 판타지 소설 집필을 위한 가이드처럼 보이지만, 실은 SF 소설 집필을 위한 책이다. 원제는 <How to write Science Fiction & Fantasy>로서 판타지는 SF집필에 살짝 곁들인 정도인데, 우리나라에선 판타지 쪽이 인기를 얻는 터라 '해리 포터'의 이름을 갖다붙인 모양이다. 사실 제목만 봐서는 그리 선택하고 싶지 않은 책인데, '해리 포터'의 인기도에 편승한 삼류 작법 책 같기도 하고 독자에게도 아류작이나 써내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나는 '해리 포터'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_-;;) 최근엔 판타지나 SF 할 것 없이 독자들의 장르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취향이 다양해져 SF 마니아들도 적지 않으니 다음 개정판 제목은 SF 소설가 지망생을 위한 제목으로 개정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야 이 책이 주로 담고 있는 SF소설 집필에 대한 가르침이 제대로 전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대부분의 작법책을 재미있게 읽는 나이긴 하지만 이 책은 특히 더 재미있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딴짓하지 않고 쭉 읽어나갔다. 단순히 소설 쓰기에 대한 일반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콕 찍어 SF(판타지)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에 소설의 설정에 대해 다분히 과학적(으로 보일 법한)인 조언이 매력적이다. 그리고 SF소설 속에서 인간이 처하게 될 상황에 대한 가르침이 꽤나 상세하고 친절하며 매우 유쾌하다. 이를테면, 77페이지에서 저자는 우주가 광속의 법칙을 따르고 있으며, 그 어느 것도 빛보다 빠를 수는 없으므로 다른 성계로 가기 위해서는 빛의 속도를 뛰어넘는 비행이 가능할 수단이 있어야만 한다고 조언한다. (그는 태양계에선 다른 생명체를 만날 수 없으리란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뭐, 외계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상관없겠지만서도) 저자가 조언하는 광속 회피 수단은 다음과 같다.
1. 초공간(3차원이 아닌 차원의 이동 방식)
2. 세대항행선(우주선 내에서 세대를 거듭해 인류를 존속시키는 방식)
3. 동면 여행, 램 드라이브(우주의 물질을 연료로 이용한 방식)
4. 시간 확장(시간 지연; 지구인과 우주인의 상대적 시간)
5. 앤서블(The ansible, 시간 확장 세계에서 통신은 즉각적으로 가능한 방식)
6. 워프 속도(광속을 초월한 속도, 저자는 '스타 트렉'을 예로 들면서 이 방법을 비웃고 있다 ㅋ)
SF를 쓰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지식은 당연히 갖춰야 하지만 아직 모든 것이 서툰 지망생일 때는 이런 작은 조언들도 고마운 법이다.
만약 '무구바살라'가 '빵'을 뜻한다면 그냥 '빵'이라고 말해라! 해당하는 영어 단어가 없는 개념에만 신조어를 사용해라. 만약 당신의 초점 인물이 '무구바살라'가 빵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가 그것이 토착 곡물에서 추출되는 약 성분을 방출하는 특별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약 성분이 원주민이 갖고 있는 듯한 텔레파시 능력의 근원으로 판명된다면, 당신이 빵을 무구바살라라고 부르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것은 정말로 다른 것이고, 낯선 이름이 덧붙여 주는 중요성을 가질 만하다. (p. 105)
그러고보니 요즘에는 글쓰기 전반에 관한 책뿐만이 아니라 SF나 판타지 등 세부적인 장르 글쓰기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이 주직업으로 작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부업으로도 글쓰기를 많이 하다 보니 출간되는 책의 종류도 다양해지는 모양이다. 사실 이 책이 미국에서 첫 출간된 것은 1991년으로 벌써 20년도 더 전이지만 SF소설 작법에 관한 틀은 지금도 유효하다. 책에 쓰일 법한 과학적 사실도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책의 5장 같은 경우는 미국의 출판 시스템에 관한 내용이라서 아쉬운 점이 있다. 그래도 어쨌거나 글쓰기 책 읽는 걸 좋아하는 나로선 이런 좋은 책이 지금이라도 나와준 것이 기쁘다. 난 한 번도 읽거나 보지 못해서 몰랐지만, SF소설 및 영화로 잘 알려진 '엔더의 게임' 저자의 글쓰기 책이니 도움이 될 것도 분명하다. 또, 많은 SF 및 판타지 작가와 작품을 소개하고 있으니 해당 작품들을 접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SF소설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한 번이라도 읽어보면 좋겠다.